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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날> <부부의 세계>를 봤습니다. 

여기저기서 하도 떠들어 <대단한가 보다>만 했지 드라마 취향이 아니라 한번을 안 봤는데 최종회를 앞두고 원작사라는 영국의 BBC와 일간지 가디언까지 신드롬이라며 거들고 나서 <이게 뭐야!>하며 전체 16화를 스킵해서 봤습니다.

박해준은 반성할 줄을 모르고 김희애는 잔인한 복수를 일삼고 한소희는 가해자인 듯 피해자인 듯 밉상과 울상을 넘나들더니 결국 박해준이 다시 김희애 주변을 맴돌고, 아들 준영은 도벽이 생길만큼 마음의 상처가 큰데 마침내 한소희가 박해준을 버립니다.

 

<부부의 세계>(원작은 ‘닥터 포스터’)라는 멋대가리 없는 우리말 제목이 시사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 드라마는 단지 수많은 위기의 부부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라는 뜻일까요? 아니면 보통의 부부들도 단지 들키지만 않았을 뿐 다 치정과 배신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는 이 시대 <우리의 세계>에 대한 고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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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 그것만큼 어려운 게 또 있을까요? 내 눈앞에 있어도 그 사람의 생각은 알 수가 없습니다. 생각을 알 수 없는데도 과연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떠올리게 하고 그의 일상 속에 파고들어가 그 마음속에서 과연 나의 지분을 넓힐 수 있을까요? <부부의 세계>를 보고나면 누구나 이런 물음에 지극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 때는 서로 미치도록 사랑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서로를 증오하며 상대를 자기 인생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어 하는 오점 취급을 합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서로의 믿음이 어긋나고 무너지면 삶이 곧 지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그동안의 모든 시간들이 다 부정당하는 고통과 혼란, 슬픔과 허탈을 얘기합니다. 


사실 부부란 원래 완전한 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어느새 <그 사람>이 아닌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된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이미 상대에 대해 만들어진 나의 선입견과 편견이 그를 단정하고 함부로 재단합니다. 상대의 말과 행동과 생각들이 다 내 의식 속에서 나의 잣대에 의해 정의되고 판단되고 또 의미가 부여됩니다. 그 사람의 실제 마음보다도 언제나 내가 느끼는 상대의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교묘해서 우리는 흔히 그게 문제라는 사실조차도 자각하지 못한 채 오히려 어그러진 관계의 책임을 전적으로 상대에게 전가하기도 합니다.


 모쪼록 파국을 피하려면 상대를 나의 예속물로 여기지 않고 한 인격으로, 그의 삶과 그의 마음과 고민과 슬픔, 고통, 걸어온 길, 가치관, 그가 지금 그리워하는 것들, 말하고 싶어 하는 것들, 가보고 싶어 하는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거기에 부응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뭔가에 익숙해지는 순간부터 권태가 시작되고 관계가 방치되므로 매일매일을 조금은 낯설게 살아야 합니다. 

사랑과 본질을 짚어내며 묵직한 울림을 남긴 마지막 회는 모두를 다시 출발선에 세우며 끝을 맺는데, 여기서 제가 드리고 싶은 <부부의 세계> <우리의 세계>에 대한 영원한 해답은 역시 가장 고전적인 고린도전서 13장이라는 말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