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2 09:32

뽕나무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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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코로나 시국은 끝나지 않았는데 요 며칠간 자연의 싱그러움은 더욱 어우러져 맑은 하늘, 투명한 햇살, 붉게 타는 영산홍과 함께 가정의 달, 사랑의 달, 감사의 달인 5월을 더욱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주님 일행이 여리고라는 마을을 지나실 때도 어느 아름다운 봄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보기 위해 길을 가득 메웠고, 그 무리들 틈에는 키 작은 루저 삭개오도 끼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키 크고 힘센 사람들에게 채여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남보다 몸피가 작고 힘이 약해 무대의 중심에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었던 아픈 경험, 그것은 이미 수없이 겪고 당해온 그의 일상적인 좌절이자 절망이었습니다. 필시 그는 어린 시절에도 <땅꼬마>라는 별명을 들으며 툭하면 힘센 녀석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고, 예쁜 여자 아이들도 무시와 경멸을 보냈을 게 뻔합니다. 또한 그렇게 늘 뒷전으로만 밀려나고 업신여김만 받아 온 터라 주변과 현실에 대해 절대 고운 시선을 갖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 또한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마침내 그는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좋다. 내가 니들을 죄다 머리 꼭대기에서 내려다 봐 주마!> 그리고 그가 택한 크고 강한 나무란 바로 로마제국이었습니다. 자기보다 좀 약해 보인다 싶으면 가차 없이 깔아뭉개기 일쑤인 이 세상을 이길 방도란 그렇게 자신의 작은 키를 대신해 줄 키 큰 나무에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실제 그는 그 나무에 기어오르고 또 올라 드디어 동족의 피를 빠는 악명 높은 세리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통쾌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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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다 여리고성의 삭개오를 닮았습니다. 

작고 힘없는 나라에서 태어나 오랜 세월 남에게 짓밟히며 살아 왔기에 그게 한이 되어 모두가 날마다 <뽕나무 오르기> 경쟁을 벌이며 삽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는 신념으로, 심지어는 예수를 믿는 일 조차도 오로지 남보다 먼저 뽕나무에 오르는 게 지상의 목표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다투어 예배당을 웅장히 짓고, 너도나도 초대형 교회로 몰려가 등록을 하고, 유명 스타 목사의 설교를 들어야 비로소 주님을 만날 수 있다고 믿기에 이르렀습니다. 또 모든 것을 그렇게 늘 수와 힘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한없이 기가 죽거나, 반대로 하늘을 찌를 듯 교만하기도 합니다. 


한편 뽕나무 밑을 지나시던 주님의 눈길이 삭개오와 딱 마주쳤습니다. 

<삭개오야!>(눅 19:5). 그것은 이리 채이고 저리 밀리며 인생의 가장자리로 떨어졌던 그를 다시 이 세상 중심으로 불러내신 주님의 따뜻한 음성이었습니다.

 <당장 그 나무 위에서 내려오라!> 뜻밖에도 주님은 독한 마음을 품고 필사적으로 기어오른 그 높은 자리에서 냉큼 내려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할 것이라!> 


삭개오 이야기는 오직 <남보다 먼저! 남보다 높이!>라는 삶의 철학으로 아웅다웅 살아가고 있는 오늘 우리들에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삭개오는 결국 주님의 그 말씀에 순종하여 나무 아래로 내려왔고 주님은 곧 <오늘 구원이 네 집에 이르렀다>(눅 19:9)고 하셨습니다. 개인 뿐 아니라 그의 가정 전체의 구원을 선언해 주신 것입니다.


이 화사한 5월, 여러분 가정에도 주님의 이 따뜻한 구원의 음성이 전해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