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5 09:09

교회 창립 25주년에

조회 수 140

부처님 오신 날인 이달 말 30일이면 제 나이가 만으로 예순다섯이 됩니다. 1989년 1월 독일에서 돌아와 광나루에 있는 장로회신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고향인 경안노회에서 목사안수(1991. 9.4)를 받은 지도 벌써 29년이 됐고, 신학교를 떠나 1995년 4월 25일 야탑동에서 교회를 개척한 지도 어언 25년이 흘렀습니다. 


성도님들이 저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몰라도 사실 저는 큰 그릇이 못됩니다. 25년 전이면 우리나라 어디서든 교회 간판만 걸면 1년에 100명, 2,3년이면 몇 백 명 교회는 이룰 수 있다 할 만큼 교회가 잘 되던 시절이었음에도 저는 지금껏  한 번도 성대한 목회를 해본 적이 없고 언제나 이렇듯 사정이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저는 세계를 복음화 시키겠다거나 이 분당에서 가장 크고 가장 좋은 교회를 만들겠다는 야심 따위는 없었습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큰 은혜를 끼치는 부흥사 같은 목회를 꿈꿔 본 적도 없습니다. 굳이 제게도 목회자로서의 어떤 바람이 있었다면 그저 성도들이 진심으로 신뢰하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목회자, 성도들을 해치거나 무책임하거나 비열하지 않아 뒤에서 욕하지 않는 목회자 정도가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물론 그것조차도 저의 허영이었지만, 정말이지 <저 사기꾼 같은 목사...>라는 말만큼은 듣고 싶지 않았던 게 저의 간절한 바람이었습니다. 


우습지만 지난 25년간 제가 가장 조심하고 두려워한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늘 <사고 치지 말고, 병으로 몸져 눕는다든가 하여 교회에 민폐 끼치지 말고, 그저 65세 조기은퇴까지만 잘 가자!>는 게 저의 한결같은 소망이었으니 얼마나 한심하고 못난 목회자였습니까? 따라서 저의 목회는 남들처럼 통 큰 목회가 아니라 극도로 소박하고 늘 조심스런 목회였습니다. 전도사나 부목사 경력도 없이 학교에 있다가 막 바로 개척에 들어가 오늘까지도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목회를 하다 보니 모든 게 그렇게 서툴고 두려웠던 겁니다. 



bamboo-2118470_1920.jpg




오늘 공동의회가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공언한대로 70세 정년이 아닌 65세 조기은퇴를 하고 올 연말로 목회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만약 오늘 그게 허락 된다면 내년 봄 권 권사님을 모시고 시골로 내려가겠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현안문제로 조기은퇴가 잠정 유보된다 하더라도 그 또한 저의 몫이요 주님의 뜻이라 믿으며 승복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실 것은 교회 일이란 그게 어떤 것이든 후임자가 그 과제를 승계하면 되는 것이고, 오히려 전임자보다 그 문제를 더 잘 처리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모쪼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신중히 결정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5년 전 저 포천에 있는 <은성수도원>(개신교 영성수련원)에서 두 차례 금식기도를 하며 들었던 주님의 음성이 요즘 새삼스럽게 제 가슴을 더 생생하게 울립니다. <내 잃은 양을 찾아다오!>(세미하기는커녕 고막이 터지도록, 심장이 터지도록 크게 들렸던 당시 그 말씀이 실은 주님의 육성이었다기보다는 제 마음을 그렇게 충격적으로 두드렸던 주님의 감동 아니었을까요?) 


당시 주님의 그 음성이 너무도 슬프고 벅차 권 권사님을 붙잡고 함께 많이 울었던 기억이 새롭고, 그 길로 내려와 교회를 시작한 지 25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아무것도 이룬 것은 없는데 벌써 은퇴를 얘기하고 있으니 그저 송구하고 허전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건 다 저의 인간적인 소회일 뿐 교회를 위해서는 꼭 새로운 교역자가 필요하오니 깊이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