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1 09:00

아슬아슬 조마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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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하루하루가 그저 아슬아슬 조마조마 위태위태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재난 경보음에 가슴이 벌렁거리고, 휴대폰 창에 뜨는 확진자 정보는 불안을 극대화하며 뭔가 점점 더 목을 조여오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합니다. 시청 홈페이지에서 확진자들의 동선을 확인해보면 더욱 숨이 막힙니다. 

마치 우리가 지금 <코로나19>와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절묘한 시간차로 서로 쫓고 쫓기는, 그야말로 일상이 지뢰밭을 걷듯 위험천만 그 자체가 되어버렸습니다. 


거짓말처럼 모든 게 멈춰버렸습니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신앙생활조차도... 더구나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는 이 상상 초월의 섬뜩한 재앙만으로도 할 말을 잃을 지경인데 그것도 부족해 교회가 무슨 바이러스 확산의 통로인 것처럼 치부되는 현실도 몹시 가슴을 쓰리게 합니다. 


지난 금요일이 밤보다 낮이 길어진다는 춘분이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탄천의 버드나무들이 다 파스텔톤의 연두색으로 변했고, 중앙공원의 진달래도 꽃망울을 터뜨렸는데 우리들의 마음은 여전히 <코로나19>에 가위눌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벌써 한 달 가까이 집안에 갇히고 마스크에 갇혀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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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밤이란 지나간 시간에서 보면 점점 더 깊어지는 것이지만 다가올 새벽이나 내일을 기점으로 보면 그만큼 새날에 더 가까워진 것이 됩니다. 비록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막힌 것 같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움이 짙은 것 같지만 저 암흑의 틈새로 비쳐오는 내일의 여명을 앞당겨 보며 언제나 새롭게 숨쉬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믿는 자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원래 성경이 말씀하는 시간이란 기계적인 반복과 회귀적인 법칙을 뜻하는 동양적인 시간 개념과는 달리 그저 무심히 흐르는 것 같아도 언제나 자기만의 고유한 개성과 빛깔을 가집니다. 그래서 <지금이 어느 때인가?> 혹은 <이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모든 게 다 때가 있고 제 나름의 시의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때를 분별하는 혜안이야말로 지혜의 첩경입니다. 하여간 우리의 불행은 다 이때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데서 옵니다. 때에 대한 감각이 성숙하지 못할 때 우리는 흔히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고 그래서 그릇된 길에 들어서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어둡게 합니다. 신중해야 할 때 경거망동하고, 민첩해야 할 때 너무 오래 생각만 하고, 은인자중해야 할 때 경솔하게 나서다 아픔을 자초하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말을 아껴야 할 때 헤프고, 정작 꼭 말을 해야 할 때는 침묵하고, 앞장서야 할 때는 비겁하게 뒤로 물러나고, 희망을 가져야 할 때는 지레 낙담하여 주저앉기도 합니다. 그게 다 우리가 어리석어 시간의 겉모습만 볼 뿐 그 내면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읽어내는 능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재앙에도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올 사순절과 함께 덮친 이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도종환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 다시 한 번 살아 있음을 감사합시다.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이 납니다.

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이 납니다.

...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이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자꾸 눈물이 납니다.

<다시 오는 봄>



올 사순절은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새삼 살아 있음을 감사하며 가장 맑은 눈물을 흘리는 진정한 고난의 계절이 되길 빕니다. 


  더욱 <사>랑하고

         <순>종하고

         <절>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