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9 11:01

삼일절과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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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의 창궐로 온 나라, 전 지구촌이 혼란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때 삼일절과 사순절을 맞았습니다. 


삼일절은 우리 민족의 고난과 기개를 되새기는 기념일이고,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을 기리며 근신하는 오랜 전통의 교회절기입니다. 부활절로부터 역산하여 6번의 주일을 뺀(주일은 부활을 기념하는 성일이므로) 40일간의 고난기간을 뜻하는 사순절(Lent)은 참 유수합니다. 이미 A.D.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제정했으니 1천 7백년도 더 된 고색창연한 기독교 절기입니다. 그것도 처음 수 세기 동안은 매우 엄격하게 지켜 하루 한 끼만 먹었으며 술과 고기, 심지어는 우유와 달걀까지도 금하고 가무와 일체의 오락도 허용하지 않다가 8세기 이후에 와서야 그런 극단적인 금욕 규정들이 다소 완화되었고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은 이를 더욱 간소화 하였습니다. 따라서 지금도 개신교보다는 가톨릭 쪽의 규율들이 훨씬 더 빡세 사제들에게는 일 년 중 가장 힘든 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 지난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시작된 사순절은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못 가진 자에게 넘겨 준 프로메테우스적인 사랑이 아니라 원수된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켜 그 둘 다 더불어 살게 하신 주님의 희생과 고난을 기리는 절기임을 기억하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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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배반하고 신들만이 독점한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넘김으로써 끝가지 인간의 이익과 해방을 꾀합니다. 그러나 결국 제우스의 진노를 사 코카서스 바위에 동철로 결박된 채 독수리에게 간을 뜯깁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드디어 아우인 에피메테우스에게 최후 당부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자물쇠로 굳게 잠궈 둔 비밀상자 하나 만은 절대 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에피메테우스는 제우스가 보낸 여인 판도라의 꾐에 빠져 그만 그 비밀의 상자를 열고 맙니다. 순간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위해 가둬 놓은 온갖 슬픔과 질병, 증오, 가난, 전쟁, 신종 코로나와도 같은 악한 역병들이 다 쏟아져 나왔습니다. 놀란 에피메테우스가 급히 상자의 뚜껑을 다시 닫는데 그 때 상자 안에서 <나도 내보내 주시오!> 하는 가냘픈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너는 무엇이냐?>하고 묻자 뜻밖에도 <나는 희망이요!>하고 대답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온갖 병마와 미움과 증오 같은 악으로 가득 차 인간이 고통당할 때 <희망>을 내보내 인간들을 구하고자 한 프로메테우스의 마지막 배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바위에 결박된 채 독수리에게 간을 뜯겼듯 주님도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며 꼼짝없이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가 남을 배신하고 남의 것을 훔쳐 그걸 사랑하는 이에게 주고 싶어 했다면 주님은 그 둘을 다 함께 살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우리 민족의 삼일운동도 결코 프로메테우스적인 거사가 아니었습니다. 침략자인 일본에 대한 보복행위로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아 못 가진 자에게 주려한 프롤레타리아 혁명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무저항 비폭력을 내세운 것이나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다 모두 순순히 잡혀간 것은 그들이 다 자신을 민족의 제단에 화해의 제물로 바쳤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 슬픈 역사를 살아온 민족입니다. 

지금도 백척간두에 서서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실업과 실직의 불안한 그림자가 주위를 어슬렁거리더니 지금은 또 재앙처럼 신종 코로나가 덮쳐 나라를 온통 패닉 상태에 빠뜨렸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예배당 문까지 잠정 폐쇄한 최악의 주일 아침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결국 부활의 새 생명을 가져왔고, 삼일절 만세운동은 마침내 민족의 해방을 불렀습니다. 


부디 사순절과 함께 우리의 가슴에 주님의 큰 빛이 잉태되길 빕니다. 

101년 전 삼일절에 품었던 그 간절한 해방의 꿈이 고난의 절기인 이 사순절과 우리를 공포에 떨게하는 신종 코로나의 위협을 넘어 부활의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오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