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2 08:27

<십계명> 세속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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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 지성으로 유명한 영국의 버트란트 러셀이 어느 날 한 기자에게 질문을 받습니다. <혹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뭐라 할텐가?> 러셀은 <하나님! 증거가 없었어요.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어요!>라고 대답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류의 무신론을 <실증론적 무신론>이라고 합니다. 믿음조차도 경험적이든, 논리적이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의 또 다른 유형 가운데는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하나의 착각으로, 망상으로 치부하는 <혐의론적 무신론>이란 것도 있습니다.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같은 사람들이 다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무신론자의 가슴, 인본주의자의 머리>(Atheist Heart, Humanist Mind)라는 책을 공저한 열렬한 두 무신론 작가 렉스 베이어와 존 피그도어가 이 둘을 모두 받아들여 이른바 <비-십계명 콘테스트>(10 non-commandments)란 걸 개최하고 기존의 성서적 십계명을 대체할 보다 <현대적이고 대안적인 세속 버전의 십계명> 항목들을 공모했습니다. 


그러자 전 세계에서 무려 2,800건 이상의 응모작이 접수됐고 이를 13명의 심사위원들이 한 달간 평가하여 최종 10개항의 무신론자 계명을 확정 발표했는데, 그 심사위원 가운데는 디스커버리 채널의 <신화 깨부수기> 프로그램 진행자 애덤 새비지를 비롯 진화론과 무신론의 선두 주자를 자처하는 <이성과 과학을 위한 리처드 도킨스 재단>의 이사 그렉 엠스타인 같은 악명 높은 무신론자들이 모두 포진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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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들에 의해 최종 선정된 현대 <무신론자의 십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마음을 열고 새로운 증거를 받아들이고 너희 믿음을 기꺼이 바꾸어라.

2. 진심이길 바라는 것을 믿으려고 애쓰지 말고, 진실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3. 과학적 방법이 자연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신뢰할만한 방식이다.

4.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5. 선한 사람이 되거나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꼭 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6. 모든 행동의 결과에 유념하고 모든 행동에 자신이 반드시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7. 남이 너를 위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그리고 남이 너에게 마땅히 바랄 것이라 여겨지는 대로 남을 대하라.

8. 우리에게는 미래 세대까지 포함하여 타인을 배려해야 할 책임이 있다.

9. 유일하게 옳은 삶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10. 이 세상을 너희가 처음 발견한 것보다 더 나은 곳이 되게 하라.



그렇습니다. CNN 종교담당 기자인 대니얼 버크의 논평처럼 이 <무신론자 십계명>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 대신 인간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이성적이고 윤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주체적이며 지성적이어서 마냥 옳은 소리처럼 들리고 더구나 세기의 제일선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보여줌으로써 구구절절 현대인들에게 가장 호소력 있게 공감될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은 시대정신에 편승해 성서적 십계명, 하나님의 십계명을 물타기 하고 대체하려는 안티들의 사이비 짝퉁 십계명에 불과하고, 하나님 대신 인간을 신봉하는 무신론적 인본주의자들의 세속적 유사 십계명일 뿐임을 깊이 명심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