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5 09:46

페어 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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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 시절인 80년대 중반 한 가톨릭 신부가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와 그 지역 신문에 기고한 글을 보고 몹시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는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광주 등을 여행했다고 했는데, 문제는 그가 한국에 머문 2주 동안 최소한 세 번 이상의 험악한 거리 싸움을 목격했다는 것이고 그게 자신이 한국사회에서 받은 가장 충격적인 인상이었다고 적은 것입니다. 


그때 저는 심한 모욕감 같은 걸 느끼며 혼자 얼굴을 붉혔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 시절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많이 싸웠습니다. 툭하면 멱살잡이를 하고 서로 뺨을 때리고, 옷을 당겨 찢고, 물어뜯고, 머리채를 휘어잡고 엎치락뒤치락하며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입에도 못 담을 욕지거리와 온갖 저주를 다 퍼붓고, 한 쪽이 몸을 빼려 해도 쓰러진 채로 다리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며 절대 놓는 법이 없습니다. 외국인들은 그런 장면을 보면 신기한 듯 넋을 잃고 구경하고 사진까지 찍어댑니다.

 

독일 사람들은 거리에서 싸우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저는 그곳에서 10여 년을 살며 몇 차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역시 권투식입니다. 먼저 웃옷을 벗고  몇 차례 주먹이 오가다 한 쪽이 쓰러지면 반드시 다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계속하지 쓰러진 사람을 덮친다거나 또 한 쪽이 더 싸울 의사가 없어 보이면 그것으로 끝나지 가는 사람을 붙잡고 늘어지거나 무지막지한 언어폭력으로 상대를 모욕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게 과거 그들의 기사도 정신의 유산일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헐리우드 서부활극의 고전으로 꼽히는 <OK 목장의 결투>도 서부 개척시대 정의로운 보안관과 카우보이 무법자들 간의 대결을 그린 전설적인 명화입니다. 지난 5일 103세로 세상을 떠난 커크 더글라스가 속사수 총잡이로, 이미 오래 전에 고인이 된 버트 랭커스터가 보안관으로 나오는 그 영화에서도 보안관은 물론 악당들 조차 절대 등 뒤에서 총질을 하는 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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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 플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운동경기나 혹은 이해관계의 충돌이 불가피할 때 누구나 꼭 지켜야 할 신사도입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양상은 늘 견딜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추악합니다. 정계도 교계도 저 거리의 싸움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런 룰도 없이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다 동원하고, 그 어떤 수단이나 방법도 가리지 않습니다. 무조건 이기면 그만이고, 오직 꿩 잡는 게 매일 뿐입니다. 진 쪽도 마찬가집니다. 절대 승복하는 법이 없습니다. 두고두고 보복하고 끝까지 따라가며 발목을 잡습니다. 루터는 거대한 권력조직인 로마 가톨릭과 싸우면서도 결코 가톨릭을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았습니다. 참과 진리를 위한 프로테스트라면서 증오를 무기로 삼는다면 이미 그 싸움이야말로 자가당착에 빠진 것입니다.

 

4.15 총선이 이제 정확히 두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선거 120일 전부터 가능한 예비후보자 선거운동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벌써부터 여야의 두 대선 주자인 이낙연과 황교안의 <종로구> 대진을 두고 <OK 목장의 결투>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가하면, <양산을> 선거구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커진 홍준표와 김두관의 대진에 대해서도 <낙동강 혈투>라고 뽑은 기사 제목도 봤습니다. 솔직히 저는 많이 걱정스럽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영으로, 이념으로 가장 첨예하게 이원화된 역학 속에서 치러질 총선인 만큼 또 어떤 진흙탕 개싸움을 보게 될까 잔뜩 쫄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만 올림픽이나 전국체전 출전 선수들이 페어 플레이를 다짐하는 선서식을 갖듯 저는 총선 주자들, 대선 주자들도 다 유권자들 앞에서 그렇게 <페어 플레이>를 서약하는 의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꼭 법으로, 제도로 강제하길 적극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