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01 10:05

입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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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가 설 연휴였는데, 내일 모레 화요일이 벌써 <입춘>입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셀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처럼 누가 뭐래도 겨울은 가고 있고, 또 봄은 오고 있습니다. 


셀리는 모든 게 죽은 듯 얼어붙은 겨울을 노래하며 <기껏 웃어 본다는 그 웃음의 밑바닥에는 고통이 도사렸고, 한껏 기쁨을 부르는 노래 속에도 언제나 슬픔이 깔려 있다>며 자신의 삶을 <인생의 가시밭에 엎드려 피 흘리는 고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만 외치지 않고 때마침 멀리서 오고 있는 봄을 느끼며 이렇게 희망을 노래합니다. <거센  정신이여, 오 서풍이여! ... 겨울이 왔으면, 어찌 봄이 멀었으리요?>(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독일 유학시절 알프스 고지 쉴트호른에 올라 강풍에 쓸려 모두 비스듬히 누워있는 겨울나무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눈은 무겁게 나무들을 덮었고, 거센 바람은 끊임없이 그 앙상한 가지들을 흔들어댔습니다. 그때 저는 저 나무들이 과연 내년 봄에도 다시 잎을 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단지 기우일 뿐 겨울에는 그렇게 다 죽은 듯 눈 속에 파묻혀 있던 나무들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그 두꺼운 목피를 뚫고 마치 기적과도 같은 새 생명의 움을 틔웁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의 기세가 등등합니다. 전자현미경으로도 겨우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바이러스의 습격에 대륙이며, 전 세계가 속절없이 당하고 있습니다.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은 한 개인을 졸지에 최대 피해자일 뿐 아니라 최악의 가해자로 만든다는 점에서 치명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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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은 봄으로 가는 길목이자 한 해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는 왕실에서 여염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날 하루를 쉬며 일 년간의 평안을 빌었고, 또 <탕평채>를 먹었습니다. 탕평채란 이백여 년 전 조선의 영조가 당파 싸움을 없애자며 탕평책을 논하던 날 선보인 음식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녹두묵을 젓가락 굵기로 썰어 참기름과 소금에 버무려 담고, 숙주와 미나리를 데치고, 다진 고기는 볶고, 김 부순 것과 달걀지단은 채 썰어 가지런히 담은 뒤 새콤한 초장을 뿌려 먹는 별식인데, 사색당파를 타파하고 화합을 이루고자 한 염원을 담아 먹었던 음식이라는 점에서 올 입춘 메뉴로 강추합니다. 


입춘을 얘기하다 보니 또 하나 떠오르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접인춘풍 임기추상>(接人春風 臨己秋霜). ‘다른 사람은 봄바람처럼 대하고, 자기 자신은 가을 서릿발처럼 대하라’는 말인데, 우리는 이 말을 언제나 거꾸로 적용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민망합니다.

아무튼 봄이 하루라도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따스한 봄바람이 사람들의 언 마음도 푸근하게 녹여주고, 무엇보다 지금 지구촌 모든 나라들을 떨게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봄눈 녹듯 소멸시켜 주길 빌어봅니다.

 

그대여, 나의 계절은 여전히 겨울에 머문 듯하나, 그대의 겨울은 이미 따스한 봄이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