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16일은 76년 전, 그러니까 광복 한 해 전인 1944년 이육사가 중국 베이징의 일본 영사관 지하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과 폐병을 이기지 못하고 40세를 일기로 쓸쓸히 옥사한 날입니다. 

그리고 이 <광야>는 그가 감옥에서 남긴 마지막 유고 시입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의 시들은 비장한 결기와 웅혼함, 고고함이 느껴지지만 또 몹시 아픕니다. 

무려 17번이나 일제의 감옥을 드나들며 겪었을 극한 상황과 맞물려 저는 이 <광야>를 대할 때마다 매화 향 같은 그의 기개에 소름이 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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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는 꼿꼿한 지조의 선비들과 도산서원으로 유명한 안동 도산면에서도 더 깊숙이 들어간 작은 마을 원천리에서 퇴계 이황 선생의 제14대 손으로 태어났습니다. 마을 이름에 내 <川>자가 들어간 데서 보듯 낙동강이 지척인 곳, 넓은 강변에 넉넉히 쌓인 모래가 마을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은어 떼가 사는 맑은 강물이며 억새가 우거진 마을 뒤편 왕모산이 아늑하게 작은 마을을 품어주는 곳, 시인이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청포도)이라고 한 바로 그곳에서 자라난 그는 이미 22세에 독립 의열단에 가입합니다. 


육사는 어려서부터 조부에게서 엄격한 양반교육과 한학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조부 이중직은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부리던 노비들에게 토지를 나눠주는 등 반봉건의 삶을 실천하며 육사에게 친히 인간 해방의 모범을 보인 개화한 선비였습니다. 시인은 그런 환경에서 자라며 항일의식, 민족의식이 강했던 친가, 외가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의열단에 가입했고 일본과 북경, 만주 등을 오가며 치열하게 항거함으로써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수많은 문인들 가운데서도 끝까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저항하다 간 순국 애국지사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광야>는 항일 저항시의 압권입니다. 

이 시를 읊으면 서설에 덮인 끝없는 순백의 광야 저 너머에서 지금도 시인이 <목 놓아 부르는 해방의 노래>, 가난한 희망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여 이내 먹먹해집니다. 죽음의 절망 속에서도 결코 접지 않았던 각혈과도 같은 그의 시혼(詩魂), 그는 정녕 로마 식민지의 세례 요한과도 같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꿈꾸고 바라며> 이 시대를 열어야 할까요? 시인이 꿈꿔온 한 시대의 <광야>에서 우리가 불러야 할 가난한 노래는 무엇이며, 오늘 우리가 저 눈밭에 뿌려야 할 희망의 씨앗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