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1 11:00

해는 바뀌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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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갈등 가운데는 소위 3김 정치의 정략적 이해관계와 결탁해 조장됐던 지역감정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정치 환경에 따라 그것은 이제 동력을 많이 잃은 듯 한 반면 새로운 갈등 요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우리 사회의 분열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심각한 이념과 진영논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고대 아테네 권력가들의 <강자의 지배가 곧 정의다>(트라쉬마코스)라는 주장을 최초로 반박한 사상가는 플라톤이었습니다. 그는 국가와 정치의 정당성을 질문하며 정의가 오로지 힘에 의한 지배로만 받아들여질 경우 필연적으로 약자들의 목소리는 짓밟히게 된다며 그가 누구든 힘의 논리에 의한 정의의 규정을 경계했습니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한 기재>가 바로 정치며, 정의는 정치의 목표이자 인간의 행복을 일깨우는 가장 의미 있는 정치적 산물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정의에 대한 철학이 없으면 정치는 무너지게 되고, 또 그 사회와 공동체의 삶은 뿌리 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모든 막중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과 국민들에게로 귀결됩니다. 그렇습니다. 정치가 존재하고 다양한 입장이나 의견이 존재하는 한 이념적 다양성은 불가피하고 또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로지 특정 집단이나 특정인의 이익만을 위한 갈등은 오히려 극심한 사회분열을 촉발할 뿐 역사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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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핵심적 가치로 <자유와 평등>을 꼽습니다. 일반적으로 보수는 <자유>의 가치관을, 진보는 <평등>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보수는 경제를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진보는 정부가 개입해 문제를 통제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보수는 대체로 성장을, 진보는 분배를 더 우선시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보수는 개인의 가치를, 진보는 집단의 이익을 더 중시합니다. 성과주의, 개인주의, 사유 재산권 등은 보수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이고, 분배주의, 집단주의, 공유 개념 등은 진보적 가치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는 다 상대적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진보적 가치를 배제하는 보수나 보수적 가치를 경멸하는 진보는 모두 편향적 이념일 뿐 결코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교조적 아집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 사회는 조국사태, 검찰개혁 등으로 양대 진영이 원색적으로, 노골적으로 맞짱 뜨는 국면을 연출하며 여기에 청와대, 정부, 정치권, 검찰, 법원, 하다못해 교회까지 가세하여 그야말로 온 나라가 둘로 쪼개진 형국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천 4백여 년 전의 <원효대사>는 소위 <화쟁(和諍) 사상>으로 다툼과 갈등에 대한 세 가지 처방을 제시했습니다.

① 각자의 주장의 부분적 타당성을 변별하여 수용하고 ② 모든 쟁론의 인식론적 토대를 초탈하여 서로를 포용할 수 있는 아량을 가져야 하고 ③ 쟁론은 어디까지나 언어로 벌이는 다툼인 만큼 각자가 자신의 언어를 성찰하여 최대한 상대를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원효는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 다 틀렸다. 모두 다 맞다.>


그런데 원효보다 1천 3백 년 전 사람인 이사야 선지자는 <이리와 어린양, 사자와 송아지, 뱀과 어린아이가 서로를 증오하지 않고 함께 먹고 함께 딩굴며 노는 화해의 세계가 바로 평화의 나라요 하나님의 나라>(사 65:25)며, 하나님이 바라시는 정의로운 세계란, 곧 양 진영으로 나뉜 나라가 아니라 하나 되는 세계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우리의 평화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셨느니라>(엡 2:14). 믿는 자란 진영에 복무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 됨에 헌신하는 자들임을 명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