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3 08:15

악마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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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우리 사회의 <38선>이 됐습니다.

남북이 38선에 철책을 치고 오랜 세월 대치해 왔듯 최근 조국을 가운데 두고 대한민국이 좌우로 갈라져 그 어떤 타협도 배려도 없이 서로 공격하고 증오하며 그야말로 <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내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 고위관료의 도덕성과 인품에 진영논리가 덧씌워지면서 졸지에 프레임 싸움으로 비화되더니 급기야는 대한민국 전체를 둘로 쪼개버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상식과 도덕과 경제와 법마저도 온통 진영 논리가 지배하는 희한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홧병 난 사람, 이민 가겠다는 사람들이 공공연하고, 부부가 서로 싸우는가 하면 자식과 부모가 등지고, 멀쩡하던 친구지간도, 각 급 학교 동창들조차도 모조리 진영 싸움에 휘말린 형국입니다. 이대로라면 당장 내년 4월 총선이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전대미문의 파행이 연출될 수도 있고, 온 국민들이 홍해가 갈라지듯 좌우로 갈라져 다시 한 번 서초동과 광화문 시위를 재현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진영 논리의 함정, 프레임의 덫에 걸린 탓입니다. 양 진영에 갇힌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옳고 그름이 의미가 없습니다. 오로지 내가 속한 진영은 <선>이고, 상대 진영은 무조건 <악>일 뿐입니다. 우군 진영에 속한 사람이면 그가 어떤 짓을 하고, 어떤 흠결을 가졌건 다 용납되고 합리화되는 반면 상대 진영에 속한 사람이면 그가 아무리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무흠하다 해도 반드시 때려잡아야 할 마녀사냥 감입니다. 

 

<진영 논리>의 덫에 걸린 사람들은 마치 사이비 이단에 빠진 사람들과 꼭 같습니다. 그들은 누가 들어도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거짓임에도 그걸 절대적 진리로 믿고, 교주가 파렴치한 범죄로 감옥을 가도 한결같이 그를 신봉합니다. 보수와 진보 이데올로기에 갇힌 사람들도 그와 꼭 같은 맹목적 광신도에 다름 아닙니다. 사물이나 사건이나 현실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잣대가 <진영 논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그것만이 모든 가치의 절대적 척도입니다. 우리 사회를 압도하는 이런 진영 논리가 최근에는 한국 교계와 개 교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금 교계와 개 교회들이 모조리 둘로 나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보다 노골적으로, 또 어떤 교회는 암암리에 나눠져 끼리끼리 교감하며 은밀하게 세 대결을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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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동화작가 <그림>(Grimm) 형제가 쓴 <브레멘 음악대>가 있습니다. 

농장에서 학대당하다 쫓겨난 당나귀, 개, 고양이 그리고 수탉이 독일 북부의 오랜 도시 브레멘으로 떠납니다. 그곳에 있는 음악대에 들어가기로 한 겁니다. 가는 도중 어느 숲속의 불 켜진 집에서 훔쳐 온 금화를 나누고 있는 도둑들을 만나는데 당나귀는 뒷발로 걷어차고, 개는 다리를 물고, 고양이는 얼굴을 할퀴고, 수탉은 요란하게 울어대며 결국 그 도둑들을 퇴치합니다. 그리고 지혜와 힘을 모아 차지한 그 도둑들의 아지트에서 마음껏 악기를 연주하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긴데, 그들의 그 합창이야말로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통합의 진정한 메시지였습니다. 

 

사실 당나귀와 개는 서로 친한 관계가 아니며 개와 고양이도 앙숙에 가깝고 고양이와 수탉도 원래 정서로는 적대적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각자의 소리로 하모니를 이뤄냈고 또 그 과정에서 도둑들을 물리쳤습니다. 우리 사회도 당나귀, 개, 고양이, 수탉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뜻을 모아 합창하는 <브레멘 음악대>가 되어야 합니다. 오래 전 독일 국민들의 지혜가 <브레멘 음악대>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이제 이 시대의 전설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저는 아직도 늦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부디 <브레멘 음악대>의 하모니와 통합의 지혜가 악마의 덫인 진영 논리의 함정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해내는데 소중한 영감이 되길 진심으로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