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9 08:41

고독한 영혼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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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에 나오는 인간 창조기사를 보면 하나님이 먼저 아담을 만드시고 그가 홀로 사는 것이 좋지 않아 다시 하와를 창조하사 쌍을 이루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인간이란 원래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뜻이지만 그러나 더불어 살기 이전에 홀로였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 여자를 만드셨다고도 합니다. 이 역시 부부란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녀가 각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함께 마귀의 유혹을 받은 게 아니라 하와가 홀로 받습니다. 그리고 유혹에 넘어가 이미 변질된 하와가 아담도 자기처럼 타락시키기 위해 금단의 열매를 건넵니다. 이 역시 비록 둘이 한 몸은 아니지만 함께하지 않고는 못사는 게 남녀임을 확인시킨 것입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인간 창조기사는 남녀가 한 몸인 듯 보이지만 어쩔 수 없이 둘이고, 한 가정을 이루고 살지만 결국은 각기 홀로라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창세기는 또 그들이 범죄한 후 부끄러워 자기의 치부를 가렸다고도 하는데 그 것 역시 인간의 고독성을 말해 주는 대목입니다. 부끄러워서 가렸다는 것은 어쨌든 자기를 남에게 공개하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만의 깊은 비밀을 간직한 채 타인의 개입을 불허하며 모든 책임 앞에 홀로 섭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자주 홀로 자기를 대하고 싶어 합니다. 확실히 그것은 일상의 잡다한 언어나 복잡한 인간관계에 얽히는 것보다 훨씬 덜 외롭습니다. 요즘은 교회 안에도 <나 홀로 신자>인 <솔리스천>이 많습니다. 그들은 주일예배 외에는 교회의 그 어떤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는데 괜히 이런저런 교회 일에 엮이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예 교회 출석조차도 포기한 소위 <가나안 신자>도 늘고 있습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문화의 확산과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정도로 과도한 새신자 등록과정, 담임목사 세습 문제, 비민주적이고 불투명한 재정운용 등에 실망해서라는데 그 모든 문제들을 다 인정한다 해도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도 때로 몹시 고독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분주한 시간을 보내신 다음 제자들을 배에 태워 먼저 떠나게 하신 후 자신은 홀로 산으로 가시는 등의 쓸쓸한 단상이 꽤 여러 군데 나옵니다(마 14:23, 막 1:35, 요 7:53). 그러나 주님이 홀로 그렇게 밤 또는 새벽에 산이나 광야로 나가신 것은 고독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도 하셨습니다(마 4:6). 이는 기도란 모든 관계를 떠나 홀로 있을 때, 바로 그 고독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그 기도의 골방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고, 동시에 저 험한 바다 한가운데서 외로이 풍랑과 싸우고 있는 제자들의 비명도 들으셨습니다. 이를테면 기도 속에서 정직한 자신의 모습과 하나님과 이웃을 함께 만나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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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알로리(Alessandro Allori, 1535~1607),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기도하시던 주님이 드디어 그 어두움과 파도를 헤치고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로 오셨을 때, 제자들은 의연히 풍랑을 딛고 서신 주님을 전혀 새로운 감격으로 만납니다. <참으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4:33).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풍랑 만난 이웃들의 무수한 비명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신음소리가 내 귀에 잘 들리지 않는 것은 내가 너무 지친 탓입니다. 4주간의 특새를 마쳤습니다. <특새>는 기도의 골방이자 주님이 자주 찾으셨던 새벽 광야요 고독한 밤 동산이었습니다. 이제 보다 투명해진 영성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저 어두운 밤바다에서 들려오는 이웃들의 비명도 함께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보십시오. 반드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는 주님의 뜨거운 격려를 듣게 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