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4 09:36

가을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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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그랬냐는 듯 더위가 많이 수그러졌습니다. 

구름 너머로 파란 하늘이 한결 높아졌고, 유난스럽던 매미소리도 거의 잦아들었습니다. 가을의 초입, 바야흐로 기도의 계절이 왔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일 년 사시사철이 늘 기도의 날들이지만 가을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시인 김현승은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 시간을 바꾸게 하소서>라고 했는데 그가 말한 <겸허한 모국어>란 곧 <기도의 언어>를 가리킵니다. 오늘 우리의 영혼이 이토록 메마른 것은 그동안 너무 기도하지 않은 탓입니다. 


사막의 수도자 까를로 까레또는 <기도란 하나님이라는 행복의 샘으로 우리를 인도해주는 영혼의 오솔길이다>라고 말했는데 맞습니다. 행복의 샘은 결코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기도의 오솔길로 들어가 겸허한 언어로 내 마음을 집중하기만 하면 누구나 영혼의 목마름을 해갈할 샘물을 퍼 올릴 수 있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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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는 선뜻 그 기도의 오솔길로 발걸음을 떼려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편리와 속도와 효율을 숭배하는 세상에서 늘 쫓기는 짐승처럼 살다보니 오늘도 내가 뭘 했지? 하며 허탈과 회한에만 젖을 뿐 정작 주님은 거의 잊고 사는 까닭입니다. 


이제 기도해야겠습니다. 

기도란 모름지기 내 인생, 내 존재의 주인과 접속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과는 그토록 많이 접속하면서도, 그 숱한 지식과 정보들과는 뻔질나게 접속하며 살면서도 주님과의 접속은 여전히 담을 쌓은 채로 올해도 이 추석연휴까지 왔습니다. 


가을에는 영양가 없는 세상과의 공허한 접속은 줄이고 주님과의 내밀한 접속은 최대한 늘여 내 영혼이 생기를 잃고 내 삶이 황폐화되는 일 만큼은 결단코 막아야겠습니다. 

기도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존재와 접속하여 하나님의 기운을 받는 가장 아름답고 엄숙한 생명 예술입니다.



<주님, 당신은 이 가을 포도 한 알에서 얼마나 많은 즙을 짜 내시는지요. 당신은 이 작은 샘에서 얼마나 많은 물을 길어 올리시는지요. 제 영혼은 이제 너무 메말라 혼자서는 기도할 수 없지만, 당신은 제 메마른 영혼에서 수천 마디의 기도를 퍼 올리십니다. 제 영혼은 이제 너무 시들어 혼자서는 사랑할 수 없지만, 당신은 제 시들어버린 영혼에서 무한한 사랑을 이끌어내십니다. 제 영혼은 너무 차가워 혼자서는 더 이상 아무런 기쁨이 없지만 당신은 제 안에 하늘 기쁨의 불을 지피실 수가 있습니다. 제 영혼은 너무 열악해 혼자서는 믿음을 지닐 수 없지만 당신의 힘으로 제 믿음이 겨자나무처럼 자랄 수 있습니다. 저로 하여금 항상 기도하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신실하게 하소서>(중세 이탈리아 카르투지오 수도회 원장이었던 <귀고>의 기도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