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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5년 10월 슈테판 뮐러(Stefan Mueller)라는 한 독일인이 베를린 주재 한국 대사관 홈페이지에 올린 기고문으로 최근 급속히 악화된 한일 관계와 8.15 74돌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소개하오니 모쪼록 우리 민족의 아픔과 내재된 저력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세계 지도를 펴보기 바란다. 아마 당신이 잘 알고 있을 중국과 일본 사이에 한반도가 있고, 그곳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보일 것이다. 이 조그만 나라는 당신이 지도에서 보듯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도 지난 2천 년 동안 한 번도 민족의 자주성을 잃어본 적이 없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나라이다. 


나는 어느 여름날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고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의 이야기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1936년 히틀러 시절 이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그때 올림픽의 꽃이라는 마라톤에서 두 일본인이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시상대에 올라간 그 두 일본인의 표정이야말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슬픈 모습이 아닌가! 그 불가사이한 사진, 대체 무슨 사연이 그 두 승리자로 하여금 그토록 슬픈 모습으로 시상대에 서게 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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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 민족은 바다 건너 일본인에 대해 그저 영리한 원숭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는데, 그 원숭이들에게 강간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침략을 당해 하루아침에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인간적 품위를 중시하는(유교 문화) 민족에게 그 고통이 오죽 컸으랴. <손>(기정)과 <남>(승룡)이라는 그 두 마라토너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 둘은 승리했고, 시상대에 올랐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조국 대한민국의 태극기 대신 핏빛 동그라미의 일장기가 그려져 있었고, 국기 게양대에도 역시 일장기가 올라가고 있었으니 얼마나 원통했겠는가.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해방과 함께 그들은 또 한 번의 무서운 이념 전쟁을 치른 후 <한강의 기적>을 통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보다 더 강력한 부를 이루고, 1988년에는 마침내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이른다. 불과 50년 전에는 태극기조차도 가슴에 달 수 없었던 나라가 지구촌의 축제인 올림픽을 유치한 것이다. 


그런데 개막식장에 성화를 들고 나타난 마지막 주자는 52년 전 너무나도 슬프고 부끄러웠던 승리자 <손>(기정)이었다. 이제 노인이 되어버린 그 슬픈 마라토너는 성화를 든 채 마치 어린아이 같이 펄쩍펄쩍 뛰며 즐거워하지 않았던가! 역사란 때로 이처럼 멋지고도 통쾌한 장면을 연출한다. 더욱 극적이게도 일본 선수단은 그 올림픽 도중 슬픈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히로히토 일왕이 쓰러져 죽음을 기다린다는 ... 


내 이야기는 아직도 끝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그 놀라운 정신력으로 50년 전 잃어버렸던 그 금메달을 기어이 되찾고야 말았다.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4년 후 개최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이라는 <손> 노인과 너무도 흡사한 외모(내 눈에는)의 젊은 마라토너가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 독일 선수를 따돌리고 1위로 골인하여 더는 슬프지 않은 승리의 월계관을 거머쥔 것이다. 시상대에 선 <황>은 태극기가 올라가자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왼쪽 가슴에 달린 태극기에 손을 올려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스탠드로 달려가 비극의 마라토너인 <손>에게 자신의 금메달을 걸어주는데, <황>을 가슴에 안은 <손>의 주름진 눈가에는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인간이란 이 한국인들처럼 폭력과 거짓과 다툼이 아니라 불굴의 의지로써 자신들의 아픔과 고통에 맞서야 한다. 역사상 어느 민족도 보여주지 못한 인간과 한 국가의 존엄을 이 민족이야말로 온 세계에 보여주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