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8 10:45

대화와 소통의 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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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지구촌 환경 파괴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진행되면 50년 후에는 현존하는 생물 가운데 4분의 1은 멸종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은 그보다 더 심각하고 위기적인 <멸종>이 있습니다. 바로 심령이 맑고 깨끗한 인간 유형이 갈수록 이 땅에서 고갈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멸망은 흔히 말하는 핵전쟁이나 행성의 충돌, 지진, 화산 폭발 같은 천재지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이 썩고 혼탁해져서 빚어내는 온갖 죄 때문일 게 분명합니다. 따라서 이를 막지 못할 경우 지구는 육신과 정신이 시커멓게 오염된 인간 군상들로 차고 넘쳐 누구도 더는 어쩔 수 없는 극악한 생지옥이 연출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의 환경 위기며 생태학적 파국, 반생명 문화의 걷잡을 수 없는 확산은 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인간 공해의 산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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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옛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위기에 직면한 인류와 역사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성령 받은 새로운 인간형의 출현뿐이라는 게 바로 최초의 오순절 성령강림 현장에서 선포된 메시지의 요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성령 충만했던 당시 120명 성도들의 그 외침을 <방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물론 거기서 말하는 <방언>이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어떤 영적인 언어라는 뜻이 아니라 <각 나라의 말>을 의미했습니다.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됨이냐>(행 2:7-8). 


오순절 성령강림이 초대교회 안에서 최초로 드러낸 현상이 바로 <방언>이었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이는 곧 자신의 언어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상대의 자리에서 피차 소통하고자 한 대화의 모범적인 원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실제 세계 도처에서 온 순례객들이 다 자기 나랏말로 당시 성령에 취한 제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놀라워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저 시골 갈릴리 출신들임에도 각국의 말을 유창하게 구사했다는 사실에 초점이 있기보다 자신들의 언어와 논리만을 도도히 고집하지 않고 기꺼이 다른 사람의 언어 세계 속으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그들의 선교사역의 출발점으로 삼으려 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에 대한 집착보다 <너>의 소리에 먼저 귀 기울이려 한 초대교회의 소통의 자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은 이게 바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의 진정한 비결입니다. 강한 자가 자신의 언어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며 약한 자의 목소리를 묵살한다면 정의와 평화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일찍이 성령 강림절에 터진 <방언 현상>이야말로 이 세상의 일방통행적인 언어질서에 대한 기독교 신앙의 강력한 도전이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공평하게 인정받았던 사건이었습니다. 개인의 삶과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은 서로 다른 사람의 언어를 존중하고 포용해 나가는 데 있습니다. 또한 초대교회가 방언으로 증거한 중심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방언은 <생명의 언어>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인류의 모형>을 제시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방언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폭력과 살상, 미움과 증오의 영에 사로잡혀 서로를 저주하고 적대하고 있는 이 세상 언어질서를 사랑과 평화와 생명의 언어로 부활시켜 우리의 대화와 소통의 차원을 조금씩이나마 변화시켜 가자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인간 공해로 찌들어 가는 이 시대 지구촌에 오순절 성령강림절이 던지는 진정한 메시지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