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8 08:56

청년들을 구하라!

조회 수 178

지금 청년들이 깊은 좌절에 빠졌습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연애, 결혼, 출산 같은 인생의 기본적인 통과의례마저도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사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주 발표한 통계청의 <고용동향>을 보면 4월말 현재 청년 실업률이 24.2%로 이는 우리나라 15-29세 청년 네 명 중 한 명이 실업자라는 것이고, 아르바이트 같은 단기 일자리를 제하면 세 명 중 한 명이 언필칭 취준생의 신분이라는 것입니다. 


당장이라도 우리 사회를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청년들이 도전과 희망보다는 좌절과 포기를 먼저 경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더욱 우울한 것은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조차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의미하는 제조업은 벌써 13개월 째 줄고 있고,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를 뜻하는 중장기 근로도 나날이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표들은 경제 활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부정책과는 거리가 먼 얘깁니다. 청년수당 혹은 <빈 강의실 불끄기> 같은 단기 아르바이트를 급조하는 데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붓고는 있지만 지금 청년들에게 절실한 것은 적선하듯 손에 몇 푼 현금을 쥐어주기 보다 생활과 미래가 보장되는 안정적인 일자리입니다. 상황이 이토록 절박한데도 정부는 계속 엉뚱한 진단과 처방만 고집하며 <고용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는 앞뒤 안 맞는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어서 참으로 답답합니다. <청년들의 눈물을 씻어주겠다>고 공약한 정부이니만큼 제발 청년들의 절망과 고통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주길 간곡히 부탁해마지 않습니다.


youth.jpg




막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주님이 여러 율법학자들과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는 제자들과 마주치셨습니다(막 9:14-19). 당시 그들이 어떤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귀신들린 한 청년을 고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논쟁이라 제자들이 수세에 몰렸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따라서 제자들로서는 주님의 등장이 몹시 반가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없는 자들아!>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 사람은 바로 청년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자기 아들에게서 귀신은 쫓아내지 못하면서 율법학자들과 논쟁만 벌이고 있는 제자들이 몹시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처럼 제자들과 율법학자들 간의 입씨름을 구경만하고 있을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그랬기에 주님이 <너희가 무슨 논쟁을 벌이고 있느냐?>하고 물으셨을 때 그가 먼저 나서서 제자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던 것입니다.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들린 내 아들을 고쳐 달라하였으나 이들이 하지 못하더이다>  


아비의 말을 들으신 주님이 그 왜곡된 상황을 신속하게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으십니다. 정작 청년의 고통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나고 어느 새 제자들과 율법학자들 간의 논쟁만이 사건의 핵심이 되어버린 현실을 다시 역전시키신 것입니다. <그 청년을 내게로 데려오라!>


제자들과 율법학자들은 논쟁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게 최대 목표였지만 주님은 고통 중에 있는 청년 하나를 구하시는 게 절대적인 관심사였습니다. 그래서 귀신에게 붙잡혀 괴로워하고 있는 그 청년을 다시 무대의 중심으로 소환하신 겁니다. 그러고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것이 없느니라>하시며 그 청년을 고쳐주셨습니다. 


더 이상 변명이나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하는 정치권의 논쟁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무조건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진 청년들을 구해내는 일에 모두가 팔을 걷어 부칠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청년의 아비가 주님께로 달려가 우리 모두를 고발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