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6 09:03

가버나움

조회 수 208

우리나라 영화 팬들이 모조리 <보헤미아 랩소디>로 몰려가 프레디 머큐리와 We Are The Champions를 떼창하고, 1,4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방화 코메디 <극한직업>을 보며 배꼽을 잡고 있을 때 저는 <가버나움>이라는 참 불편한 영화 한 편을 보고 왔습니다. 


2610_2753_4419.jpg




다큐 같은 리얼리티의 느낌이 고통과 슬픔으로 다가와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먹먹한 영화.

차라리 몰랐으면 편했을 세계를 한 아이의 처절한 삶을 통해 알게 된 몹시 우울한 영화인데 그나마도 안락한 세상속의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어 할까봐 많이 정제해 놓은 듯한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고통이 체화된 주인공 <자인>은 크게 화내야 할 상황에서도 화내지 않고, 크게 울어야 할 상황에서도 결코 울지 않습니다. 아이의 감정 표현이 언제나 눈물이 터져 나오기 직전의 상태에서 머물곤 하는데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게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그러다 마주친 엔딩, 분명 빼어나지도, 세련되지도 않았지만 깊은 울림을 줬습니다. 


우선 제목인 <가버나움>에 대해 몇 마디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신약 복음서에 의하면 <가버나움>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고향인 갈릴리 지방의 중심 성읍으로 주님 복음사역의 주된 활동무대였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그곳에서 많은 이적을 행하셨고 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고 교만하게 굴며 주님 일행을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분노하시며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높아지려느냐 음부까지 낮아지리라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삼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 11:23-24)하시며 저주하셨는데, 그로부터 <가버나움>이란 지명이 흔히 <카오스>와 <지옥>이란 의미로 쓰이게 됐고, 이 영화를 만든 레바논 출신의 여성 <나딘 라바카> 감독도 그런 뜻으로 시리아 난민들의 참혹한 일상을 그렸다고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가버나움>이 담아낸 레바논의 베이루트와 그곳 빈민촌의 모습이며 난민들, 그리고 거리로 내몰린 갈 곳 없는 아이들의 운명은 정말 지옥처럼 절망스럽습니다. 영화가 그만큼 사실적이고 생생한 이유는 끝까지 그들의 시선으로 찍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자인>역의 <자인 알라피아>를 비롯한 모든 아역들이 다 실제 레바논 빈민촌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고, 특히 <자인>의 동생역을 맡은 여자 아이는 시리아 난민 출신으로 거리에서 껌을 팔던 아이를 캐스팅했다고 합니다. 

칼로 사람을 찌르고 교도소에 갇힌 12살 쯤된 소년 <자인>이 자신의 부모를 고소합니다. 신분증도 없고 출생증명서도 없어서 어디서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자인>, 판사가 소년에게 <오늘 이 재판이 열리게 된 이유를 아느냐?>고 묻자 자인은 분명한 어조로 대답합니다. <저 사람들이 나를 태어나게 했으니까요! 이 끔찍한 세상에 나를 태어나게 한 사람들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말도 합니다. <사랑하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내게 이 끔찍한 삶을 준거죠?> <키우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날 낳은 거죠?>


지난 칸 영화제에서는 황금종려상을 두고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과 경합하다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는데, 오는 24일에 있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꼭 아랍 여성감독 최초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여 <자인>의 그 크고 맑은 눈망울에서 아픔과 절망 대신 기대와 희망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