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2 11:03

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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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는 한 온전한 정신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쇠약한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그 육체의 한계조차도 능히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계속 살아남을 사람은 없습니다. 고단한 여행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은 공항이나 기차역 같은 데서 제일 먼저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습니다. 그게 바로 그가 다시 돌아온 유일한 이유이니까요.>

- 헨리 나우웬의 <상처받은 치유자> 중에서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그저 기억나는 대로 적어봤으니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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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갇힌 병실 복도를 끝까지 걸어가면 큰 창 밖으로 탄천이 내려다보이고 그 탄천 너머에는 판교 3단지, 그중에서도 316동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그 옆이 317동, 맨 아래서 하나, 둘하고 9층까지 세면 거기에 바로 제 방이 있습니다. 지척에 집을 두고도 새해 벽두부터 이렇게 환자가 되어 교회와 주변에 두루 민폐가 되다니....


병원 안의 시간과 병원 밖의 시간은 참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안팎이 다 24시간 늘 같은 텐션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병원 안은 어떻게든 치료를 잘 받고 살아남아 새해에는 좀 더 새로운 각오로 건강관리를 잘해 보리라고 벼르는 사람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이 모여 작은 단위의 시간을 조밀조밀 세심하게 집중하며 관리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큰 긴장이 병원 안 공기를 짓누르고 있는 이곳에서는 사실상 그 누구도 절대 편하지 않고 안녕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수액 팩을 주렁주렁 달고 모진 수술에 지쳐 실낱같은 희망 하나만을 안은 체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병실 사람들, 제 옆 자리의 30대 초반의 청년도, 그 옆 위 절제 수술을 받았다는 70대 어르신도, 씩씩하게 들어와 온갖 여유를 다 부리다 이튿날 비뇨기 계통의 수술을 받고 지금은 완전히 고꾸라져 움직이지도 못하는 40대 회사원도 모두가 아닌 척 할 뿐 각자의 커튼 속에서 억지로 아픔을 삼키고 있는 병실의 침묵이 애잔합니다. 


잠이 들랑말랑 얕은 잠에 취하고 다시 깸을 반복하며 뒤척이다 심한 두통과 함께 맞는 병실의 새벽, 잔잔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이름 모를 풀잎의 흐느낌처럼 병상에 누워있는 나를 새벽마다 바라보는 허무. 자신의 살아온 고된 날들이 서러운지 내 옆자리 옆 70대 할아버지는 어젯밤 2시반쯤 어두운 침대에 앉아 처연히 울고 있었습니다. 


흔히 우리는 먼 길을 갈 때 잠시 쉬어갑니다. 고통스런 상황이나 몸에 병을 얻었을 때도 그걸 잠시 쉬어가라는 주님의 계시로 받으면 정말 그동안 잊고 살았던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병 이전의 나보다는 고통 너머의 나에게 보다 성숙한 내가 있다는 사실도 쉬어갈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거 같습니다. 


병실에서 바라본 금요일 오후의 세상은 황사와 미세먼지로 온통 희뿌연 모습입니다. 결국 우리에게는 병원 안이든 병원 밖이든 현역 환자와 잠재적 환자가 있을 뿐이라는 생각.


다들 건강 조심하시고, 금주(?) 퇴원해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