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5 10:57

해피엔딩

조회 수 172

벌써 한 해가 다 갔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무척 빠른데, 또 연초에 있었던 여러 일들을 생각해보면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연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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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떤 것이든 사실 글을 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글쓰기란 여전히 매력적인 일이지만 그게 제게서 빼앗아가는 에너지 또한 해가 갈수록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막상 끝내고 보면 보잘 것 없고 얼마 되지도 않은 분량인데 하루 종일 붙잡고 있을 때도 있고, 단지 손가락과 머리만 좀 썼을 뿐인데 요즘은 끝나고 나면 한두 시간 운동이라도 한 듯 피곤하기까지 합니다. 더욱 맥 빠지는 건 여러 시간 고군분투한 글임에도 조회수가 영 초라할 때 <그래, 사람들이 이런 글에는 별 관심이 없지...>하며 신경을 끊으려 해도 뒷맛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니체는 늘 어렵고, 제가 그닥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그러나 늘 꺼내보며, 또 읽을 때마다 다시 한 번 더 삶을 골똘히 생각해 보게 하는 참 묘한 사상가입니다. 니체의 <즐거운 학문>이라는 책 속 <최대의 중량>이라는 제목의 글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어느 날 밤 악령이 당신의 가장 깊은 고독 속으로 살며시 들어와 이렇게 말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너는 지금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을 다시 한 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것이란 없으며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사상과 탄식, 네 삶에서 이루 말 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아픔들만이 네게 다시 찾아 올 것이다” ... 그대는 땅에 몸을 내던지며 악령에게 이렇게 말하는 엄청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너는 신이로다. 나는 이보다 더 신성한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노라!” 이 문제는 확실히 모든 경우에 최대의 중량으로 그대의 행위 위에 얹힐 것이다. 그대는 이 최종적이고도 영원한 확인과 봉인을 위해 어떻게 자신과 그대의 삶을 만들어가야 하겠는가?>

그렇습니다. 이 주제는 과연 우리 인생의 <최대의 중량>을 가진 문제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니체의 말대로 매년 반복되는 우리의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연적인 선택지가 있어 보입니다. 우선 삶의 매순간을 행복한 내용으로 채우거나 아니면 때로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해피엔딩을 약속 받아 두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삶 일체를 긍정해 버리거나... 물론 첫 번째 경우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산다는 건 결코 그렇지만은 않고, 두 번째는 힘들긴 해도 그러나 해피엔딩을 생각하며 참고 견딜만 할 것이고, 세 번째 선택지는 사실 누구나 다 사양하고 싶겠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늘 이 세 번째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가 뭐래도 저는 긍정의 힘을 믿고, 주님을 신뢰하기에 당장 눈앞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맨 마지막에는 <...그래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하며 끝날 것임을 확신합니다. 올해만 해도 이런저런 많은 아픔과 무거운 짐이 있었지만 그러나 돌이켜보면 감사한 일이 더 많았고, 어려운 중에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 예가 더 많았기에 결국은 <해피엔딩>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오히려 비극적인 결말의 과정에서 공감과 감동을 느끼며 영혼과 감정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했지만, 성경은 <해피엔딩>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모두에게 올 한 해의 마무리가 해피엔딩이기를, 그리고 또 다른 해피엔딩을 기다리며 자신의 삶을 더욱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