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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 풍경이 을씨년스럽습니다.

찬바람 부는 겨울, 어느새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사실 시간은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빈틈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어김없이 육박해 들어오는 까닭에 우리는 때로 그것을 마치 기습이나 당한 듯 <어느새>라고 표현할 뿐입니다. <어느새>란 우리의 무방비를 폭로하는 말이지 시간의 도발을 이르는 말은 아닙니다. 제게는 요즘 <세월이 쏜 살 같다>는 말이 전혀 과장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세월의 속도가 나이에 비례한다는 말도 무한 공감입니다. 

비록 날이 저물고 배가 흔들릴지라도 올 역시 우리는 힘껏 노 저어 저 바다 건너편까지 가야합니다.

주님은 어느 날 늦은 시간 제자들에게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막 4:35)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사단이 났습니다. 밤바다 한가운데서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를 만난 것입니다. 순식간에 바닷물이 덮쳐 배가 가라앉게 된 경각의 위기, 그 와중에도 주님은 배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당황한 제자들이 주님께 달려가 힐난하듯 도움을 청합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됐는데 돌아보지 아니하시고 어찌 주무시기만 하십니까?> 그제서야 깨어나신 주님이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바다와 바람을 꾸짖으시며 풍랑을 제압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자들까지도 나무라셨습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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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언제나 <두려움>이 문제입니다. 두려움이 바로 우리의 믿음을 꺾는 적이요, 소망의 불을 끄는 바람이자 우리의 운명의 배를 침몰시키는 파도며 기도의 능력을 가로막는 칠흑 같은 밤바다입니다. 두렵다는 것은 결국 내 배에 함께 타고 계신 주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불신앙의 소치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이 <어찌 믿음이 없느냐?>며 호되게 책망하신 겁니다. 큰 위기 앞에서도 우왕좌왕하지 않는 담대함, 거친 풍랑에도 노 젓는 힘이 약해지지 않도록 격려하는 리더십, 사람의 힘으로서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할 때 그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는 결단, 이게 바로 험한 바다를 건너기 위해 뱃길에 나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밤바다 한복판에서 거친 풍랑을 만난 조각배 형국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앞날, 아니 당장 코앞에 닥친 새해의 이런저런 불확실성에 대해 몹시 두려워하며 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용기를 가져야 하고 믿음의 담력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큰 확신으로 세상을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외쳐야 합니다. 그러면 비록 날이 저물고 배가 흔들릴지라도 제자들처럼 무사히 <바다 저편>에 가 닿게 될 것입니다. 그렇잖아도 다들 마음이 시린데 요 며칠 새 갑작스러운 대설 한파로 사람들이 더욱 어깨를 움츠린 채 종종 걸음을 치고 있습니다. 애써 마음의 여유를 가집시다. 사랑으로 가슴을 훈훈하게 데웁시다. 이제는 거리에서 캐롤도 사라져 세밑이 더 삭막해졌지만 그래도 따뜻한 마음으로 주님의 성탄을 기다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