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4 10:12

겨울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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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밤 온다던 첫눈이 소설(小雪)을 지나 어제서야 내렸습니다. 

이 나이에도 <첫눈!>하면 심쿵하는 건 대체 뭘까요? 

정호승 시인은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하는 것일까 /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꼭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첫눈 오는 날 만나자)라고 했는데, 제 생각에는 첫눈이 우리 모두를 동심으로 데려가기 때문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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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첫눈은 우리 모두의 아련한 향수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래 잊고 살아 온 옛 시간이며 옛 친구들을 소환하여 잠시나마 추억과 그리움에 잠기게 합니다. 첫눈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총 앞에서 경건해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더구나 요즘처럼 어려운 때 저렇듯 펑펑 첫 눈이 내리면 그 숭고한 자연의 스펙터클 앞에서 환희를 느끼지 않을 강심장이 있을까요? 

아무리 메마른 사람이라도 첫눈 오는 날 마음속으로 <아, 눈이다!>하고 소리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올해도 저 풍성하게 내린 첫 눈에 부끄러운 것, 아쉽고 속상했던 모든 걸 다 묻어 버립시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밤이 있고, 겨울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일을 믿고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도 부끄럼 없는 새 날을 맞기 위해 모든 때 묻은 것, 추하고 더러운 허물들을 훌훌 다 털어 버리라고 합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나무들이 그 화려했던 잎사귀들을 모두 늦가을바람에 날려 버리고 매서운 겨울 추위를 준비하듯 우리 인생도 어떤 역경이 닥칠 때 오히려 그 위기를 이용해 자신의 삶을 거추장스럽게 하는 모든 장애물들을 깨끗이 정리하는 계기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자다가 깰 때가 되었으니 ...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1-14).

사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만으로 때 묻은 삶이나 타성에 젖은 습성들을 떨쳐버리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오고 시련이 닥치면 지금까지 당연시되던 모든 게 그 뿌리째 다 흔들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밤을 이용해 인박힌 방탕과 술주정, 호색과 싸움, 시기 등을 모두 시련의 바람에 날려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놓아버리고 떨쳐 버리라고 한 것은 사실 보다 더 든든한 것, 보다 더 소중하고 참된 것을 붙잡기 위해섭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말씀인데, 실은 이게 그의 모든 권면의 초점입니다. 확실히 지금은 낮이라면 해가 기우는 황혼이요 계절이라면 한 해가 저무는 겨울의 문턱입니다. 첫눈도 좋고 낭만적이지만 과연 나는 이 겨울바람에 날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듯 든든히 붙잡고 있는가? 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확인이 더 절실한 때입니다.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이 11월 하순, 다들 따뜻한 빛의 갑옷인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