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0 09:26

가을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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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즘 기도를 잊어버렸습니다. 

기도가 많이 낯설어 졌습니다. 

바쁜 일상 때문이기도 하고, 그저 어려울 때만 절실해지는 탓에 기도가 정말 생소해졌습니다. 

믿는 자는 곧 기도하는 사람들이고, 교회는 기도하는 공동체, 만인이 기도하는 집인데 이제는 교회에서 기도가 거의 실종되다시피 했습니다. 갈수록 기도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착각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현실이 쓸쓸하기 그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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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때가 왔습니다 /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십시오> 하고 시작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도 실은 <가을 기도>였습니다. 

뜨거웠던 지난 여름을 회고하며 잘 익은 바람의 향기와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겁니다. 이렇듯 수도사와도 같은 청빈한 영혼으로 자신을 비우며 마치 긴 편지를 쓰듯 맑고 깨끗한 기도를 드리면 우리의 영성도 가을 하늘빛처럼 투명해지고 더욱 깊어집니다. 릴케의 이 <가을날>은 그가 체코의 프라하 대학에서 독일의 뮌헨 대학 문학부로 옮긴 후 낸 생애 첫 시집인 <기도 시집, 1905>에 실린 시로 자신의 간절한 염원을 시적 언어로 옮긴 <기도문>이자 하나님을 향한 치열한 날갯짓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남은 과일들이 무르익게 하시고 / 이틀만 더 햇빛을 주사 / 그것들이 다 제 맛을 내게 하시고 / 진한 포도주의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시인은 가을 햇볕 속에서 익어가는 과일들의 완숙을 기다리며 주님의 은총과 축복을 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을 기도>가 소중한 것은 과일 내음 그윽한 잘 익은 신앙의 열매, 성령의 열매 때문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요 15:8)고 하셨습니다.

릴케는 가을날 느끼는 서정에 열매와 결실을 더해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삶의 깊이를 근원적으로 성찰한 고독과 우수의 시인이었습니다. 이렇듯 <가을 기도>는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만이 가꿀 수 있는 겸허함이자 경건함입니다. 

<이제 곧 겨울이 올 것입니다 /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을 것입니다 /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 /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쓰며 /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 일 것입니다>

릴케의 운명의 겨울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습니다. 흔히 그가 장미 가시에 찔려 사망했다고 하지만 실은 백혈병으로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1926년 12월 29일 새벽 5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합니다. 

시신은 그의 유언대로 스위스 라롱의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고, 묘비 역시 그가 유언장에 남긴 그대로 옮겼습니다. 

<장미여,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며,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자신의 운명의 겨울을 준비하는 엄숙함이 바로 오늘 우리의 진정한 <가을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