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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14는 올부터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었습니다.

 

구약 사사기 19장에는 참 잔혹한 성폭력 사건 하나가 소개됩니다. 

레위인의 첩이었던 한 여인이 남편과 함께 친정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날이 저물어 기브아라는 곳에서 하룻밤 쉬어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그 지방 불량배들이 몰려와 집 주인에게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관계하리라>며 갖은 협박을 다 했습니다. 그들이 <관계하겠다>고 한 것은 노골적인 동성애적 표현으로 당시 그 사회의 문란했던 성문화를 가늠케 하는 대목입니다.


당황한 집 주인이 결국은 타협안을 내놓습니다. <처녀인 내 딸과 이 사람의 첩을 대신 줄테니 그들을 욕보이라!> 집 주인과 레위인은 지체하지 않고 그 두 여인을 밖으로 내보내는데,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레위인이 여인을 꽉 붙잡아 밖으로 밀어냈다>고 합니다.  나가지 않으려고 저항했지만 여인은 끝내 불량배들에게 넘겨졌고, 레위인은 그 대가로 집안에 머물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밤새도록 집단 성폭행을 당한 여인은 새벽녘 간신히 그 집 문턱까지 기어와 죽고 맙니다. 레위인이 아침 일찍 일어나 홀로 도망갈 채비를 하고 황급히 그 집을 빠져나가려다말고 만신창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첩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는 얼른 일으킬 생각은 않고 뻣뻣이 서서 <일어나라!>고만 합니다. 여전히 그렇게 남성으로서, 첩의 주인으로서의 권위만 내세울 뿐이었습니다.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의 구약학자 필리스 트리블 교수는 이 사건을 <우리가 잊고 싶으나 절대 잊어서는 안 되고 오래 되새겨야 할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폭력에 짓밟힌 수많은 이름 없는 여인들의 모습이 이 레위인의 첩에게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고, 또 직접 폭력을 가했거나 그것을 방조한 자들의 죄악과 위선도 함께 폭로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은 밤새도록 불량배들에게 윤간당한 후 집 앞까지 기어와 죽은 이 레위인의 첩보다 훨씬 더 비극적이고 참혹합니다. 증언에 의하면 한국인 위안부 여성들은 하루 평균 일본 군인들을 3,40명, 많은 날은 50명까지도 상대했으며, 오끼나와에서는 하루 100명을 받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어린 소녀들이 죽어나갔고, 성병에 걸리면 가차없이 생체 실험실로 보내졌는데 저 악명 높은 하얼빈의 일본군 731부대에서는 주로 매독에 걸린 위안부 여성들을 마루타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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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 지 73년, 그동안 정부와 교회는 대체 무엇을 했는지 깊이 반성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일본 군인들이 우리의 어린 딸들을 윤간하며 밤새도록 짓밟고 있을 때 우리는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홀로 기브아를 빠져나갈 궁리만을 한 것은 아닌지, 혹은 몸과 영혼을 갈갈이 찟긴 채 쓰러진 그들을 향해 지금도 여전히 뻣뻣이 선 채로 <일어나라!>고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통렬하게 자문해 봐야 할 것입니다. 


한국인 위안부 공수 작전을 지휘한 일급 전범 토죠 히데오끼의 미망인은 매월 80만엔의 국가 원호금을 받으며 호사스럽게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의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은 피눈물을 삼키며 비참하게 살다 하나 둘 외롭게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만약 정부와 교회가 앞으로도 계속 이들을 불편해하거나 외면한다면, 그래서 그들의 한을 제대로 풀어드리지 못한다면 이제 몇 명밖에 남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마저 밤새 문고리를 잡고 절규하다 쓰러져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 고발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