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1 12:13

자유로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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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가 갈수록 치열합니다. 

폭염이 절정으로 치닫는 요즘 마치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밤낮으로 토해내는 뜨거운 자연의 소리에 차라리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최근 시중 유명 서점의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50-60대 독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소설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 중장년층들의 자유인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더 늦기 전에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물론 배부른 노예와 가난한 자유인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는 자유로웠지만 이제는 어디서나 노예가 되어 있다. 자신을 다른 사람의 주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실은 더 심각한 노예가 되어 있다.> 

이 도발적인 글은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의 불을 지핀 장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의 첫머리입니다. 루소의 이런 자유와 평등에 대한 사상이 대혁명의 불씨가 되어 이름 없는 민초들이 일어나 부패한 권력자를 그 권좌에서 끌어내렸습니다. 그 이후 인류는 실로 많은 영역에서 자유를 쟁취했습니다. 신분제와 노예제 폐지는 물론 오늘날 대다수 문명국가 시민들이 누리는 인권, 사유 재산권, 선거권,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과 같은 권리들이 다 불과 수 세기 사이에 주어지고 보장된 자유의 산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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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현대인들은 정말 자유로울까요? 애석하게도 자유를 억압하는 거대한 힘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진보를 눈부시게 이룩한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과거에는 주로 군주들의 폭정과 착취, 종교적 도그마, 가부장적 전통과 일방적인 사회 규범 같은 게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제한했다면 지금은 기득권 세력들의 횡포와 사람들의 탐욕이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내팽개친 채 오로지 소유에만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고 당부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당신은 지금 자유합니까? 정말 그 어떤 것의 노예도 아닙니까? 놀랍게도 신앙생활 자체가 때로 우리를 비굴하게 하는 현실을 봅니다. 이건 대체 뭡니까?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렇게 자유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통쾌한 일침을 가합니다. 소설의 화자가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다 우연히 조르바를 만나는데 이야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조르바의 첫 인상을 묘사하는 대목입니다. <그렇다. 조르바는 살아 있는 가슴과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모태인 대지에서 아직 탯줄이 채 끓어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조르바를 정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는 <자유>입니다. 

그는 전통과 관념과 사회적 규범을 넘어선 진정한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조르바의 인생관은 <앞뒤 재지 말고 일단 해보자!>입니다. 조르바는 이렇게 말합니다. <확대경으로 물속을 들여다보면 균들이 우글거리지요. 그걸 보고는 못 마시지 ... 그러나 안마시면 목이 타고 ... 확대경을 부숴버려요! 그럼 균들도 사라지고, 물도 마실 수 있고, 정신도 번쩍 들 테니까 ...!>


올 여름 휴가 때는 저도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훨훨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