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07 11:57

장마철에

조회 수 178

여름은 아무래도 난폭합니다.

 특히 요즘 같은 장마철이 그렇습니다. 기습적으로 폭우를 쏟아 붓기도 하고, 30도가 넘는 습한 폭염으로 사람들을 지치게도 합니다. 그러나 여름철의 난폭함은 육감적이기보다는 원시적이며 동시에 쾌활합니다. 자신과 세상을 향해 닫혀 있던 눅눅한 시간에서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비는 낙하 순간 지역을 따져 묻거나 인종을 차별하지도 않으며 빈부의 격차로 자신의 결정을 바꾸는 법도 없습니다. 단지 하늘에서 받은 기력과 소명으로 우리의 머리 위에, 삶의 자리와 가슴 위에 한바탕 쏟아져 내릴 뿐입니다. 그래서 숨이 막혔던 영혼들이 기운을 되찾고 흙먼지가 되어가던 우리의 희망이 다시 녹색의 대지로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2473012.jpg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편은 신앙으로 포장된 중세사회의 조작된 신화를 환상적으로 묘사한 세계 문학사의 압권입니다. 지상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도리어 적대하고 배격하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에서 자신들도 믿지 않는 교리를 대중들에게 강요하며 오로지 특권을 보장하는 성채만을 수호하려는 세력들의 위선적인 정체가 적나라하게 폭로됩니다. 그들이 원한 건 주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세가 대중들의 뇌리에 영원히 뿌리내리는 것임을 대심문관의 발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깃발은 단지 그들의 영토를 성역화 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상징일 뿐, 그 안에 담긴 새로운 역사에 대한 열망 같은 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불온한 망상이므로 아예 차단해버립니다. 결국 대심문관은 그리스도께 괜히  지상에서 얼쩡거리며 대중들의 마음에 저항의 불을 지피지 말라는 요지의 논고와 함께 추방령을 내립니다. 대중들이 진실을 깨우치는 순간, 그들이 그동안 보존해온 중세라는 성채가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와 계급의식>을 쓴 게오르그 루카치는 <인간의 영혼을 불구로 만들고 비인간화시키는 일체의 주장과 교리, 그리고 사상과 체제에 대한 끊임없는 싸움이 결국 이 사회를 새롭게 만들어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안 불안해 하면서도 트럼프의 <수완>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보기로 한 우리네 처지가 갈수록 처량해지고 있습니다. 애써 그에게서 정치, 외교 고수의 풍모를 찾아보려고 눈을 크게 떠보지만 보이는 것은 다 허풍과 허세, 횡설수설과 자화자찬뿐인 것 같아 허탈감만 커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전 세계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고 무역전쟁에 까지 돌입했으니 새우등 터지게 생긴 우리로서는 또 하나 큰 걱정만 는 꼴입니다. 한 때 우리에게도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당연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그렇게 물었다가는 낡고 진부한 세대로 치부되기 십상입니다. 대신 지금은 <누가 인기가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대중의 인기가 성공과 행복의 척도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을 따지는 세상에서는 가치에 대한 성찰이 빛을 잃습니다. 


비록 꿉꿉하고 습하더라도 짜증부리지 마십시오. 아무리 변덕스럽다 해도 장마는 올 역시 자신의 일을 마치면 깨끗이 물러갈 줄 아는 가장 지혜로운 모습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