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30 09:56

맥추절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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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는 참 무섭고 처절했습니다.

양식은 일찌감치 동이 나고 햇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은 5, 6월 춘궁기, 사람들은 하도 굶어 다 누렇게 부황이 나고 심지어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흙을 파먹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아득한 옛날 얘기가 아니고 불과 4,50년 전의 우리네 봄날 풍경이었습니다. 

어느새 올해도 벌써 절반을 보냈습니다. 어떻습니까? 지난 반년을 중간 결산하는 당신의 마음속에 진심 어린 감사가 있습니까? 만약 지금 당신의 가슴속 깊은 곳에 아무런 감사의 염도 없다면, 그럼에도 당신이 놀라지 않고 여전히 무덤덤하다면 지금 당신의 마음은 단단히 병든 겁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늘 가슴이 냉랭해 그 어떤 사랑의 씨앗도 싹을 틔울 수 없습니다. 

살다 보면 모든 게 다 짜증스럽고 싫증날 때가 있습니다. 혼자 있고 싶거나 혹은 세상엔 오직 나뿐이며 모두가 타인이라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또 내가 처한 지금의 상황이 죽도록 싫어질 때도 있고, 내가 가는 길이 막막해서 생각할수록 절망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무조건 눈 딱 감고 한 번 감사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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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것도, 살아 있음도, 오늘 한 끼 밥을 먹을 수 있고 거기다 커피 한 잔, 차 한 잔까지도 마실 수 있음을 감사해 보십시오. 아주 작은 것,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해 보십시오. 어느 권사, 집사에게 전화해서 잠시나마 수다 떨 수 있는 여유에 대해서도 감사해 보십시오. 

그러면 분명 살아가는 느낌이 다르고 일 하나, 사건 하나를 바라보는 시각이며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내 관점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겁니다. 

첫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여자가 아니면 죽고 못 살 것 같고, 이 남자가 아니면 이 세상에서 의미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을 것 같았어도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 때 그 첫 사랑에 실패한 것도 다 주님의 사랑이요 은혜였음을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아니라구요? (당신은 오늘 아내 혹은 남편에게 죽었다!)

제 얘기는 우리가 아주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조차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크게 감사하면 하나님이 송구스러워 결국은 더 많은 은혜로 갚아 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민망해 하시며 <알았다! 알았다! 내가 네게 너무 적은 걸 줘서 미안하구나!> 하시며 엄청 큰 것을 허락하신다는 겁니다. 따라서 주님이 정말 무안해 하시고 죄송해 하실 만큼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조금은 과장되게 감사해 보시라는 겁니다.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은 특히 맥추절에 대한 감사가 남달랐습니다. 절박한 생사의 기로에서 햇보리를 수확해 목숨을 부지했으니 그 감사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보리떡 얘기도 항상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처음 수확하여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이것을 무리에게 갖다 주어 먹게 하라>(왕하 4:42). 흉년으로 극심한 기근에 빠진 백성들에게 선지자 엘리사가 자기 몫의 보리떡을 나눠준 것입니다. 주님도 굶주린 5천 명 이상의 군중들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맥추절은 감사와 나눔의 절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보릿고개지만 저 북녘 동포들에게는 아직도 그게 죽음의 고개입니다. 우리는 영양이 넘쳐 누구나 다이어트가 최대 관심사지만 북녘 동포들은 지금도 식량 부족에 울고 있습니다. 보리떡은 혼자 먹으면 다섯 개지만 서로 나누면 5천 개, 5만 개로 증식됩니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 산 너머 남촌에서 불어오던 훈훈한 봄바람은 삶의 환희였고, 더구나 이맘 때 쯤 진동하던 보리 익는 내음은 그야말로 삶의 무한한 희망이었습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으신 여러분 가정과 우리 사회, 그리고 저 북녘 동포들에게 생명과 희망의 새 기운이 충만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