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4 09:42

영원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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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에게는 청천벽력이었습니다.

툭하면 불만을 터뜨리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남을 선동하고 작당하는 오합지졸들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는데 <너는 가나안에 못 들어간다>(민 20:12)니 이런 가혹한 처사가 어디 있습니까? 

백성들의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 줄 량으로 지팡이를 휘두르며 반석을 두 번 친 죄밖에는 없는데 가나안 입국 비자를 못내 주시겠다니 당시 모세의 절망감은 이해를 하고도 남습니다. 억울하여 막 항변하고 싶은 가슴이 얼마나 미어졌을까요?

그러나 그 때 만약 하나님이 모세의 그런 혈기를 아무것도 아닌 양 넘기셨다면, 그래서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실제 가나안에 들어갔다면 또 어떻게 됐을까요?

무슨 일이든 자기 뜻에 조금만 어긋나도 가차 없이 제거해 버리는 전제 군주가 됐거나 모든 공적을 자신이 독차지하고 책임은 모두 남에게 씌우면서 오로지 자기의 영광만을 구하는 인간형이 됐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모세도 결국은 어리석은 지도자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고, 또 그런 지도자를 둔 백성들 역시 그만큼 불행한 인생들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 므리바 사건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교훈은 하나님이 백성들의 반역보다도 모세의 대응 자세를 훨씬 더 문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그 어떤 역사의 무게도 감당하려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불만만 쏟아내는 백성들의 패역을 합리화 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의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그 자신이 불의한 방법의 유혹에 빠진다면 그거야말로 명백한 자가당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도자의 허물에 훨씬 더 엄격하시고 가혹하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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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때가 이르렀습니다. 

모세의 나이 120세, 

그러나 성경은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눈이 흐리지 아니 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 하였더라>(신 34:7)고 전합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40년의 세월이 그에게는 극심한 마음고생, 몸 고생의 연속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성품은 찌부러들고, 기력은 완전히 소진되고, 눈초리는 한없이 남을 의심하는 투가 되고, 사랑은 커녕 심술만 늘어 총기 대신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 찬 늙은이가 되기 십상이었을 사람입니다. 

더구나 천신만고 끝에 이제 가나안을 목전에 뒀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더 더욱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끝까지 사탄의 올무나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육신의 나이 120세였으나 오히려 <눈빛이 총총하고 기력이 짱짱한 영원한 청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의 이런 모습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꼭 본받아야 할 인생 최후의 로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식지 않는 열정을 품고 기도하십시오. 뒷짐을 지고 감 놔라 배 놔라 잔소리만 느는 노인이 되지 말고 늘 꿈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가지십시오. 

육신은 노쇠해 갈망정 속사람만큼은 늘 청년의 기개로 거침없이 미래를 열어가는 성령 충만한 심령이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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