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4 12:16

돌을 던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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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가 지났습니다. 

맹렬했던 추위가 어느 새 누그러져 봄기운마저 감돕니다. 

초목에 물이 오르고, 머지않아 봄의 전령들이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에 바쁜 요즘 겨우내 움츠렸던 우리의 몸과 마음도 한껏 기지개를 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영국의 극작가 피터 쉐퍼(Peter Shaffer)의 <에쿠우스>(Equus)라는 작품은 17세의 한 소년이 여섯 마리의 말의 눈을 찌른 잔혹한 실화를 바탕으로 쓴 유명한 심리극입니다. 

엄격하고 교리적인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와 억압이 말에 대한 기이한 복수로 나타난 <에쿠우스>는 도저히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세계를 꼼꼼하게 그려낸 수작으로 꼽힙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자동차 가운데도 <에쿠우스>가 있고, <아반떼>라는 것도 있습니다. <에쿠우스>는 라틴어로 <말>이고, <아반떼>는 스페인어로 <앞으로 돌진>이라는 뜻이어서 자동차 이름으로도, 또 저돌적인 현대자동차의 경영철학과도 잘 어울리는 작명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게 에쿠우스든 소형 아반떼든 홀로 독주를 하거나 남 먼저 <앞으로 돌진>하는 일이 결코 미덕일 수만은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빠른 것이 이기는 것이고 큰 것이 성공이라는 논리도 이제는 진부하고 유치한 신념이 되고 말았습니다. 앞서 달리는 자, 위에 있는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생각도 저급하고 극히 위험한 발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몰아치고 있는 열풍, 이미 국내에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me too>도 앞서 달리는 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희생자, 피해자들의 분노와 고발 아닙니까? 느려도 옳게 가는 것, 남을 해치거나 범하지 않고 더불어 가는 게 진정한 승리의 길이며, 남이 볼 때는 빠르지 않고 높지 않아도 자신에게 귀하고 소중하면 그 자리가 진정 성공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폐막하는 평창 동계올림픽은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치러진 대회로 평가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지난 19일에 있었던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팀추월 경기는 확실히 옥의 티였습니다. 동료 선수를 뒤에 두고 역주한 두 선수의 레이스는 분명 국민들에게  큰 좌절감과 실망감을 안겨줬습니다. 그것은 달리는 말의 눈을 찌른 <에쿠우스> 사건이자 오로지 <앞으로 돌진>만을 외쳐 온 우리의 <아반떼> 문화의 부끄러운 민낯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이 시대 우리 모두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네 탓>에 익숙하고, 목표를 위해서는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결과주의>가 마침내 그 두 선수를 동료보다 무려 40m나 앞서게 한 것입니다. 비록 뒤처진 사람이 있더라도 나와 내 자식만 앞서면 그만이라는 풍조가 만들어낸 필연의 결과물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중 누구도 그들에게 돌을 던져도 좋을 만큼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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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게시판의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 박탈과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바란다>는 국민청원이 제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어제(토) 오전 9시 30분 현재 58만7천75건이었습니다. 역대 최단기간 최다 청원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평창의 언 땅을 파고 그 두 소녀를 생매장하는 짓에 다름 아닙니다. 제발 이제 그 돌을 내려놓으십시오. 너무 잔인합니다. 잘한 것은 아니지만 죽을 죄를 진 것은 아니며 그것은 또한 그들의 문제 이전에 연맹의 문제고, 연맹 이전에 우리의 문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노여움을 내려놓고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십시오!> 솔직히 지금은 인성 운운하며 <선수 자격을 박탈하라!>고 누구를 단죄할 때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조용히 자성할 때입니다. 

부디 뜨거웠던 평창의 겨울이 우리 모두의 기억에 오래도록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