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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오후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테마별 시대별로 잘 분류되고 정리된 여러 개의 방을 지나 두껍고  검은 커튼이 쳐진 마지막 특별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막힐 듯한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며 희미한 조명 속에 드러난 <걸어가는 사람>, 이번 자코메티 전시회의 백미로 꼽히는 그 <걸어가는 사람>은 청동 조각이 아니라 그 이전의 원본 <석고 조각>이어서 존재감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무덤 속에서 살아나온 듯 뼈만 앙상한 외모에도 실로 소름끼치는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걸어가는 사람>(청동)은 2010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200억원에 낙찰되어 역대  최고 경매가인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2004년 1100억원)을 누르고 세계 경매 역사의 신기록을 세운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선뵈는 <석고 원본>은 그보다 3배 이상 비싼 3800억원에 이른다니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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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는 생전에도 자코메티에게 늘 굴욕을 당했습니다.  20세기 미술의 거장인 파블로 피카소는 오만한 성격으로 흔히 다른 예술가들을 무시하고 경멸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피카소가 인정한 예술가는 세상에서 오직 두 사람, 한 명은 앙리 마티스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였습니다. 피카소는 자코메티와 교류하며 늘 그의 비평을 듣고 싶어 했을 뿐 아니라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시기하고 질투할 정도로 몹시 부러워했습니다. 자신이 구현하지 못한 조형적인 새로운 언어를 창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피카소가 말년에 자신의 부를 즐기며 점차 상업화되어 간 반면 자코메티는 여전히 7평짜리 작업실에 틀어박혀 묵묵히 작품에만 열중했고, 자신의 작품 속에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피카소와는 달리 자코메티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오직 인간과 예술의 본질만을 추구한 데 대한 일종의 열등감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피카소는 죽음 직전 <누구를 가장 보고 싶으냐?>는 질문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한 번 자코메티를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0.10.-1966.1.11.)는 스위스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로 철사처럼 가늘고 긴 형상을 통해 주로 고독하고 무력한 인간 군상을 추상화하여 세계대전 이후 피폐해진 인류의 정서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지성계를 뒤흔들었던 실존주의의 대표주자인 장 폴 사르트르와도 평생 절친한 사이였고,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작품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 디자인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1985년 쯤 독일 뮌헨의 현대미술관(Neue Pinakothek)에서 처음 자코메티의 작품을 대하고 <저 비쩍 마르고 볼품없는 청동 조각의 걸음걸이와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좌상들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것인지를 통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놀랍도록 깊은 감동이 가슴을 적셨습니다.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가야만 한다!>(‘걸어가는 사람’에 대한 자코메티 자신의 해설)

그렇습니다. <걸어가는 사람>은 확실히 자코메티 생애 최고의 걸작이자 불후의 명작이며 실존의 불안을 딛고 위태롭게 걸어가는 현대인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오직 뼈와 가죽만을 걸친 듯한 형체를 두고 자코메티는 육체가 아닌 영혼만을 담았다고 했는데, 그래선지 보면 볼수록 비범해 보였습니다. 

인간의 육체미를 예술로 승화시킨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로댕에 이르기까지 그간 우리가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던 아름다운 인체 미학과는 전혀 거리가 먼 자코메티의 작품들은 모두가 가늘고 유약한 구조를 가지지만 또한 가슴 조이는 긴장과 힘을 느끼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부러질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두 눈을 부릅뜬 채 한없이 걸어가려는 생의 어떤 의지를 느끼게 합니다. 


그날 저는 남루한 영혼만을 걸친 채 무너질 듯 퀭한 두 눈으로 <걸어가는 사람>에게서 영락없는 저의 자화상을 보고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