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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현실성과 종말론적 공동체의 동일성


in: 장신논단 제7집(1991), 206-226


I. 문제제기


신학적 사고는 역사적 사고라고 한다. 이는 관념적이며 추상적인 논법이 아닌 실천적이고도 구체적인 논법이어야 한다는 뜻일 게다. 따라서 그것은 역사적인 객관성의 맥락에서 신학자의 희망과 주장과 실천을 뜻하는 일종의 프락시스다. 그러므로 본고는 공허한 미래적 외삽법(外法)이 아닌 필자 나름의 역사적 사고의 산물임을 밝혀둔다.


‘하나님 나라’가 예수의 선포와 교훈의 요약이요, 핵심이라는 데는 성서학자들 사이에서도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서구학자들의 논의 과정을 보면 주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현재적인 것이냐 혹은 미래적인 것이냐 하는 문제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온 듯하고, 또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열쇠나 되는 듯이 열을 올려 온 것 같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아직까지도 그 나라의 현실에 대해서는 거의 불가지론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성격을 강조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종말성이라는 것이 역사의 종말이라는 맥락에서 보다는 인간이 간섭할 수 없는 오직 신의 영역이라는 사실만으로 해석됨으로써 인간을 그 현실 앞에서 지극히 수동적일 수밖에 없게 했고, 나아가서는 사람의 영역을 넘어서는 피안적인 것으로만 못박아 버리게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서구 신학자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해 온 소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다. 알 수 있고 현재적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낡은 것이지 새 세계로서의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말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강조하면서도 실은 그것에로의 접근을 막았으며, 또 그러한 입장이 바로 성서적이라고 강변해 왔다. 즉 복음서에 등장하는 빈번한 하나님 나라의 비유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나라에 대한 내용에 관해서는 이렇다할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하기야 하나님의 나라란 곧 기존질서의 종국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역사적 예수’가 겁나듯이, 그래서 ‘케리그마 예수’를 고집하듯이 ‘하나님 나라’도 겁나는 주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란 결국 자기네의 안락한 삶을 여지없이 비판하고 깨뜨리는 것이니까 금을 쭉 그어 놓고 여기까지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그러니 이 영역에는 관여하지 말자 -그렇게 해 놓아야 안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서구신학의 이런 입장에는 몇가지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맥락이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하나님 나라’라는 용어가 구약성서에는 없고 특히 예수에게 와서 급진적으로 발전된 사상이라고는 해도 그것이 반드시 신약성서에만 국한된 사상은 아님이 자명하다. 고대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출발했고, 야훼 하나님이 그들의 통치자이며 왕으로 고백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는 이스라엘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성장해 온 희망이다. 그럼에도 이런 역사적 측면이 간과 되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그의 삶의 행태와 연관시키지 않고 그저 하나의 개념으로만 취급해 왔다는 점이다. 그의 선포는 그의 삶, 그의 행태와 결부시켜 볼 때 비로소 그 구체성이 드러나게끔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 지적할 사항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그 시대상황, 그 시대만의 독특한 ‘삶의 자리’와의 관련에서 조명하는 작업을 소홀히 했다는 점이다. 대개 이상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한 반성을 염두에 두면서 이제 그 나라의 실상을 묻기로 하겠다.


II. 하나님 나라의 실제성


예수는 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했을까. 그것은 아마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자명한 문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요즘 누가 “통일!”하고 외첬을 때 “그게 뭐요?”하고 물을 사람이 없듯이 하나님 나라라는 말도 오늘 우리에게나 낯설지 당시의 팔레스틴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 뻔하다. 그러므로 예수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많은 비유를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 나라 그 자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점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새삼스레 정의할 필요가 없었던 현실의 반영일거란 얘기다. 즉 당시에 이미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고 있던 기존 운동권의 인식과 염원을 예수도 자명적으로 전제했기 때문일 거라는 거다. 만약 그렇지 않고 예수가 갈릴리 사람들이 그들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가지게 된 그 나라의 표상과 다른 어떤 현실을 말하려 했다면 당연히 구구한 설명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예수가 자명적으로 전제한 듯한 당시 갈릴리 사람들의 하나님 나라 이해는 어떠했을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권을 뜻한다. 하나님의 주권이 확립된 현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주권을 그렇듯 철저하게 내세운 것은 그들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서구 그리스도교는 지금까지 하나님 나라를 주로 종교적 개념으로 또는 정신적 표상으로 추상화 해 버리기가 일쑤였는데 그것은 교회가 정권과의 공존을 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왜곡시킨 것이고, 본디 성서의 그 나라는 어디까지나 역사적 현실, 정치적 현실과 직결된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 나라는 종교적 개념이기 이전에 정치적 개념이다. 이 사실은 고대 이스라엘의 ‘야훼만(mono Yahwism)’이라는 절대성, 배타성이 실은 종교간의 경쟁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이 거부하고 탈출한 군주들의 절대 주권에 항거하는 신념이었음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자명해 진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주권만이 군림하는 현실로서 땅위의 온갖 군주적 권력의 종언을 의미하므로 결코 정치적 성격이 배제될 수 없다. 이같은 이해는 다윗왕조 이전의 고대 이스라엘로 거슬러 올라가봐야 그 필연성을 알 수 있게 된다. 고래 이스라엘의 부족동맹을 형성한 히브리가 종족 개념이 아니라 사회학적 개념이라는 사실은 이미 정설로 되어 있다(M. Noth, N. K. Gottwald, J. Bright, M. Weippert, G. e. Mendenhall). 즉 하삐루('apiru/Habiru/Hapiru)라는 에집트의 노예계층이 탈출하여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자주적인 자치동맹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에집트 군주주의 압제에서의 탈출로부터 시작된다.


에집트는 신정제국(Theokratie)이었다. 파라오는 세계를 창조한 신 호루스(horus)가 인간이 된 살아있는 신이었다. 바로 그런 파라오의 쇠사슬에서 탈출한 그들은 정착할 곳이 마땅치 않아 오랜 유랑 생활을 계속하다 마침내 가나안 땅을 정복한다. 그러나 그곳은 무인도가 아니라 여러 군주국이 웅거하고 있는 곳이었기에 그들의 정착은 가나안의 기득권자들에게는 무자비한 침략이었고 하삐루편에서는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마저 또 다시 어떤 군주치하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유는 바로 그러한 군주국이 싫어서 탈출해 왔기 때문이었다. 처절한 투쟁을 통해 그들은 현지의 여러 군주 밑에서 혹사당하던 농노들과 제휴하여 마침내 고대 이스라엘 부족 동맹을 형성한다. 열두지파란 바로 그 때 결성된 각 부족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부족 동맹을 지탱하는 결정적인 구심점이 바로 군주제도의 배격이었고 그것이 곧 ‘야훼만’이라는 절대적 기치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즉 야훼 외에 그 어떤 인간의 주권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군주들의 혹독한 지배아래 살아온 하삐루들로서는 ‘야훼만’이 통치하는 사회야말로 그들의 이상이요 염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 기치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의 백성이라는 신념의 표현이기 이전에 인간에 의한 일체의 인간 지배에 항거한다는 정치적 결단의 선언이었다. 


하나님 주권의 확립은 인간의 군주국과 병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도래의 선언은 인간의 권력 독점의 종언을 의미한다. 아닌게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이 온갖 외세의 위협을 물리치고 결속하여 민권에 의한 공동체를 약 200년간이나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야훼만’이라는 신념 아래 굳게 뭉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가 마침내 다윗에 의해 파괴되고 만다. 군주파들이 날로 득세하여 사무엘이 마지 못해 사울을 왕으로 세우지만(삼상 8장) 그러나 그것은 아직도 본격적인 군주체제는 아니었는데 반디트(Bandit)를 지휘하던 다윗(삼상 22, 1-2; 27, 8)이 무력으로 유다지파에 군림하여 왕이되고(삼하 2, 3-4, 11), 블레셋의 침공에 탈진한 북이스라엘의 사울을 협공하여 이스라엘을 뺏은 다음 그것을 유다와 병합하여 명실 상부한 이스라엘 통일왕국을 수립한 것이다(삼하 5장). 이때부터 본격적인 다윗 왕조가 시작된다.


그는 권력의 독점을 정당화하기 위해 야훼의 상징인 법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하고 다윗 왕조의 수호신으로 삼았는데(삼하 6장), 그의 아들 솔로몬에 와서는 그 위에다 성전을 짓고 스스로 대사제를 겸하며 야훼가 성전에만 임재한다는 강제된 신학을 세우고, 야훼를 감금하여(왕상 8, 12f.) 다윗 왕조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그러나 이렇게 세워진 다윗 왕조는 솔로몬 그 다음대에 곧 남북으로 분단되고 만다(왕상 12, 20ff.).


분단된 이후에도 그들은 연이은 외세의 침략으로 수난을 거듭하다 결국은 재기 불능의 약소국이 되어 신흥제국의 속국으로 겨우 그 명맥만을 유지해 왔다. 한편 이런 파란의 역사 만큼이나 하나님의 주권을 갈구하는 민중들의 소리도 날로 높아져 갔는데 그것은 대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표상으로 나타났다. 첫째는, 고대 이스라엘, 즉 200년간 계속된 군주없는 해방 공동체, 평화 공동체, 평등 공동체가 곧 하나님의 나라로 표상되었다. 후예 예언자들이 나타나 부패한 정권을 고발하며 제시한 이상적 체제가 바로 이 모델이었다. 둘째는, 다윗 왕조에 의해 세뇌된 지배층들의 하나님 나라 표상인데 그들은 당연히 다윗 왕조의 재건을 하나님 주권 확립이라고 생각했다. 계속적으로 외세의 침범에 시달린 작은 민족으로서는 강대했던 다윗 왕조의 재건을 바로 하나님의 주권 확립이라고 이상화한 것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염원이 마침내는 다윗의 계봉서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대망으로 이어진다. 셋째는, 포로 후기와 페르시아를 거치면서 유입된 묵시사상에 의해 더욱 철저하게 종말론적으로 변형된 하나님 나라 표상이다. 즉 이는 야훼가 임하셔서 세상 왕국을 멸하시고 궁극적인 샬롬을 주신다는 사상이다. 이상과 같은 몇 갈래의 전통이 있으나 어떤 표상으로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갈구는 줄기차게 계속되어 왔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순전히 묵시문학에서 하나님 나라 사상을 채용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위에서 살펴 본 바처럼 하나님 나라 사상은 사상이기 이전에 그들의 민족사를 통해 수난을 당해온 이스라엘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갈망, 우리식으로 얘기하면 민중들의 한(恨)같은 것이었다. 지상의 나라는 어떤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었다. 한 때 하나님은 당신께서 지으신 세계를 보며, “좋구나, 참 좋구나!” 하고 감탄하신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역사에 대해서는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기껏해야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을 비웃는 반역의 역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침입하셔서 이 악몽같은 역사를 구원해 주실 미래를 기다렸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사상은 Status quo에 대한 부정으로서, 희망을 미래에다 투사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태평성대 보다는 절망의 시기에 더욱 강렬하게 작용해 왔다. 또한 율법의 엄격한 준수를 가르친 권내의 제사장들 보다는 불의를 가차없이 고발하며 심판하러 오실 하나님의 전령을 자처한 예언자들에 의해 신학적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사와 팔레스틴 민중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 두 흐름이 한 덩어리가 되어 면면히 흘러내려 오다가 결국 예수 시대의 갈릴리 지방에서 폭발하여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가 하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당시 갈릴리 사람들의 하나님 나라 이해나 대망이 대체 어떤 전통에 그 맥을 대고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이해를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수 시대의 갈릴리 민중들에게 반영된 하나님의 나라는 고대 이스라엘의 이상에 닿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갈릴리 사람들이 실제 얼마만큼 스스로를 이스라엘의 후예라고 생각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지역적으로도 갈릴리 지방은 분명 고대 이스라엘의 판도에 속한다. 예컨대 북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이 블레셋과 싸운 곳, 또 그 다음에 다윗의 협공을 당한 곳, 그리고 그가 죽고 그의 아들이 피난간 지역이 모두 갈릴리였다. 그렇다면 갈릴리가 고대 이스라엘의 후예라고 보는데는 하들 무리가 될게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다우시 때만해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절충하면서 각료들을 절반씩 안배하는 등 제법 신경을 쓰는데, 솔로몬대에 이르면 남쪽 유다가 중심이고 북이스라엘은 천대했을 뿐 아니라 북이스라엘 출신의 각료들 마저도 완전히 숙청해 버린다. 솔로몬은 철저한 유다주의자로서 반이스라엘의 극단을 걸은 사람이었다. 물론 북이스라엘이 먼저 망하고 남쪽 유다는 훨씬 후에까지 살아 남았기 때문에 유다 중심주의, 유다 우위정책이 예수 시대에까지 계속될 수 있었던게 사실이고, 또 유다 중심 사상에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대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꿈꾸던 하나님 나라는 역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한 다윗 왕조의 재건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이스라엘의 후예인 갈릴리 사람들에게는 결코 다윗 왕조가 모델일 수 없었다. 그들에게서의 하나님 나라의 원형은 의심할 여지 없이 다윗 왕조 이전의 고대 이스라엘 체제였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에집트를 탈출한 노예들이 가나안의 농노들과 야훼 신앙으로 뭉쳐서 동맹을 결성하여 봉건영주들을 무찌르고 새로운 평등주의 공동체를 이룩해서 근 200년간이나 살았던 그 꿈같은 시대의 고대 이스라엘 사회를 동경하며 그것을 바로 하나님 나라의 모델로 삼았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중국에서 고대 요순(舜)시대를 그리워하며 새 시대의 이상으로 삼았던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람 위에 사람없다. 우리의 주인은 오직 야훼 한분 뿐이다!”는 그들의 외침은 다윗 왕조이래 계속해서 왕권에 시달리고 끊임없이 교체된 외세에 시달림 받은 역사 속에서 인간이 지배하는 사회구조, 정치구조는 그게 어떤 것이든 받아들일 수 없다.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지배할 수 없다는 정치적 저항을 담은 절규였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는 정치적 억압, 경제적 수탈로 부터의 해방을 희구하는 것과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였는데 강조점이나 긴박감은 오히려 전자에 있었다. 이런 점과 관련해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제일(第一)이 바로 세례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갈릴리에서 였다는 점인데 이게 무엇을 시사하느냐 하는 거다.


서구 신학자들은 마가복음 1, 14을 마가의 편집구라고 해서 가볍게 처리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이것이야 말로 그 때의 정치적 정황을 가장 적절하게 설명하면서 그것의 하나님 나라와 관계, 또 갈릴리 지방의 하나님 나라 운동과의 관계를 꿰뚫어 놓은 결정적인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처럼 예수나 당시 갈릴리 사람들의 하나님 나라 이해는 고대 이스라엘 체제를 모델로한 정치적 표상이 분명했음에도 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교의 하나님 나라는 자꾸만 피안화되고 정신화 되어 왔다. 그것은 종말의식이 약화된 데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삶의 저편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고, 마침내는 오늘날과 같은 교회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념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아무런 실효를 거둘 수 없게 된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III. ‘하나님 나라’의 운동성예수의 선포으 핵심이 하나님 나라이고, 그것이 곧 예수 사상의 정점을 이룬다면, 우리는 그의 삶 전체를 그 나라 도래를 위한 운동으로 봐야 정당하다. 세례자 요한의 체포와 함께 갈릴리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주권 회복을 외치며 공생애에 나선 때로부터 마지막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하기까지의 그의 생애는 모두 그 나라를 위한 투쟁의 기록이라고 봐야 옳다.예수에게서의 하나님 나라는 객체가 아니었다. 그의 하나님 나라는 프락시스 속에서 실현되는 현실이었다. 지금까지의 신학은 주로 하나님 나라가 현재적이냐 미래적이냐 하는 논란에 정력을 소모해 왔다. 그런데 사실 그런 논의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운동에 투신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한가한 구경꾼들의 신학적 사변으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그것이 현재적이냐 미래적이냐를 생각할 겨를이 과연 있겠는가. 예를 들어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하는 입씨름도 아직은 현실과 일정거리를 두고 관망하는 사람들의 시비지 당장 목에 칼이 들어오는데 무슨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선이냐 악이냐를 운운할 여지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나라가 미래적이냐 현재적이냐 하는 문제도 그걸 하나의 객체로 놓고 관조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 있는 사람들의 얘기고 정작 갈릴리 사람들이나 예수에게는 결코 그런 식으로 사변을 농할 여지가 없었을 거라는게 필자의 확신이다. 그러기에는 현실이 너무나도 절박하지 않았나. 그들에게는 당장 몸을 내대며 싸우고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한 일 그 자체였다. 그러므로 몸을 던져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왔다”와 “올 것이다” 사이에 구별이 있을 수 없다. 또한 그 나라에 대한 신앙과 눈 앞에서 지금 전개되고 있는 운동도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운동을 신앙의 인카네이션으로 파악하는 것은 옳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현단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 나라 운동에 구체적으로 투신하는 형태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현실은 동적인 것이지 결코 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서로 유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하튼 교회라든가 어떤 사회체제 등 기존의 그 어떤 것과 하나님의 나라가 동일시 될 수는 없지만, 오직 실천 속에서만 그 나라는 생생한 오늘의 현실이 된다.


그럼 이제 하나님 나라의 운동성이라는 측면에서 예수의 행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추적해 보자.우선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콘텍스트, 장(場)이었던 갈릴리 지방에 대한 전이해(前理解)가 필요하다. 당시 갈릴리는 사제와 종교 귀족들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과는 아주 상반된 삶의 질서와 이해관계를 가진 지역으로 온통 하나님 나라 대망의 열기로 가득찬 곳이었다. 소위 ‘탈예루살렘파’라고 하는 젤롯당, 에쎄네파, 세례요한파 등이 모두 갈릴리에 근거지를 틀고 나름대로 하난ㅁ 나라 운동을 하고 있었고, 이른바 암 하아레츠와 그들에 의해 결성된 게릴라 부대도 역시 갈릴리를 중심으로 활약했다. 그들 가운데는 비적들, 도적들도 있었고, 거덜 난 사람들이 오갈 데가 없으니까 산으로 기어들어간 경우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러나 대부분은 진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는, 또 그걸 위해서 로마 제국과의 투쟁에 자기 일신을 내던진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그런 곳이었다. 


예수의 무리, 예수의 공동체도 물론 이런 탈예루살렘파에 속했다. 예수 당시 시리아 주둔 총독이 군대를 직접 지휘하여 갈릴리 지역에서 소탕작전을 펼쳤는데 어떤 동굴은 그 속에 게릴라 부대가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끝내 토벌을 못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 만큼 저항이 완강했고, 지형적으로도 어려웠음을 시사한다. 당시 갈릴리 사람들은 이른바 삼중적 착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각종 형태의 종교적 명분의 착취를 당했고, 로마의 괴뢰정부인 헤롯 정권의 봉건지대 착취, 거기다가 세금 징수원들을 통한 로마의 보다 직접적인 착취에 철저하게 희생되고 있었는데 예를 들어 예수 당시 헤롯 안디바스가 갈릴리에서 매년 2백 달란트를 거두고, 로마는 연 6백 달란트를 세금으로 징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바로 이런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라는 기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은 지금 주전 63년 이래 거의 백년 가까운 세월을 로마 제국의 압제 아래 신음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그들로서는 완전히 체념하거나 아니면 혁명적인 역사 변혁을 통해 그 나라를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젤롯당은 바로 그런 풍토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운동이었는데 그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 건설과 로마-예루살렘 세력 타도를 여지없이 일치시켰던 사람들이었다. 예수는 그러한 젤롯당과 세례요한파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에쎄네파에 대해서 조차도 일체 비판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를 테면 그들의 비밀을 보호해 주기 위해서였거나 아니면 너무도 자명한 일체감을 느껴서였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당시 예수 공동체를 비롯해서 이른바 탈예루살렘파들은 하나같이 예루살렘 성전체제를 공격했다. 그 점에서 그들은 똑같은 노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독특한 것은 예수가 그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있어서 기존의 운동들 속에 합류하지 않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운동의차원에서 보자면 예수가 제자를 삼았다는 것은 곧 동지를 규합했다는 말이 된다. 사실 우리가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예수가 갈릴리의 젊은이들을 만나고 그들을 동지로 규합해가는 과정을 어렵지 않게 눈 앞에 그려낼 수 있다.


어떻게 만나자마자 날 따라 오란다고 무턱대고 따라 나서고 그랬겠는가. 그런 일이 어떻게 사전 접촉없이 가능했겠는가. 예수의 베드로, 요한같은 젊은이들과의 접촉은 요한복음이 가장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분명 서로 어떤 내적 연계가 있었던 것으로 서술되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모두 비밀리에 모이면서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 서로 애쓰는 그런 젊은이들이었다.예를 들어 여기저기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시국을 걱정하고 하나님 나라 일을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예수가 그들을 만나서 “드디어 때가 왔다. 모이라!”고 말한게 아닐까. 그래서 젤롯당원도 들어오고, 세례요한파도 들어오고 ……. 이렇게 운동적인 차원에서 볼 때 예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자기 자신의 구상을 어떤 총체적인 실천을 통해 펼쳐 나갔던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를테면 예수가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한 것은 어떤 종교적인 해석의 여지 이전에 구체적인 실천 계획의 한 시점, 즉 ‘카이로스’를 말한게 아니었겠는가 하는거다.


분명 예수가 “때가 찼다”고 말한 것은 어떤 막연한 의미의 때가 아니다. 사회변혁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궐기할 때가 왔다는 뜻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예수가 실제 민중들 앞에 어떤 투쟁 전략이나 방향을 제시한 적이 있는가. 이 점과 관련해서 서구의 성서학자들은 예수가 의도적으로 예루살렘에 올라 갔다는데 대해 회의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런 입장은 성서의 문자에만 매달린 소치다. 우리는 그 때의 운동 분위기에 주목해야 한다. 탈예루살렘파로 분류되는 무리들이 한결같이 예루살렘을 숙청해야 한다고 벌렸던 점을 고려하면, 예수가 예루살렘을 주공격 목표로 삼았다고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성전을 공격하면서 사전에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분명 예수의 예루살렘 성전 숙청은 개인적인 거사가 아니었다. 젤롯당만 해도 일차적으로는 로마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예루살렘 세력과의 싸움도 그들의 주요 목표임이 분명했고, 그 밖의 운동 패거리들도 예루살렘 성전 숙청을 노리고 있었다. 그것은 당시 팔레스틴에 있어서의 예루살렘 성전은 그야말로 로마와 헤롯의 착취가 자행되는 중심고지였기 때문이었다.


즉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수탈, 그리고 지배 이데올로기가 성전을 매개로 관철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숨을 건 그러한 행동 배후에는 팔레스틴 사회에 대한 예수 자신의 총체적 이해가 전제되어 있었다는 점도 간과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타당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식으로 말한다면 예수는 그 시대, 그 사회의 불의와 억압과 수탈의 모순 구조를 바로 인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구조를 변혁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실천에로까지 나아갔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타이밍도 기가 막힌다. 유월절, 곧 민족 해방절을 바로 D-Day로 잡았으니 말이다. 이 때는 산지사방에서 유다 민중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운집하기 때문에 민중 봉기의 기회로 이용될 것을 우려해 로마군도 이 때 만큼은 예루살렘까지 들어와 안토니아(Antonia)에 주둔했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예수는 바로 이 때에 갈릴리 민중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한다. 사실 그것이 연례적인 유월절 행사 참여차라는 시사는 어디에도 없다. 분명 그는 연례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히 피동적으로 죽으러 간 것도 아니었다. 아니, 그는 그 나라의 도래를 위한 투쟁의 최후 결전지로 예루살렘을 선택한 것이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출발이 갈릴리였다는 점도 평가해야 할 일이지만 마지막 순간 갈릴리 사람들을 규합해서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들어간 것도 예사로운 사실이 아니다. 당시 예수가 지휘한 무리를 굳이 12제자에 제한할 필요는 없다. 십자가 주위에서 서성이던 여인들을 “갈릴리에서부터 좇아온 많은 여인들”(마 27:55)이라고 지적한 대목도 있고, 오순절날 기도하다 성령을 체험한 120명을 “다 갈릴리 사람”(행 2:7)이었다고 밝힌 기록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계급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새 질서 또는 새 나라를 세우는 주역이 완전히 뒤바뀌는 혁명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예수는 예루살렘 대 갈릴리가 상징하는 사회의 대립적인 세력들 가운데서 갈릴리 민중들을 주동으로 예루살렘에 진격하여 로마가 팔레스틴에 발을 붙이기 위해 교두보로 삼았던 그 “강도의 소굴”을 소탕해버리고 피지배계급을 새 역사의 주인이 되게 하는 그런 현실 변혁을 구상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결코 지나친 상상이 아니다. 우선 예수가 당시 사회를 계급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었다는 것은 거의 틀림없고, 또 실제 하나님 나라 운동의 주역으로 프론트에 내 세운 이들도 모두가 가난한 자, 눌린 자, 즉 소외 자들이었다. 또 하나님 나라 잔치 비유나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들의 것이다”고 한 산상설교도 역시 재래적인 기득권자는 탈락시키고 오히려 지금까지 무시되던 계층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게 바로 예수가 선동했던 하나님 나라 운동이었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그 나라는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투쟁 속에서만 실현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격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점령한다”(마 11:12)는 표현은 비록 난해한 것이기는 하나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해야 할 귀절이 아닐까.


IV.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교회(ecclesia)라는 말은 주로 바울서신에서 사용되고(46회), 공관복음서에서는 마태복음에만 2번 나올 뿐, 맨 처음에 씌어진 마가복음과 마태와 비슷한 시기에 씌어진 누가복음에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런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복음서 편자들이 에클레시아란 말을 몰랐기 때문일까. 결코 그럴 리는 없다. 바울서신 보다도 20-30년 후에 씌어진 누가복음이나 10-20년 후에 씌어진 마가복음이 어찌 그 말을 모를리가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안 쓴 데는 그럴만한 이유나 의도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문제를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것 같다.


첫째는, 애당초 교회를 세울 생각이 없었던 예수의 입장이 복음서에 반영된 결과라는 것인데, 이것은 신약학의 정론처럼 되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재론을 피하기로 한다.


둘째는, 이미 제도화 되어버린 교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측면이다. 아닌게 아니라 공관복음서가 편집될 시기의 교회는 벌써 일정한 이념 내지는 도그마를 가지고 모였을 때다. 또 세례와 성찬도 컬트(cult)화, 사크라멘트화된 후였다. 사실 예수가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도 없고, 예수가 베푼 최후의 만찬도 사크라멘트로서의 성찬이 아니었음에도 그렇게 컬트화 해버린 것이다. 


자, 이런 시각에서 보면 바울에 의해 기초되고 발전된 교의학적 주제로서의 ‘교회론’이라고 하는 것도 일단 비판적인 시각에서 조명되어야 마땅하겠는데 그럼에도 또 다른 적극적인 측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과 또 그것이 현실적인 과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부정될 수 없을 것 같다.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누구와도 조건없이 만나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이룩한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제자라는 그룹을 설정하고 그들에게 특별한 사명을 준다. 그 사명을 우리는 ‘파견한다’는 말로 성격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곧 예수가 보냄을 받은 것처럼 그들도 세상으로 내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보냄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보냄’의 전통은 종말의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종말의식이 희미해지고 하나님 나라 표상이 잘못 인식되면서부터 ‘보냄’의 전통이 ‘모음’의 전통으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가령 공관복음서에는 제자들을 ‘보낸다’가 중요한 명령이 되고 있는데 반해 바울에게 와서는 ‘보냄’과 ‘모음’이 병행하다가 후기 바울에 이르러서는 다시 ‘보냄’의 전통이 완전히 사라지고 ‘모음’의 전통만 남는다. 실은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교회가 이렇게 모여서 예배드리는 데가 됨으로써 모이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리니까 세계를 위한 교회가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집단이 되고 만 것이다. 교회란 자기를 비움 내지 죽이면서 세상을 향해 보냄 받기 위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교회가 예수 공동체의 전통에 서는 한 불가피한 것이다. 교회를 계보상으로 따져서 제사 전통과 예언자 전통으로 나누어 볼 때 예수 자신도 그랬거니와 예수 공동체도 역시 예언자적 전통에 서 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제도 교회는 계속 그리고 점진적으로 제사 전통으로 기울어져 왔다.


제사 전통이란 곧 예루살렘 성전 전통인데 예수가 마지막으로 대결한게 바로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가. 교회는 성전이 아니다. 주일을 안식일이라는 식으로 교회도 제사 전통에서 그 뿌리를 찾으려는 경향이 마침내 예언자적 소명과 전통을 상실하게 한 것이다. 제사적 공동체는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이어서 으례히 자체만을 위하기 마련이다. 이에 비해 에언자적 전통에는 성속의 구별, 교회와 사회의 구별이 없다. 예언자는 썩은 권력정치에 대해서도, 부패한 종교층에 대해서도 기탄없이 관여하고 불의와 싸웠다. 따라서 교회는 예언자적 대통을 회복해야 한다. 종말론적인 본래성에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예수와 민중의 만남의 장으로서의 교회가 되기는 어렵다. 예수가 그의 공동체에 가르쳐 준 ‘주의 기도’는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 내지는 교회의 종말론적 본질을 명쾌하게 밝혀주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교회의 증언이요, 신앙고백문이다. 주기도문의 첫 대목은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소서”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 확립을 고백한 것이다. 즉 “당신의 주권만이 고유한 것입니다”하는 고백이다. 당신의 주권만이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하게 참된 주권이기 때문에 그 다음은 당연히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소서”라고 희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이렇게 “나라가 임하옵소서”하면서 맨처음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주문이다. 욕심을 자제하고 오늘 하루 먹을 만큼만 달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일용할 만큼만 주어지고 또 받는 이도 그것으로 족할 줄 안다면 아마 부의 편중이란 없을 것이다.하나님의 나라란 이러한 나눔의 질서, 공정하고도 정의로운 분배원칙이 관철되는 세계이며 따라서 교회는 앞장 서서 이를 구현해야 마땅하다. 누가가 전하는 원시교회의 편모에도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지내면서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 사람들에게 필요한 데로 나누어 주었다”(행 2, 44ff.)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것이야말로 정말 예수의 에토스가 피워낸 한떨기 꽃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윤리적인 평면에서 접근할게 아니라 소유권에 의해 삶의 보장을 찾던 낡은 질서의 붕괴를 의미하는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구현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곧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삶의 거점을 두었기 때문에 그 어떤 기존적인 것에 대해서도 자유할 수 있었다는 얘기며, 보다 높은 차원에 삶의 근거를 두는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낡은 종교, 낡은 사회질서로부터 탈피해 갔다는 얘기다.


그러나 종말의식의 소멸, 종말론적 긴장의 이완은 결국 그러한 종말론적 공동체를 곧 해체시키고 만다. 오늘 한국 교회 역시 종말론적 공동체로 평가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 교회의 대형화, 귀족화, 물량화 추세는 바로 종말의식, 종말론적 긴장이 결여된데 따른 필연적 귀결이며, 종말론적 공동체이기를 포기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극단한 ‘시한부 종말론’도 어쩌면 이런 우리네 풍토에 대한 래디칼한 반동인지도 모른다. 정적인 것이 아니라, 오고 있는 미지의 세계에 자기를 내맡기고 현실과 마주 선다는 것은 곧 종말론적 신앙행위를 뜻한다. 참 종교는 언제나 역사 앞에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 그럴 때 자기도 살고 사회도 살린다. 따라서 교회의 동일성(Identität)이란 바로 오고 있는 이 새 질서를 증거하고 그것을 앞당겨 실현해야 할 아방가르드(avantgarde)라는 데 있다.


V. 맺는 말


하나님 나라는 역사의 지평에 온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들어가는’ 현실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 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한 복판에 온다. 그것은 내가 선 자리에서 이루어질 우주적 현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려는 오늘 교회로서는 ‘하나님 정치’의 실현을 위한 종말론적 이데올로기와 프락시스를 함께 다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