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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추동력과 개혁의 성격

1993. 5. 25. 교회연합신문

역사의 큰 흐름

개혁이라는 말이 한 세상 만난 듯하다. 신문과 잡지에서 연일 김영삼 문민정부의 개혁 행보를 보도하고 개혁 실현의 가능성 여부 및 그 범위와 한계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요즘은 일부 진보적인 논자들마저도 사회 각 부분에서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극우반공체제를 간과한 채 절차적 민주주의가 지켜지고 있다는 등 심지어 이 문민정부야 말로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 체제라고 성급하게 극언하는 사태마저 발생하고 있다.
12‧12 쿠데타 세력이 임의로 만든 민정당이 민주당의 주류였고, TK 세력이 그 권력의 실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서자격인 김영삼이 어떻게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는 역쿠데타를 성사시킬 수 있었는가. 그것은 한 개인의 능력으로만 볼 일이 아니고 극우반공체제가 분열되고 이완되는 상황에서 그 체제의 핵심들이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된 것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이는 민자당을 만들었을 때 노태우 권력의 의도가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와는 천양지차가 있었다는 사실과 12‧12 쿠데타의 주역인 노태우가 전두환처럼 한국형 파시즘 체제로서의 극우반공체제를 단발마적으로 수호하려 했던 사실을 상기해 보는 것으로 족하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극우반공체제의 법적‧기구적 보위 장치가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과 그 체제가 여전히 지배적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노태우 체제가 한낱 과도기적 정권이라는 것을 몰각하고 극우반공체제의 경직된 형태인 TK 정권의 연장책동에 급급함으로써 질질 끌려 다니며 이도 저도 아닌 채 무능성‧표변성‧비도덕성을 노출한 사실이 현 김영삼 정권 한테는 어떤 교훈으로 받아들여질까?

김영삼 개혁의 한계

이승만 독재 10여년을 겪고 4‧19 항쟁 후 잠깐 민간 정부가 들어서는가 했더니, 다시금 5‧16 군사 쿠데타에 의해 극우반공체제가 한층 강화된 채 30년 간이나 군부 파쇼정권이 이 나라를 지배해 왔다.그러나 이젠 군인 아닌 민간인이 대통령으로 들어섰으니 모두 다 참혹한 군사문화, 극우반공사회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데 앞장서고 희망찬 마음으로 새사회를 건설해 나가야 할텐데도 반드시 그럴 기분만은 아닌 것 같다. 김영삼 대통령의 판단력과 개혁의지의 일관성이 믿음직스럽다기 보다는 벌써부터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점과 개혁에 앞장 선 사람들의 면모도 진지함이나 통찰력, 도덕성 등에서 결여된 점이 많다는 점 때문이다.
더욱이 민자당 내 왕년의 실력파들은 한편으로는 김 대통령을 포위하여 극우 독재권력의 기득권을 계속 누리려 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김 정권 내 개혁파를 견제하면서 개혁을 아예 좌절시키거나 변질시키려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이 비록 가진 자를 위한 것이고, 진지함이 결여된 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함께 살아 갈 새로운 사회로 진전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라면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의 변화는 이미 어떤 집단도 가로막을 수는 없으나 얼마든지 굴절시킬 수는 있으므로 변화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에는 비록 이해관계가 다르더라도 키워주어야 한다. 개혁의 시대에는 개혁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반동이 나오지 않도록, 또 반동에는 단호히 대처하는 능동성을 보여야지 함께 갈팡질팡해서는 안 된다.
도대체 김영삼의 사람됨이나 개혁 주체의 역량을 볼 때 개혁다운 개혁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 그 이상의 것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망상이 아니냐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개혁 주체의 역량이 미약하더라도, 그리고 극우반공 이데올로기를 허문다는 것이 지난한 작업이라고 하더라도 ‘큰 이상’을 개혁과 생동감있게 연결지어 줄 때 그 개혁이 대세로 추동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개혁에 나서야 한다.

우리는 지금껏 나라 이름이 왜 한 혹은 조선인지도 생각해보지 않고 살아왔으며 김일성이 가짜라는 신화를 골백번도 더 주입받으면서 이북은 아예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라고 배워 왔다. 2천여년간 전제 군주국가이다가 20세기 전반에는 몹쓸 일제 식민통치에 시달렸고 후반에는 다시 극우반공체제에 질식되어 살아온 것이다. 한국전쟁 이래 40년이 다 되도록 북한과의 교류는 말할 것도 없고 이산가족조차 찾아 주려하지 않았던 정부, 오로지 민중을 짓누르기만한 정부 밑에서 살아왔다. 그리하여 민중들은 근대적 인간과는 동떨어진 상태에서 민주정치의 실습은 물론 민주교육도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채 오늘도 극우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에 주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서 나 혼자만이라도 잘 살아야겠다고 지금까지 정신없이 질주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극우 반공이데올로기와 그것의 쌍태아인 근대화 지상주의의 독버섯이 조성한 자폐증에서 벗어나 창문을 열고 새 공기를 마시며 질이 있는 생활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러한 생각들을 한데 모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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