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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과 그리스도인의 자의식
고전 6:2-3

in: 1994년도 악법철폐주간 공동설교문, 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 악법이냐 인권이냐

예수는 언제나 전체 이전에 개개인을 상대했습니다. 도매금으로 혹은 전체로 인간을 대한 것이 아니라 독자성을 갖는 개인, 고유한 존재로서의 개체에 더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전체를 무시한 개인주의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개개인은 누구나 하나님과의 고유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인간은 결코 전체라는 이름으로 페인트칠을 하듯 획일화, 개념화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확실히 사회구원 보다 인간구원이 우선적인 관심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그가 인간을 정신적 개체로서가 아니라 역사 혹은 사회질서와 유린될 수 없는 존재로 보았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뚜렷한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한 적은 없지만 대신 개인의 행동방향을 말할 때는 언제나 기존 사회질서와의 관계성 속에서 그가 처신해야 할 바를 지시하고 있습니다. 가령 “죽은 자는 죽은 자들에게 장례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한 경우라든가, 구원의 길을 묻는 부자에게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한 것 등은 이를테면 기존의 사회질서나 소유가치를 거부하라는 것으로서 물론 이같은 극단적 명령이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질서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개인의 구원이나 인권에 장애물이 될 경우 예수는 단호히 그것을 버리도록 요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구원행각이 일단 사회개혁보다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죄인들의 인간 회복을 목표했다고 볼 수 있으나, 만약 한 생명을 구원하는데 있어서 기존의 사회질서, 법질서가 그것을 가로막을 경우는 가차없는 결전도 불사한다는 게 바로 예수의 기본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예수의 안식일법, 이혼법, 정결법 등과의 충돌이 특히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선보다는 악을, 살리기보다는 죽이는 법으로 전락한 예수의 안식일법과의 대결은 그야말로 목숨을 내건 투쟁이었습니다. 실제 마가복음은 예수의 안식일법 파기사건이 곧 그의 죽음의 최초의 동인이었다고 밝힙니다(막 3:6).
또한 예수는 법조항을 악용하여 이혼권을 향유하는 남성들의 횡포에 맞서 법제정의 본래적 동기를 지적하며 이혼법의 상대성을 폭로한 적도 있습니다. 즉 “모세는 너희가 완악하기 때문에 이 법을 제정해 준 것”(막 10:5)이라고 말함으로써 법조문이 곧 최고선을 표현한 것이 아님은 물론 상황에 제약된 것임을 지적함과 아울러 단호히 그 법의 무효화를 선언하며 이혼을 반대했습니다.
또 한 번은 유대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향해 “왜 손도 씻지 않고 식사를 하느냐”며 추궁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른바 정결법의 저촉을 비판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속에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게 한다”(막 7:15)며 정결법을 파기하고 말았습니다. 원래 손씻는 일은 제사를 집행하는 사제법에 근거된 것으로 처음에는 사제계층만 적용되던 것이 후에는 이를 일반에까지 확대시켜 단순한 위생적인 것 이상의 종교적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가난한 자, 병든 자, 그리고 불결한 작업인들을 정죄하고 소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예수가 ‘법이냐 인권이냐’의 대립상황에 맞닥뜨린 경우 인권을 유린하는 법은 그 동기야 어떻든 결코 용인하지 않았음을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법의 왜곡된 해석과 그 실천을 반대한 것입니다. 인권을 해치는 법은 그 자체가 이미 악법이요 위헌이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악법을 심판할 책임이 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발생한 소송사건 하나를 비판하면서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의식을 강하게 피력한 대목입니다. 당시 고린도는 비록 로마제국의 점령하에 있었을 망정 헬레니즘 문명이 절정을 이룬 화려한 대도시였습니다. 특히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던 헬라사상은 에피큐리안들의 쾌락주의적인 행복론이었는데 그것은 무엇이든지간에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일 때만 참이요 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일하기 위해 먹기보다 먹기위해 부득이 일했고, 진리를 밝히기 위해 철학하기보다 사변의 유희를 위해 우주와 인간을 논했으며, 심지어는 종교마저도 한갖 쾌락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고린도에는 미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고, 한 때 그 신전에는 천여명의 미녀사제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전에서의 예배행위도 엄숙한 제사가 아니라 그 여사제들과 실컷 먹고 마시며 쾌락을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같이 쾌락주의가 인권을 옹호하고 냉정한 시비를 가여야 할 법정에까지 만연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 사이에 발생된 어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재판을 벌인 경우 먼저 양측을 변호하는 자들이 각각 한 사람씩 선정되고 다시 중재자 한 사람이 나섭니다. 당시의 재판은 대개 넓은 광장이나 거리에서 실시되었는데, 만약 그같은 소규모의 중재가 실패할 경우 방청객 중에는 배심원을 선정하게 되는데 20명, 40명, 100명 때로는 6천명까지 동원한 예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관객들은 으례히 두 패로 나뉘어져 서로 열띤 응원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재판이 아니라 열광하며 보고 즐기는 일종의 스포츠 경기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세계 속으로 그리스도교가 들어간 것입니다.
짧은 본문 가운데서 바울이 여러 차례 사용하고 있는 ‘코스모스’, 즉 ‘세상’ 이라는 말은 우주론적인 희랍적 개념이 아니라 불의와 불신과 불법이 횡행하는 기존 사회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이 세계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본문에서 느닷없이 “성도가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지 못합니까?”(6:2)라고 묻습니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행해지던 재판형식의 알레고리로서 하나님이 세계를 심판하실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배심원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가히 혁명적인 그리스도인의 자의식을 봅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무시함으로써 이 세계에 대해 초연하려는 은둔주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그것은 이 세계로부터의 도피며 자기 기만입니다. 그러나 엄연히 세계 속에 있으면서도 자기는 이 세계에 속하지 않았다며 도리어 세계의 불의를 심판할 사명이 주어졌다고 믿는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혁명의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세계 개혁의 사명을 나타낸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잘못된 이 기성사회의 방향과 타락한 재판 관행, 악법 등을 간섭하고 변혁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시사한 말씀입니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천사까지도 심판할 권한을 가졌다(6:3)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의식이 얼마나 웃기는 얘기냐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만 해도 그리스도인들이란 그저 한 줌에 들어올만큼의 극소수에 불과했고, 아직 하나의 새로운 종교로 공인받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유대교로부터도 이단자들로 낙인이 찍힌 그야말로 보잘 것 없던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막강한 세상에 대해 도리어 심판자의 입장을 취하며 당당한 자존심과 자기 동일성을 지켰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런 분명한 자기 동일성의 의식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3. 국가보안법과 노동관계법

최근의 정국을 ‘신공안정국’이라고들 합니다. ‘문민’과 ‘공안’이 공존하는 어휘의 혼란도 현기증이 나지만 더욱 본질적으로는 ‘공안’이 ‘인권’을 밀어내는 현실이 군사정권의 어제를 꼭 닮았습니다. 이승만 독재정권과 30여 년간의 군사통치 기간 동안 이 땅에는 참다운 의미의 인권은 없었습니다.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우익반공주의 말고는 어떤 사상이나 이념도 철저히 탄압되어 왔습니다. 합법을 위장한 폭력이 난무했고, 때와 곳을 가리지 않는 테러가 자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법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군사독재 시절의 법과 문민정부의 법이 어떻게 다른지를 먼저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문민정부 하에서도 분단과 냉전의 악법은 여전히 한치의 변함도 없이 시퍼렇게 살아있습니다. 오히려 출판, 노래, 컴퓨터 등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할 학문과 예술 영역에 대한 보안법의 제약은 더욱 서슬을 세우고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가 진짜 문민정부인지 아닌지는 그간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유난히도 ‘문민’을 강조해 온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지 2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우리나라의 교도소와 구치소에는 아직도 480명이나 되는 양심수가 갇혀있습니다. 이는 작년 연말의 322명 보다 무려 50퍼센트나 증가한 숫자이며 이 가운데서 약 80퍼센트가 국가보안법 관련 구속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난 오랜 세월 악법개폐를 위한 범국민적인 청원과 선언과 투쟁에도 불구하고, 또 최근에는 유엔 인권위나 국제사면위, 심지어는 외국 정부의 낯 뜨거운 개폐 요구에는 불구하고 완강히 ‘개폐불가’를 고집하는 김영삼 정부의 실체입니다.
이렇듯 현 정권이 문민정부를 자처하면서도 여전히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인권 암흑시절에 대한 미련을 가진 세력이 아직도 우리 정치사회에 무시할 수 없는 힘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단언하건데 보안법 철폐를 늦추면 늦출수록 김영삼 정권이 겪어야 할 시련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국가보안법만이 아니라 저 악명높은 노동관계법도 있습니다. 최근의 파업과 관련해서도 그렇습니다. 요컨대 잘못은 ‘불법파업’이 아니라, 그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악법에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일제시대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을 잡아 가뒀던 ‘치안유지법’을 본뜬 것이었다면, 노동관계법은 1900년 메이지 33년에 제정된 ‘치안경찰법’을 모델로 한 법입니다. 특히 제3자 개입금지를 명시한 우리나라의 노동조합법 12조 2항과 노동쟁의조정법 13조 2항은 치안경찰법 제17조를 그대로 번역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치안경찰법 17조만큼은 일본정부 관리들 사이에서조차 너무 억압적이고 전근대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다이쇼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하라케이 내각 때인 1924년 전격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화석화된 법조항이 유령처럼 되살아나 우리나라의 노동쟁의조정법에 다시 삽입된 것은 지난 80년 5.17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 때였습니다. 당시 공포정치 하에서 국회를 대신하였던 ‘국가보위 입법회의’가 이 조항을 신설했던 것입니다. 무엇으로 보다 이 법은 악법 중의 악법입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이미 여러 차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독소조항”이라며 조건없이 즉각 철폐할 것을 강한 어조로 촉구한 바 있고, 지난 달에도 또 한 차례 개정을 권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는 이 노동악법의 존치는 각국의 노동조건과 무역을 연계하려는 ‘블루라운드'(BR)와 관련해 보아서도 국제화 시대를 거스르는 시대착오적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 현재 이 나라의 정당, 국회의 수준이 1920년대 일본의 다이쇼 민주주의에도 못미치고 김영삼 대통령의 악법개폐 의지가 하라케이 수상의 그것에도 미치지 못한데서야 어찌 현 정권이 민주적인 문민정부라 자처할 수 있단 말입니까.
1967년 3월 버밍햄에서 비폭력 시위를 벌이다 구속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그의 동료 목사에게 보낸 옥중서신에서 자신의 투쟁이유를 두 가지로 밝힌 바 있습니다. 첫째는 법이 법대로 집행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악법을 고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히틀러의 모든 행위는 ‘합법적’이었고, 헝가리 투사들의 모든 행위는 ‘불법적’이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루터 킹 목사와 같은 투철한 자의식의 그리스도인이 그리운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