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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타이의 “역사 인식론”과 가다머의 “이해의 역사성"


in: <<교회와 신학>> (1991 제 XXIII 집), 136-161.


I. 역사적 상상력


1. 우리는 지금 ‘역사적 상상력(historische Vorstellungskraft)’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살아온 역사가 그만큼 기구하고 험난했던 까닭이며, 오늘의 현실 역시도 여전히 역사의 무거운 짐을 걸머진 채 어렵사리 행진해 가고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역사적 상상력’은 대체 어떤 개념인가.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을 무시하거나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써는 파악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되어져 온 역사’와 ‘되있어야 할 역사’, 그리고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와 ‘이룩해야 할 역사’, 나아가서는 ‘이루어지게 될 역사’와 ‘이루어져야 할 역사’, ‘쓰여져 온 역사’와 ‘쓰여지지는 않았으나 기층문화 속에 스며있는 역사’를 함께 놓치지 말고 통전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힘’이 곧 ‘역사적 상상력’일 터이다. 따라서 ‘역사적 상상력’은 결코 기계적인 역사이해로는 획득될 수 없다.


이제 신학은 우리의 역사를 더 이상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따위로 왕조사적인 가락에 맞추어 더듬어 보는 차원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우리 역사의 내재된 특성을 밝혀야 하며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끌어져 온 그 ‘힘’의 연원을 찾아 이를 오늘의 삶의 원동력으로 폭발시켜야 한다.


우리는 지금 수직적으로 펼쳐 내려온 민족사와 수평적으로 전개되는 근대사 내지는 현대사가 만나는 십자로에 서 있다. 이쯤에서 가령 우리가 미래의 선상에 ‘민족통일’의 점을 상정하고 과거의 한 선상에 ‘이상적인 전통사회’의 모습을 점찍어 놓았다 치자. 우리의 근대사는 이러한 양극점 사이를 진동하는 진자의 모습으로 나타날 게 뻔하다. 과거의 언덕이 가파로왔다면 미래의 언덕도 가파롭고, 따라서 오늘의 언덕도 가파로운 모습으로 그려지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구도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역사의식일 것이며 또 이를 신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역사적 상상력이 이를테면 역사 해석학일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상상력’은 ‘신학’이 ‘역사’와 만나는 접촉점이다.


2. 사람은 역사적 존재(ein geschichtliches Wesen)라고 한다. 역사적 존재라는 말은 우리가 역사 안에 그냥 가만히 앉아 일엽편주처럼 역사의 흐름을 따라 두둥실 떠돌아 다닌다는 뜻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역사는 역사내적 존재인 인간들의 구성력과 그들 행위의 총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역사 속에 안겨진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역사를 만들고 움직이는 역군이다. 마치 거미줄에 매달린 거미가 스스로 거미줄을 뽑아 자기 생존의 터전을 짓는 것과도 흡사하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역사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는데도 의외로 이 말을 몹시 싫어하고 흉측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마도 신학의 탈세속적 청렴성과 고고함을 아끼고 싶어서일 것이다. 또 어떤이들은 구태여 자기들이 역사의식을 갖지 않아도 어련히 역사가 제갈길을 갈게 아니겠냐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환각이요 자기기만이다. 물론 인간이 어찌하지 않아도 역사는 흐르는 강물처럼 제갈길을 따라 갈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고 있고, 또 실상 오늘날까지도 역사는 숱한 위난(危難)을 겪으면서도 인류를 구원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 넣은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세의 암흑기도 역사의 진로를 가로 막지 못했고, 히틀러의 가공할 만행도, 일제의 식민지 수탈도 결국 역사의 바른 흐름에 밀려 물러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러한 역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쳐진 인류의 엄청난 희생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어두운 그늘과 병증과 아픔은 있다. 그렇다고 그런 현상에 대한 진단과 요법적 태도에서 신학이 뒤로 물러서는 일은 과연 옳은 것인가. 물론 물러섰다고 해서 신학이 써먹지 못할 물건으로 간주되는 것은 아니다. 요법적 일에 관여하지 않아도 신학은 생명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막말로 역사와 현실을 도피하는 글놀이와 말재간 이상이 되기는 어렵다. 도대체 신학이 인간의 문제를 둘러싼 제 조건을 떠나서 그 자체로서의 독자적인 가치와 이유를 획득할 수 있는가. 양심적인 신학인이라면 상황과 여건의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 개인의 심적 갈등이나 고백 따위를 표출하는 일을 넘어 모든 사람들의 삶과 구원에 공동적으로 연관된ㄴ 문제의 본질을 형상화하는 데 더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존경해 마지 않는 역사의 신학자들은 어디까지나 자기 시대의 여러 상황을 정직하고도 치열하게 의식하려고 고뇌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결코 의식의 탄력을 늦추지 않았다. 요컨대 자기 희생을 무릅쓰는 인식의 투철함 없이는 그 어디에서도 신학으로서의 진가를 얻지 못할 것이다. 신학 행위는 나르시시즘의 수작이 아니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눈치를 보거나 자기 그림자에 놀라지 않고 온몸으로 신학을 사는 것이다. 상황과 현실의 두껍고도 차가운 벽에 작열하게 자의식을 맞부딪치는 작업이야말로 신학을 끝끝내 신학이게 하는 동력일 터이다.


3. ‘신학은 역사적인 것이다’라는 명제는 신학이 역사의 예속물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학도 어차피 한 시대의 역사적 산물일 수밖에 없다는 진술이며, 나아가서 그것은 역사내적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하면 역사적인 의의를 얻고 사람다운 값을 발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신 앞에서 부단히 묻고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인간의 당위성과 그 본질을 살펴 볼 필요가 있게 된다. 인간은 ‘있는 존재(seiendes Dasein)’가 아니라 ‘있어야 하는 존재(dasein sollendes Sein)’다. 그리고 ‘있어야 할 존재’의 특징은 자기를 새롭게 형성하는 의식의 운동을 간단없이 일삼는다는 점이다. 의식의 운동은 존재를 초월하여 현실적인 미래를 앞당겨 오려는 종말론적 결단이다. 또한 그 결단하는 의식은 주어진 현실을 변혁시키고자 하는 희망과 결부되며, 또 어두운 현재에 날카롭게 대비되는 종말론적 비젼을 현재 곁에 끌어들임으로써 현재의 비참에 대해 저항하게 하는 능력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신학인은 그가 진정 인간을 사랑하고 역사를 역사답게 이룩하려는 하나님 나라으 참된 역군이고자 한다면 저항하고 치열하게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현실 속의 안주란 ‘신학함(Theologieren)“에 대한 배반이요, 용서못할 굴욕이다. 현실과의 뜨거운 마찰 속에서, 그 가차없는 맞부딪침 속에서 신학은 비로소 생명을 얻게되고 눈부신 광휘를 발산하게 될 것이다. 


4. 딜타이(Wilhelm Dilthey)와 가다머(Hans Georg Gadamer)의 ‘역사 해석학’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적잖은 의미를 던진다. 이들은 모두가 ‘존재론의 빛’ 아래서 역사를 해명하고 있단ㄴ 점 외에도 이를테면 딜타이는 그의 ‘역사이성 비판(Kritik der Geschichtsvernunft)’을 통해 논리와 삶의 분열, 인위적으로 조각난 이론과 실천의 이원론을 체계적 철학과 정신과학(Geistwissenschaft)을 접합시킴으로써 극복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가다머는 그의 ‘영향사 해석학(Hermeneutik der Wirkungsgeschichte)’을 통해 텍스트의 역사적 지평(historischer Horizont)과 해석자의 ‘현재적 지평(gegenwärtiger Horizont)’을 융합시킴으로써 현대신학, 특히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의 ‘보편사적 해석학(universalgeschichtliche Herneneutik)’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판넨베르크는 자신의 논문인 ‘해석학과 보편사(Hermeneutik und Universalgeschichte)’에서 그의 신학적 사유를 지속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해석학적 성격에 대해 신학은 그 자체가 ‘해석학적(hermeneutisch)일뿐 아니라 ’역사 해석학(geschichtliche Hermeneutik)‘이어야 한다고 해명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오늘날의 인문학 분야, 특히 현대신학에서의 해석학이 갖는 중심적 의의는 날로 점증되는 추세여서 앞으로 이 분야가 전반적인 신학적 사고에 있어서 대단히 큰 비중을 갖게 되리라는 것은 자못 명백한 일이다.


II. 딜타이: ‘고전적 관념론의 최후의 낙조’


딜타이 해석학의 신학에 대한 실질적인 기여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평자에 따라 그 의견들이 분분하다. 그러나 대개는 보편적 정신사에 대한 탁월한 해석, 신학을 위시한 정신과학의 자연과학(Naturwissenschaft)으로부터의 한계설정과 아울러 해석학과 심리학적 방법에 의한 역사 인식론의 확립, 세계관에 대한 유형학설의 제창 등으로 집약된다. 


일찍이 딜타이는 1859년에 쓴 ‘쉴라이에르마허의 해석학에 관하여(über Hermeneutik von Schleiermacher)’라는 논문 이래로 꾸준히 해석학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었다. 그는 해석학의 주요 과제를 “낭만적 침의(沈意)나 회의론적 주관론의 부단한 침입에 대해서 역사적 영역에 있어서의 해석의 보편타당성을 논리적으로 정초하는 일”이라 보았고, 역사과학의 확실성은 바로 여기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가다머가 지적한 바와 같이 해석학에 관한 딜타이의 연구가 그 주요 부분에 있어서 이미 랑케(L. von Ranke)나 드로이젠(J. G. Droysen)에 의하여 근본적으로 사유되었던 것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낭만주의적 해석학을 의식적으로 파악하여 하나의 역사 방법론의 영역으로까지 이끌어 올렸다는 점에서, 즉 “해석학의 역사학에로의 전환(Übertragung der Hermeneutik auf Historik)”라는 측면에서 그의 기여는 현대신학의 역사 이해에 결정적 의미를 갖게 한다. 오늘날까지도 거의 모든 철학적인 혹은 신학적인 해석학적 논의들이 예외없이 딜타이를 대결적으로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딜타이의 본질적인 의의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1. ‘인식’과 ‘삶’의 통일


딜타이가 살았던 시대(1833-1911)는 서구적인 그리스도교 전통에 대한 도전이 점차 의식화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증대되어 가던 시기다. 불란서 혁명의 충격으로 사회 구조가 크게 변하였고, 다시 산업혁명의 제 성과들이 큰 위협이 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하에서는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 사회의 변동을 낳게 한 원인, 건전한 진보를 위한 수단을 인식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문명이 당면한 사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딜타이가 정신과학의 방법론적인 독자성을 확립하려고 줄기차게 헌신한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시대적 과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정신과학의 독립성을 확립하기 위한 인식론적 기초놓기라는 이러한 기본 과제를 둘러싼 딜타이의 사상적 입장은 흔히 독일 낭만주의(Romantik)와 실증주의(Positivismus)라는 이중적 영향하에서 형성된 것이라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양대 사조에 대한 그의 태도는 반드시 단순하지만은 않다. 물론 영국 경험론의 근본 입장이 딜타이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고 콩트(Conte)가 인간과 사회 연구에 실증적 방법(positive Methode)을 도입한 점을 그가 높이 평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콩트와 밀(John Stuart Mill)이 자연과학의 인식 방법을 실질적인 변화 없이도 정신과학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했다고 믿었다. 결국 딜타이는 자연과학적 방법(naturwissenschaftliche Methode)은 역사적 삶을 현실적으로 파악하는데는 부적당한 것이며, 그것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신과학 뿐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1867년 바젤 대학 취임 강연에서 딜타이는 “철학은 헤겔, 쉘링, 피히테를 넘어서 다시 칸트에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했고, 이어서 “나에게는 철학의 근본 문제가 모든 시대에 대해 칸트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함으로써 그가 정신과학의 기초를 끝까지 ‘의식의 사실의 현실적 관계(der wirkliche Zusammenhang der Tatsachen Bewußtseins)’ 속에서 찾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딜타이는 칸트와의 차이점에 대한 인식도 뚜렷했다. 그는 ‘정신과학서설(Einführung der Geisteswissenschaft)’에서 칸트의 순수이성(reine Vernunft)과 실천이성(praktische Vernunft)의 구분에 반대하여 ’인식‘과 ’삶‘의 통일(Einheit der Erkenntnisse und des Lebens)을 내세운다. 인식의 주관과 인식 대상과의 관계로서의 종래의 인식관계를 폐기하고, 인식론(Erkenntnislehre)을 대신하여 ‘자기성찰(Selbstbesinnung)’을 제시한다. “자기성찰은 인식론과 대립된다. 왜냐하면 자기성찰은 의식의 사실 관계에 있어서 사유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행위에 대해서도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한갓 표상이나 사유가 아니라 사유와 감정과 의지가 서로 짜여져 전체적 통일을 이루는 ‘전인간(der ganze Mensch)’이야말로 딜타이 철학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인식과 삶의 통일’이라는 간결한 표현이 딜타이의 모든 사상적 체계를 함축하는 명제가 된다. 삶이란 딜타이에 있어서 “외적 세계의 제약 하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성립하는 상호작용의 관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복잡한 형식의 역사적 관계(historischer Zusammenhang)이 어떻게 과학적 인식을 통하여 그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의 말년의 모든 노력이 집중되었던 정신과학의 인식론적 기초놓기의 과제가 바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신과학의 인식론적 정초를 위한 딜타이의 노력은 무엇보다도 역사학파(historische Schule)에 의하여 확립된 정신과학의 사실에 입각하여 그것의 인식론적 근거(erkenntnistheoretischer Grund)를 추구하는 일이었다.


‘정신과학서설’의 서언(Vorrede)에서 그는 이러한 목적과 방법론을 아울러 설명해 주고 있다. “본서는 … 역사적 방법과 체계적 방법을 결합함으로써 정신과학의 철학적 기초놓기의 문제를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확실성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신념 하에서 딜타이는 역사학파의 ‘역사적 방법(historische Methode)’에다 관념론의 업적과 연결되는 의식의 사실의 분석이라는 ‘체계적 방법(systematische Mehode)’을 종합함으로써 정신과학을 위한 인식론적 기초놓기를 달성하려 하였다. 이것이 바로 그의 ‘역사적 이성 비판’이라는 과제이며 동시에 그것은 “자기자신과 자신에 의하여 만들어진 사회 및 역사를 인식하는 인간능력의 비판”이기도 하였다. 그는 우선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칸트가 달성한 자연인식의 근거지움과 같은 성과를 역사적 인식(historische Erkenntnis)의 철학적 기초놓기에 있어서도 기대할 수 있는가를 따졌다. 그는 일단 “칸트적인 이성 비판의 순수하고도 세련된 공기로부터 벗어나 역사적 제 대상이 갖는 전혀 다른 대상을 충분히 다루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와 같은 고찰을 통해 딜타이는 마침내 “역사의 보편타당한 종합판단은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처럼 그는 데카르트에 의하여 정초된 자연의 수학적 인식의 확실성에 반대하여, 역사세계의 인식론적 우위(erkenntnistheoretische Oberhand der geschichtlichen Welt)를 주장한 비코(Vico)의 의미에서 정신과학의 독자적 학문성격을 정초하였던 것이다. 그렇게함으로써 그는 “나 자신이 역사적인 존재(historiches Wesen)라는 것, 역사를 연구하는 자와 역사를 만드는 자가 동일한 자라는 것, 바로 이 점에 역사과학의 가능성을 위한 첫째 조건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 인식을 가능케 하는 것은 “주관과 객관의 동류성(die Gleichartigkeit von Subjekt und Objekt)”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확정만 가지고서는 아직 인식론적 문제의 그 어떤 해결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어떻게 해서 개인의 경험과 그 경험의 인식이 역사적 경험(geschichtliche Erfahrung)으로까지 승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딜타이는 이러한 일을 위하여 우선 개인이 삶의 연관을 획득하게 되는 과정을 밝히려 했고, 역사적 연관과 그것의 인식을 위해서 지탱될 수 있는 구조적 개념을 얻으려고 하였다.


2. 삶의 ‘이해’와 역사적 ‘작용연관(Wirkungszusammenhag)’


딜타이는 1910년에 ‘정신과학에 있어서의 역사적 세계의 구성(Der Aufbau der geschichtlichen Welt in den Geisteswissenschaften)’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노작(勞作)은 후설(E. Husserl)이나 빈델반트(W. Windelband)의 제 학설에 대한 강한 의식 하에 집필되어 자칫 심리주의(Psychologismus)로 흐르기 쉬운 체험의 이론을 보다 객관주의적 방향으로 이끌어 갔다는 점에서 하나의 큰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경험 자체 보다는 ‘표현과 이해(Ausdruck und Verstehen)’의 관계가 중심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 두드러지지만 이에 대한 이론적 입장은 이미 1900년의 ‘해석학의 성립(Zustandekommen der Hermeneutik)’에서 준비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체험을 떠나서는 이해가 있을 수 없다. “이해는 체험을 예상하고 체험은 이해에 의하여 편협과 주관성으로부터 전체적인 것, 보편적인 것의 영역으로 해방”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해는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 삶의 과정으로부터 전체로서의 역사적 세계에로의 이해의 길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렇듯 인간을 정신과학의 대상으로 성립시키는 독특한 방법이 바로 체험-표현-이해의 연관(Zusammenhag des Erlebnisses-Ausdrucks-Verstehens)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 있어서는 이 연관을 추구하는 정신과학 그 자체가 이미 이를테면 하나의 ‘인식연관(Erkenntniszusammenhag)’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정신과학은 인간적․역사적․사회적 세계에 있어서의 인간적 제 체험의 상호 연쇄에 대한 대상적․객관적 인식을 획득하려고 하는 인식연관을 형성한다.“ 그러나 정신과학에 있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인간적․역사적 세계는 결코 현실의 모본(Abschrift)같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신과학에 있어서는 이미 생기한 일, 현재 생기하고 있는 일, 이러한 일회적인 것, 우연적인 것, 순간적인 것이 하나의 가치있고 의미있는 연관에로 귀환적으로 관계지워진다.“ 이처럼 정신과학은 현실 인식의 영역만이 아니라 체험의 공존이나 계기의 근저에 있는 유가치적․유의미적 연관, 주관적․내재적․목적론적 성격을 지닌 일체의 심적 구조연관(psychischer Strukturzusammenhang)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쪽에는 일체의 역사적 판단이 소위 ‘삶의 지평(Lebenshorizont)’에 의하여 규정되어 있다는 의식의 역사성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과학의 보편타당성에 대한 욕구가 맞서 있는 이 모순의 해결책은 과연 무엇인가? 딜타이는 이 모순의 해결 원리를 “역사적 세계 전체를 하나의 작용연관(Wirkungszusammenhang)으로서 이해하는 일”을 통해 찾아내고 있다. 이 작용연관에서는 구조연관이나 의미연관의 경우에서 보다는 역사적․동적 측면이 강조된다. 작용연관은 우선 작용에 의하여 어떤 변화가 취득되는 것의 연관을 의미한다.


“심적 생의 통일체, 역사, 문화 체계 및 제 조직에서는 일체가 부단히 변화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이 변화는 작용하는 것에 의하여 취득되어지는 것이다(erwirkt werden durch Wirkendes).” 


또한 삶에 있어서의 작용연관은 마치 자연에 있어서의 인과연관과 같은 것이다.또한 작용연관은 내재적 목적론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므로 여기서 생겨난 제 가치와 실현된 목적은 이 내재성의 의미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딜타이는 이해의 매개로서의 ‘객관정신(der objektive Geist)’을 제시한다. 물론 이 ‘객관정신’은 헤겔로부터 온 개념이지만 딜타이의 경우는 이성으로부터 이해된 것이 아니라 역사에 나타난 그대로의 삶의 실재성으로부터 이해된 개념이다. 이로써 삶의 객관태를 정신과학의 통일적 대상으로 삼게 되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딜타이에게 있어서의 “역사적 의식은 곧 자기인식의 한 방법이다.” 따라서 그는 역사적 연구 분야에서도 객관적 인식(die objektive Erkenntnis)을 획득할 수 있다는 이상을 내세웠고, 바로 이 점에서 가다머는 딜타이가 역사학파의 객관성의 이상에 사로잡혔다고 보았다. 가다머에 따르면, 인간은 결코 역사의 상대성을 넘어서서 ‘객관적으로 타당한 인식’을 획득할 수 없다.


III. 가다머: ‘전승을 향한 개방성’


당대를 지배하는 선입견으로부터 이해와 해석을 자유롭게 해야한다는 이상은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인식의 목적은 오로지 개인적 생각이나 편견에서 벗어나 과거의 사상과 가치에 대해 완전히 ‘열린 마음’을 가짐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고 한다. ‘세계관(Weltanschauung)’에 대한 딜타이의 탐구는, 한 시대는 다른 시대에 의해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했던 역사적 상대주의(historischer Relativismus)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적 이해에 대한 하이데거나 가다머의 입장에서 보면 그 누구도 과거를 탐구한다고 하여 현재를 벗어날 수 있는게 아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역사적 산물이 갖는 ‘의미’는 현재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파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과거의 산물이 갖는 ‘의미’는 현재의 입장에서 그것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들에 의해 규정된다. “개인의 자기성찰(Selbstbesinnung)은 역사적 삶의 패쇄된 흐름 속에서는 한갓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개인의 선입견은 그의 의식적-반성적인 판단보다 더욱 중요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선입견이야말로 존재의 역사적 실재성(historische Realität des Wesens)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1. ‘이해의 지평’과 역사적 인식


딜타이에 의하면 선입견은 우리가 00해야 하거나 00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로 하여금 역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기준이 되어준다. 이 원리는 해석학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즉 “‘무전제적’인 해석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서나 문학적인 텍스트도 선입견이 없이는 해석되지 않는다. 이해는 심지어 과학적 해석의 근저에 조차 깔려 있다. 왜냐하면 이해란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것일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영향사적인 구조(wirkungsgeschichtliche Struktur)를 갖기 때문이다. 또한 서술된 경험의 의미는 실험의 제 요소간의 상호작용의 결과가 아니라 과학이 입지해 있는 해석의 전통과 고학이 열어주는 미래의 가능성들로부터 도출되기 때문이다.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성은 과학적 이해와 비과학적 이해 양자에 모두 적용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그런 전제를 구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서 있는 전통(Tradition)으로부터다. 전통은 우리의 사고와 대립되어 사고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관계구조, 즉 ‘지평’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이해가 인간의 자기이해 -혹은 그의 ‘지평’이나 ‘세계’- 와 이해되어야 할 것 같의 변증법적인 상호과정(dialektischer Gegenseitigkeitsprozess)이란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처럼 만일 무전제적인 이해란 것이 정말 있을 수 없다면, 다시 말해서 소위 ‘이성’이란 것이 철학적인 구성물일 뿐 사고의 최고 법정이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의 전승이나 유산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재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시대 그리고 심지어는 최근에 이르기까지도 전통과 권위(Autorität)는 이성과 합리적 자유의 적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가다머에 의하면 더 이상 이런식으로 전통과 권위가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된다. 하여튼 이성의 요구와 전통의 요구간에는 어떠한 본질적인 대립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성은 항상 전통의 내부에 속해 있고, 또한 전통은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제반 사유들의 흐름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궁극적으로 가다머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무전제적인 이해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 현재와 관계를 맺지 않은 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석은 결코 영원불멸하거나 고정적인 것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전승된 텍스트는 그것이 성서라고 해도 현재와의 관련 하에서, 즉 그 텍스트가 속해 있는 해석학적 상황(hermeneutische Situation) 하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는 성서에 나타나는 구속사적 사건(heilsgeschichtliche Ereignisse)들이 중요하지 않음을 보이기 위하여 현재로부터 도출된 외적인 규준들을 과거에 부과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의미’가 대상의 불변적인 속성과 같은 것이 아닌 항상 ‘우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나온 결론이다.


텍스트가 항상 우리의 역사성의 지평(Horizont der Geschichtlichkeit) 내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그 텍스트가 원래의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던 것과 현재의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 사이에서 그 의미가 절대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이같은 사실은 의미가 현재와 관련되어 있는 해석학적 상황 속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가다머에게 있어서의 현재와 과거 사이의 긴장은 해석학에 있어 그 자체로 중심적이며 어느 정도는 풍부한 결실을 가져온 요인이기도 하다. “생경험과 친숙함 사이의 배0는 유산들의 -역사적으로 의도적인- 거리를 둔 객관성과 우리의 전통에의 귀속성(Zugehörigkeit) 사이에 놓여 있다.” 따라서 해석학이 행하는 매개는 언제나 역사적으로 의도되었던 것과 전통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곧 해석학의 과제가 이해를 위한 방법론적 절차를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이해가 발생하는 제 조건을 해명하는데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해석학의 과제는 본질적으로 저자가 아닌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있다. 이는 시간적 거리의 개념 및 역사적 이해에 있어서의 의미에 대한 강조를 통해 자명하게 드러난다. 우리에게 텍스트가 이해되는 것은 결국 텍스트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함께 참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참여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자신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보다 텍스트가 우리에게 현재적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는 전통의 흐름, 즉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순간에의 참여이다. 가다머는 이러한 이해 개념이 해석학 이론에서 수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준거점은 저자나 독자의 주관성이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드러난 역사적 의미(historischer Bedeutung)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2. ‘영향사’와 ‘해석학적 경험’


가다머는 그의 ‘진리와 방법(Wahrheit und Methode)’을 통해 현대 해석학을 ‘이해’의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 놓았다. 딜타이와 베티(E. Betti)는 ‘정신과학’의 포괄적인 일반적 방법론(allgemeine Methodik)으로서의 해석학을 주장하였다. 일반적으로 전승된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자연과학자에 의해서 행해지는 이해와는 전혀 다른 역사적 이해행위(historische Verstehenshandlung)를 필요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가다머는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의 이러한 구별을 크게 문제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더 이상 해석을 텍스트나 ‘정신과학’에 엄격하게 제한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다머에 따르면 ‘진리’란 자연과학에서건 정신과학에서건 항상 역사적이고, 변증법적이며 언어적인 사건이다.


해석학이란 이해의 존재론(Ontologie des Verstehens)이자 현상학(Phenomenologie)이다. 그러나 이때의 이해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인간적 주관성의 행위나 작용으로 파악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현존재(Dasein)’가 지닌 세계-내-존재(das-in-der-Welt-Sein)의 근본적인 존재방식이다. 이해란 조작이나 제어가 아니라 참여와 개방성이며, 인식이 아니라 경험이며, 방봅론이 아니라 변증법이다. 가다머에 있어서의 해석학의 목적은 ‘객관적으로 타당한’ 이해를 위한 선행적인 조건들을 제시하는데 있기보다는 오히려 이해 그 자체를 가능한한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데 있다. 그의 대한 비판자인 베티(E. Betti) 및 허쉬(E. D. Hirsch)와 비교해 볼 때 가다머의 관심은 보다 정확한 이해 -그리하여 타당한 해석을 위한 제 규범을 마련하는 것- 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깊고 더욱 참된 이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다머는 존재론적이고 언어적인 측면에 더욱 강조를 두었던 후기 하이데거를 수용하면서 ‘이해’에 대한 그의 독창적인 정의를 심화시켰다. 이러한 심화 과정에서 그리고 체계적인 해석학을 다듬어가는 과정에서 그는 독일 철학의 위대한 추진력이라 할 수 있는 헤겔에게로 더욱 접근해 간다. 따라서 변증법이나 사변성에 대한 가다머의 논조는 즉각 헤겔을 상기시킨다. 가다머의 ‘이해의 현상학(Phenomenologie des Verstehens)’과 헤겔의 ‘정신현상학(Phenomenologie des Geistes)’의 유사성은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불가피하게 도출된 것이다. 그러나 가다머에 있어서 사상(事象)의 객관성을 보는 태도와 헤겔에 있어서 ‘정신(Geist)’의 객관성을 보는 태도 사이의 유사성들은 보다 면밀한 탐구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정작 가다머 자신이 주장하는 변증법적 해석학(dialektische Hermeneutik)은 하이데거의 사유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경향을 확대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하이데거적인 해석학이 담고 있는 가다머의 헤겔주의는 아마도 하이데거 자신의 사상을 더욱 개신(改新)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극히 수동적인 어휘로 ‘이해’를 기술하려 했던 후기 하이데거의 경향을 살펴보기만 해도 분명해진다. 즉 하이데거는 자신의 후기 사상에서 이해란 더 이상 인간의 행위나 작용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사건 혹은 생기(Geschehen)라고 보았다. 따라서 가다머는 인간의 주관성을 ‘이해’에 관한 모든 사고의 출발점으로 간주하려는 또 다른 극단으로 나아가려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경험’ 개념과 ‘지평융합(Horizontschmelzung)’이라는 개념을 통해 더욱 큰 유연성을 열어놓고 있다.


바로 이러한 측면을 그는 ‘영향사(Wirkungsgeschichte)’라는 논제로 다루면서 영향사의 의식이 어떻게 출현하며 그 내용이 무엇인가를 개괄한다. 즉 우리의 해석학적 상황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 특징을 이루는 ‘지평’, 해석자와 역사의 대화관계(dialogische Relation), 물음과 대답의 변증법, 전통에의 개방성 등이 그것이다. 또한 가다머는 역사 의식을 포괄하는 것으로서의 ‘해석학적 의식(hermeneutisches Bewußtsein)’과 ‘영향사’에 대한 인식을 동일시한다. 영향사는 이해의 적극적이고도 생산적인 가능성을 뜻한다. 영향사의 맥락에서 해석자는 스스로가 자기의 고유한 ‘상황(Situation)’에 처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상황’에서 영향사로부터 끌어낸 선입견들을 가지고 전통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 현상을 어떻게 파악하든지간에 이는 항상 인식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을 미리 결정해 버리는 영향사의 성과들에 의해 유도되는 것이다.


실로 영향사의 효력을 이해하기 위한 근본적인 선결조건을 파악하는 일은 우리의 참다운 과학적 작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당연히 해석학적 상황, 즉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전통과 대면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상황을 인식해야 하는 일도 포함되어야 한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어떠한 역사적 상황이라도 그 자신의 지평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객관적 지식(objektische Kenntnisse)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과거의 상황을 재구성하려는 의도는 진정한 과제를 지나쳐 버리기 쉽다. 다시 말하면 전통 속에 구현되어 있는, 타당하며 이해가능한 진리를 찾아내려는 과도한 욕구는 자칫 수단과 목적을 도치시키는 결과를 낳게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해석학적 의식은 닫혀진 지평을 지니고 있는 단일한 시대라는 생각을 추상화의 산물로 본다. 즉 해석자도, 또 그가 관여하고 있는 전통의 일부도 모두 그들 자신의 지평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전통의 일부 안에 스스로를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지평이 다른 지평과 통합될 수 있도록 자신의 지평을 확장시키는데 있다.


가다머는 자기 자신의 특이성과 ‘대상(Gegenstand)’을 보다 높은 일반성에로 고양시키는 것을 ‘지평융합’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이는 ‘이해’가 일어날 때마다 발생하는 작용이다. 즉 우리의 지평은 과거와의 대면 속에서 우리의 선입견들을 검토함으로써, 그리고 우리 전통의 부분들을 이해하려함으로써 끊임없는 형성과정 중에 있는 것이다. 현재의 지평(Horizont der Gegenwart)은 이미 과거와의 접촉을 통해서 형성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현재에 고립된 지평은 상상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가다머는 불트만(R. Bultmann)의 ‘전이해(Vorverständnis)’와 하이데거의 기투적인 개념적 선취를 ‘지평’의 개념에서 통합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가다머는 지배의 매체로서 언어가 이용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 채로 ‘언어의 존재론화(Ontologization)’를 승인했고 또한 현재의 관심사에 대해 권위적인 역할을 행사하는 ‘전통’을 승인했으므로 (하버마스와 아펠이 무비판적이라고 생각한 측면), 이 점에 대해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성은 다시 전통과 권위에 상충하면서도 자기 자율성을 위한 부단한 작인(作因)으로 재천명된다.


IV. 신학적․해석학적 상상력


1. 허약한 우리의 역사 신학적 사유에도 불구하고 한국 신학은 이제 최소한의 자의식을 가지기 시작한 듯 하다. 그러나 역사의 밭에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기는 하였지만 어떻게 쟁기질을 하느냐 하는 일은 여전히 험난하고 고된 작업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과거 어느때 보다도 신학적․해석학적 상상력(theologisch-hermeneutische Vorstellung)을 역사적으로 요청받고 있는 중에 있음이 분명하다.


2. 신약성서는 처음부터 하나의 새로운, 단적으로 신빙할 수 있는 ‘역사해석’의 요구를 가지고 등장한다. 그러나 이 요구는 하나의 이론적인 인식에 근거하지 않고 실재하는 역사적 사건, 즉 오랜 약속이 성취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약성서는 예수에 있어서의 이 약속이 성취와 관련해 이해되어져야 하며 여기에서 비로소 그 “문헌의 의미”(눅 24:27, 32, 45)가 계시된다고 볼 수 있다. 교리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2, 3세기 이래의 교부 시대로부터 해석학적 문제가 전폭적으로 대두되어 왔다. 성서가 보고하는 사건들에 대해 문자 그대로의 역사적 의미를 고수하려던 안디옥 학파(Andiochia Schule)와 상징적이며 유추적인 해석을 하나의 보다 더 놓은 ‘정신적 의미(psychische Bedeutung)’에 도달하려던 알렉산드리아 학파(Alexandria Schule)간의 대립을 00로 로마시대의 교부들에게도 그 두 흐름이 이어지는데, 즉 한편으로는 히에로니무스(Eusebius Heronymus),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암브로시우스(Ambrosius)를 통해서며 특히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이 두 방식의 종합을 시도한다. 여하튼 이러한 일련의 사실은 현대 해석학적 물음들이 실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옛 문제를 다만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고 새로운 관심하에서 받아들이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입명(立證)해 준다. 예를 들어 바르트(K. Barth)가 그의 ‘로마서 강해(Römerbrief)’에서 시작하여 ‘교회 교의학(kirchliche Dogmatik)’을 통해 전개하는 해석학적 입장과 ‘비신화화(Ent mythologisierung)’와 ‘실존론적 해석(existentiale Interpretation)’의 프로그램을 통해 수행하는 불트만의 해석학적 입장이 바로 이상과 같은 고전적 맥락의 대결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에벨링(G. Ebeling)이 지적한 대로 분명 바르트에게도 ‘이해’가 문제였다. 불트만 역시 동일한 관심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의 길은 바르트와는 달랐다. 불트만에게는 일차적으로 ‘인간의 이해’가 문제된다. 따라서 그에게는 신의 말씀이 인간의 자기이해에 봉사하는 한에만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바르트는 그와 반대로 일차적으로 신의 말씀이, 즉 예수 그리스도에 있어서 신의 자유로운 자기계시가 문제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처럼 바르트에게는 인간 이해가 아니라 ‘신의 말씀(Gottes Wort)’이 문제였다. 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인간이 문제가 아니라 신이 문제이며 신의 말씀은, 그 비밀이 인간에 의한 완전한 이해를 아무리 넘어설지라도, 그 말씀을 듣고 믿으면서 인증하려는 개방성을 요구한다.


3. 바르트와 불트만의 문제를 배경으로 하고 동시에 본회퍼(D. Bonhoeffer)와 고가르텐(Fr. Gogarten) 및 하이데거와 가다머의 동기들을 받아들이면서 신학 진영에서는 에벨링(G. Ebeling)과 푹스(E. Fuchs), 판넨베르크가 해석학의 관심사를 계속 촉구해왔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주목할만한 인물은 바젤 대학의 조직신학 교수인 오트(Heinrich Ott)이다. 그는 불트만의 제자이면서도 바르트의 교수직을 이어받은 후계자로서 바르트와 불트만을 중재하고 불트만에 반대하는 바르트의 관심에 다음과 같이 부응하고자 한다. 즉 오트는 불트만과는 달리 초기 하이데거가 아니라 후기 하이데거에 의지한다. 후기 하이데거는 인간 보다는 점점 더 지배적으로 ‘존재’를 문제 삼는다. 근ㄴ 존재의 사건에서 인간을 이해하며, 역사 역시도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존재의 역사와 존재의 운명으로 파악하고, 특히 언어에 관심을 쏟는다. 언어는 ‘존재의 목소리(Stimme des Seins)’이고, 그 속에서 존재가 역사적으로 사고되어져야 할 것을 제공해 주며, 이것에 우리의 사고하고 말하는 것이 부응해야 한다. 오트는 이 점에서 계시의 사건에 나타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보다 상세하고, 적합하며, 신학의 문제들에 더 걸맞는 단서를 찾는다. 따라서 오트에 의하면 하이데거의 후기철학, 특히 역사와 언어에 관한 그의 사고는 비록 철저히 세속화되기는 했지만 하나의 ‘해석학적 신학(hermeneutische Theologie)’이다.


4. 인간의 본질 상태는 신이 세계와 역사 속에서 작용하는 구원하심 속에 받아들여져 있다. 따라서 인간은 처음부터 구체적인, 신의 구원 작용에 의하여 포괄된 현실성 속에 살고 있다. 그는 그의 본질을 통하여 신이 말하는 바를 듣기 위해 개방되어 있고, 신이 선사하는 구원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채비되어 있다. 이때 그 절대적 진리는 인간의 사고형식과 언어방식, 역사적 표상과 언표방식의 대상성 속으로 들어온다. 신은 하나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역사적 인간의 각 이해에 상응하는 자기 매개에 있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를 드러낸다.


신의 계시는 논리적인 진리의 전달을 의미하지 않고 그의 말씀을 통한 그의 작용의 의미해명을 뜻한다. 말씀의 의미는 항상 구원하심의 관계성 속에서만, 즉 신이 그의 백성을 구원에로의 길로 인도하는 역사적 상황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의 절대성은 동시에 역사적 세계 속에 있는 인간 생활의 상대성으로 번역(飜譯)된다. 신의 무한한 충만성과 완전성은 시간적이며 공간적으로 제한된 현존재 속으로 번역된다. 바로 여기에 제약자(制約者) 속에 있는 무제약자와 내재성 속에 있는 초월성의 근본 구조가 나타난다. 인간은 무제약적 지평 속에서 역사적 경험의 모든 제약된 내용들을 완수하기 때문에, 그의 본질로부터 대상자 속에서 절대자에 도달하는데로 배속(配屬)되어 있다.


5. 이것은 신학 전체를 위하여 근본적일 뿐만 아니라, 특히 교의와 성서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도 해석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신의 말씀은 인간적이며 역사적인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럼에도 거기에는 이를 넘어서서 ‘의미’와 그 의미 속에서 우리에게 말해져 있는 것의 구원에 대한 본래적인 신학적 물음이 제기되어 있다. 계시의 말씀도 그것의 ‘영향사’를 갖는다. 그것은 수시로 새로운 상황과 신앙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주며, 또 수시로 새로운 이해의 지평 속으로 들어간다. 이 점에 있어서 말씀은 역사적인 이해의 보편적인 구조에 따라 항상 하나의 교호(交互) 관계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성서와 신앙론의 해석학적 과제에 나타나는 세 가지 국면을 분석해 보면 ① 언표의 근원적 의미는 말씀의 역사적 배경과 관련성으로부터 역사-비판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② 교회의 교의와 생활의 전통 속에서의 역사적 해석과 의미 전개가 그 과제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 ③ 말씀은 그 구원의 의의에 있어서 현대인의 이해를 위하여 밝혀져야 하고 현대의 이해세계 속으로 매개되어져야 한다는 점 등이다. 그러므로 해석학적 신학은 역사적 사건들의 의미를 해석하는 일을 성사시켜 주는 것 외에도 인간성의 형성과 그 조명에서 가하는 현재와 과거에 대한 비판으로서 역사의 목적에 종말론적 기대(eschatologische Erwartung)도 함께 성사시켜준다는 점에서 자못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