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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의미와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해석학적 구조


in: 교회와 신학, 204-228



프롤로그


‘역사신학’(historische Theologie와는 구분되는 Gesschichtstheologie)이라는 말은 확실히 매력적인 술어이다. 이는 역사에 대한 관심과 신학에의 동경을 한꺼번에 수렴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 말은 그 매력 만큼이나 어려운 난제도 함께 제시한다. 우선 역사신학의 정의가 도출되려면 역사와 신학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만 하는데도 역사와 신학은 모두가 시대마다, 또 동시대 내에서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의의를 가지는 것이 보통이며, 더구나 근대 이전의 종교적, 신학적, 세계관(religiöse theologische Weltanschauung)을 대신하여 근대의 기술적, 과학적 세계관(technische wissenschaftliche Weltanschauung)이 등장하고, 그 기술적, 과학적 세계관의 ‘합리성’(Rationalität) 개념이 철학적 비판이나 이데올로기적 분석에 의해 지양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역사신학’의 매력도 그 배후에 다소의 시대적 불확실성을 부인할 수 없게 되어져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알게 모르게 동양의 전통적 사유에 의해 -그것이 개개인의 의도나 의지와는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남아 있는 공통적 생활 양식과 사고방식 안에 깔려있는 것이든 간에- 지배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서양적 사유의 전통과 깊이 연관된 ‘역사신학’의 문제가 꽤나 낯선 것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가당하다. 그 뿐만은 아니다. 우리네 사정을 좀 더 짚어보면 조선 후기이래 소유관계의 신분 구조적 표현인 사농공상의 위계질서가 민중 세력의 상승으로 인해 점차 몰락해 가면서 외부로부터의 강제된, 근대에로의 폭력적 계기가 역사 자체의 왜곡과 더불어 역사의식의 왜곡도 함께 초래하였다. 역사의식의 왜곡은 굳이 상부구조의 주자학적 세계관 뿐만이 아니라 -동학혁명의 좌절로부터는- 하부구조의 민중적 세계관에서도 현저했다. 물론 이 왜곡된 민중적 세계관의 반대편에 반제, 반봉건의 굳건한 다른 흐름이 영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것 마저도 일제 식민통치와 분단 상황 아래에서의 자립과 종속이 대립되면서부터는 이미 사회에 전반적으로 만연된 소시민들의 반동적 보수 성향에 그 왜곡된 형태를 뚜렷이 각인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자성 및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역시 우리의 비존재론적 사고(kein ontologisches Denken)이다. 이땅에 개신교가 전래된지 어언 백년이 넘었고, 신자수의 확산에 있어서도 가히 경이적인 추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존재론적 사유를 훈련시킬 수 있는 장으로서의 그리스도교는 현세구복적인 토착적 민간신앙과 접촉하면서 급기야는 극단적 유물론과 보수적 관념론의 결합이라는 기형적인 모양새를 노출하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소시민과 신중산층의 보수적 세계관의 종교적 외피로서의 한국 그리스도교가 역사적 변혁 주체에 대한 세계관적 기초를 전혀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진보 진영이나 보수 진영으로부터의 동시적인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런데 전자의 반론의 타당성은 그 ‘세속’에의 치열한 참여로 입증되고 있다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본고의 목적은 한국 그리스도교 비판이나 전통론의 비판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더 이상의 논의는 삼가기로 하고 다만 여기에서는 사양사유의 존재론적 전통(ontologische Tradition)과 우리의 공동체적 생활이념(gemeinschaftlische Lebensidee)이 구체적 현실에서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점만을 지적해 두기로 한다. 적어도 이러한 사유의 통일은 분단 극복의 현실적 통일에 앞서 필히 이루어져야 할 당위(das Sollen)이기도 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근대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 중의 으뜸으로서의 ‘소외론’(die Entfremdungslehre)도 그 바탕에 있어서는 헤겔(F. Hegel)을 통해 그리이스 철학에까지 그 존재론적 사유의 뿌리를 뻗고 있고 주체와 객체(Subjekt und Objekt), 관념과 현실(Idee und Realität), 이론과 실천(Theorie und Praxis), 시간과 영원(Zeit und Ewigkeit), 본질과 실존(Wesen und Existenz), 보편과 개체(Allgemeine und Individuum) 등의 범주들이 그 존재론적 사유를 구성하고 있음도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의 이론적 파악이 공동체적 역사관의 현실적 회복의 징검다리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I. 역사 해석학의 전초로서의 보편적 해석학의 시도: 쉴라이에르마허


쉴라이에르마허(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가 그의 해석학적 노작에 도입하여 영향을 받은 두 전통은 선험철학(transzendentale Philosophie)과 낭만주의(Romantik) 전통이다. 이 두 전통으로부터 그는 탐문의 형식(Die Formel der Erkundung) -즉 타당한 해석의 가능성의 조건들- 을 얻어냈고, 이해의 과정에 대한 새로운 구상들을 이끌어 냈다. 이제 이해(das Verstehen)란 창조적인 재규명과 재구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쉴라이에르마허에 의해 모든 사유가 활동적이며 유기적으로 발전하는 주체의 통일성(die Einheitlichkeit des Subjekts)에 관련되어야 한다는 해석학적 법칙이 발견된 것은 활동적인 자아의 생산성(Rpoduktivität des aktiven ego)에 대해 강조한 피히테(J. F. Fichte)의 영향 때문인데, 이로써 개체성과 전체성 사이의 관계가 낭만주의 해석학의 초점이 되기에 이른다.


“이해의 기술(die Kunst des Verstehens)로서의 해석학은 보편적인 분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특수한 해석학에 불과하다.” 1889년 베를린 대학에서 해석학에 관한 강의를 시작하며 행한 그의 이러한 주장은 이해의 기술로서의 보편적 해석학(universale Hermeneutik)을 수립하고자 하는 자신의 근본 목적을 가장 주효하게 나타낸 강령이라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해석학적 이론의 대부분을 구성했던 ‘설명의 기술’(die Kunst der Erklärung) 조차도 이제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쉴라이에르마허의 확신이었다. 


“설명이 이해의 외적 측면 이상의 것이 되자마자, 그것은 다시 ‘서술의 기술’(die Kunst der Darstellung)이 되어 버린다. 에르네스티(Johann August Ernesti)가 ‘이해의 생동성’(Lebendigkeit des Verstehen) 이라고 불렀던 것만이 진정으로 해석학에 속한다.”


설명은 암암리에 이해의 기술 대신수사학(die Rhetorik)의 기술이 된다. 대화의 제 조건에 있어서도 설명은 무언가를 형성하는 하나의 기능이며 동시에 그것을 말로써 바꾸어 주기도 하는데, 말해진 바를 이해하는 작업이야 말로 또 하나의 구별된 기능인 것이다. 쉴라이에르마허에 따르면 해석학은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말해진 바를 이해하는 후자의 기능에 관련된다. 말하는 것과 -말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의 이같은 근본적인 구별은 해석학의 새로운 방향을 열기 위한 바탕이 될 뿐만 아니라, 이해이론(die Verstehenstheorie)으로서의 해석학을 위한 체계적인 기초를 마련해 준다.


1.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scher Zirkel)의 원리


이해란 기본적으로 지시적인 기능(die hinweisende Funktion)이다. 언제나 우리가 이해하는 것 그 자체는 부분들로 이루어진 체계적인 통일성(die systematische Einheitlichkeit) 혹은 순환을 형성하게 마련이다. 전체로서의 순환은 개별적인 부분들을 규정하고, 또 부분들은 한데 모여 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예컨대 하나의 문장은 전체로서 하나의 통일성이다. 이때 우리는 문장 전체의 맥락하에서만 개별적인 단어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전체로서의 문장의 의미도 개별적인 단어들의 의미에 상호적으로 의존한다. 이를 확대해 보면 개별적인 개념이란 그것이 입각해 있는 콘텍스트나 지평(Horizont)으로부터 비로소 그 의미가 도출된다. 하지만 지평은 자신이 의미를 부여해 주는 바로 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와 부붠의 변증법적 상호작용(dialektische Funktion auf Gegenseitigkeit)에 의하여 이들 각각은 서로에 대해 다른 의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해는 순환적이다. 뿐만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은 공유된 이해의 영역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즉 의사소통은 대화적 관계를 뜻하기 때문에 당초부터 화자와 청자에 의해 공유되는 의미 공동체(Gemeinschaft des Sinnes)를 상정하게 된다. 이때 문제는 저자의 사상의 전체적인 향방을 파악하는 일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파악이 없이는 개별적인 진술들, 심지어는 전체의 저작들이 무의미하게 들린다. 종종 단 하나의 문장이 그전까지는 혼란스러워 보이던 모든 것을 조명하면서 의미있는 전체로 바꾸어 놓는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이때 그 문장은 저자가 본래 말하고자 했던 전체적인 것‘(das Totalitäte)을 지시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석학적 순환은 언어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논의되는 사상의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 사전 지식의 원리(Prinzip der Vorkenntnis) -혹은 해석학적 순환- 은 담화의 매개라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담화의 주체(Thema des Gesprächs)라는 차원에서도 이해의 모든 작용을 통해 가능하다. 


후기 쉴라이에르마허 사상에 와서는 언어의 영역을 사고의 영역으로부터 분리해 내려는 경향이 더욱 농후에 진다. 전자는 ‘문법적’(grammatisch) 해석의 대상인데 반해 후자는 기술적인‘(technisch) 혹은 ’심리적인‘(psychologisch) 해석의 영역이다. 문법적 해석은 객관적이고도 일반적인 법칙들에 의거하여 진술을 배열함으로써 진행되는 반면, 해석의 심리적 측면은 주관적이고도 개별적인 것에 촛점을 맞춘다.


“모든 언동은 언어 전체와 화자의 대해 이중적인 관계를 갖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 언동에 대한 모든 이해에 있어서도 두 가지 계기가 존재한다. 하나는 그것을 언어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언동을 화자의 사고 내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실’(die Tatsache)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때에 ‘문법적’ 해석은 언어의 계기에 속하게 되는데, 쉴라이에르마허는 이러한 해석을 소극적이고도 일반적이며 더 나아가 경계설정을 하는 절차라고 간주했다. 사고가 작용하는 구조는 바로 이러한 절차에서 설명된다. 하지만 ‘심리적’ 해석은 저자의 독특한 개성과 고유한 천재성을 탐색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해석자에게는 저자와의 일정한 동질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해석자는 개성을 보편자와 관련하여 이해하지만, 동시에 적극적이고 직접적이며 직관적인 방법을 함께 동원한다. 해석학적 순환이 부분과 전체의 순환을 포괄하듯, 하나의 동일체로서 문법적, 심리적 해석(grammatische-psychische Auslegung als eine Identität)도 특수자와 보편자를 포함한다. 왜냐하면 후자의 심리적 해석은 개별적이고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보편적이고도 경계 설정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해석학의 목표를 텍스트 저자의 정신적 삶의 재구성(Rekonstruktion psychisches Leben des Textautors)으로 전제하는데서 비롯된다. 특히 이 점은 1819년 쉴라이에르마허의 다음과 같은 진술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해석의 기술은 오직 적극적인 공식으로부터만 그 규칙들을 발전시킬 수 있다. 그공식은 다음과 같다. 주어진 언표의 역사적 재구성과 신학적 재구성 및 객관적 재구성과 주관적 재구성이다.”


2. 쉴라이에르마허가 기도한 보편적 해석학의 의의


후기 쉴라이에르마허에 있어서의 심리지향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해석학에 기여한 그의 업적은 해석학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문장구조와 의미맥락(Zusammenhang des Sinnes)은 보편적 해석학에 있어서 중요한 지침이며 체계이다. 그러나 니이버(Richard R. Niebuhr)에 의하면 쉴라이에르마허의 해석학은 유감스럽게도 법칙과 체계적 일관성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대화의 본성이 갖는 창조적인 여러 함축성들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결점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의 학문이고자 한ㄴ 새로운 방법의 해석학으로서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특히 딜타이(Wilhelm Dilthey)는 ‘객관적으로 타당한 인식’(objektiv eine angemessene Einsicht)을 요구하면서 해석학의 과제란 이해의 법칙과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보아 쉴라이에르마허가 터놓은 이러한 새로운 방향을 적극 계승한다. 이는 역사를 넘어서(über die Geschichte hinaus) 혹은 역사 외부(außenhalb der Geschichte)에서 무시간적 ‘법칙’이 도출될 수 있는 입각점을 확립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제하기 때문인데, 이러한 주장은 더욱 발전되어 오늘날에 와서는 쉴라이에르마허가 과학적인 용어로 표현했던 이해에 있어서의 보편자들이, 이해의 본질적인 역사적 구조와 선이해(wesentliche geschichtliche Konstruktion und Vorverständnis des Verstehens)의 특별한 중요성으로 인해 역사적 성격을 갖출 수 있게까지 되었다. 하기야 쉴라이에르마허나 심지어는 그 이전의 해석학 이론가들마저도 모든 이해가 발생하는 기저로서의 해석학적인 순환의 원리를 개진함에 있어 이해의역사성(die Geschichtlichkeit des Verstehens)을 강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견해는 우리가 시간과 역사의 외부로부터 텍스트의 의미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이것은 텍스트가 이해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무관하게 독립적이고도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는 환상을 불식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 쉴라이에르마허의 해석학에 있어서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삶에 대한 관계로부터의’(von der Beziehung auf Leben) 이해라고 하는 개념인데 이는 후에 딜타이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해석학적 사유를 위한 출발점이 된다. 왜냐하면 딜타이는 ‘삶 자체로부터의’(von Leben an sich) 이해를 자신의 해석학적 과제로 삼았고, 하이데거 역시도 보다 철저한 역사적 방식으로 그 동일한 목표에 도달하려 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복잡한 사상은 그것이 저자의 정신적 제 과정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체험지평(Horizon der Erlebnisse)과 관련하여 이해되는 독자적인 체험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쉴라이에르마허에 있어서의 제반 문제와 방금 지적한 점에 관심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쉴라이에르마허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역사의 불명료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타자의 불명료성(Unklarheit des Anderes)에 관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쉴라이에르마허는 해석학을 보편적인 학문의 차원(Dimension der allgemeinen Wissenschaft)으로 올려 놓았다는 점에서 근대 해석학의 아버지로 간주된다. 요아힘 바하(Joachim Wach)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19세기 후반의 해석학 이론가들은 대개 쉴라이에르마허의 해석학적 사유에 빚지고 있으며, 특히 19세기 독일의 중요했던 몇몇 해석학 이론에는 그의 영향이 뚜렷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II. ‘역사이성 비판’의 ‘정신과학’적 정초: 딜타이


가다머가 해명해준 바와 같이 ‘역사학파’(historische Schule)는 목적론적 역사에 대한 헤겔식의 선험적 구성을 거부하면서 등장했고, 공론에 반대하여 역사 연구에 대한 제한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러한 발전에 필요한 이론적인 지주는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의 역사적 관점의 규명에 의해 마련되었다. 즉 그것은 각 시대의 가치와 완성을 그 시대의 역사에 귀속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후에 딜타이도 주장했듯이 신의 눈 앞에서는 모든 시대가 동일한 것이다. 이렇듯 과학적인 의도에서 쉴라이에르마허에 의해 발전되고, 그의 동료인 뵉크(A. Boeckh)에 의해 문헌학적인 목적으로 발전된 이해의 기술론(Kunstlehre)이 낭만주의 개념으 뼈대와 그 개인성(Individualität)에 대한 강조로부터 역사 연구에로 옮겨가게 된데는 이른바 철학적인 반성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본문의 해석에 적용되는 전체와 부분의 도식은 ‘개별적인’ 사건들의 의미를 확인시켜 주는 보편사(Universalgeschichte)와 관렴됨으로써만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의미있게 구조지워진 대상에 적합한 방법은 역시 탐구하며 이해하는(Forschend zu verstehen) 방법인 것이다. 


1. ‘순수이성 비판’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역사이성 비판’


딜타이는 칸트(Immanuel Kant)로부터 형이상학적 추리에 대한 반감을 받아들이고,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로부터는 비록 세계정신에 대한 목적론적-신학적 가정(teleologische-theologische Voraussetzung)은 거부하지만 역사에 대한 관심만은 받아들여, 그 두 입장을 상호 결합시킨다. 다시 말하면 그는 칸트의 선험적인 논의를 우리가 행위하고 사유하는데 따르는 조건들의 심리학적-역사적 연구로 대치시켰고, 선험적 자아를 경험적 자아의 전체성(Gesamtheit des empirischen ego)으로 대치시켰다. 이렇게 보면 결국 ‘역사이성 비판’(Kritik der Geschichtsvernunft)이란 ‘순수이성 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에 대응되는 것이자, 동시에 순수이성 비판에 대한 비판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딜타이가 이렇게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을 보완하기 위해 ‘역사이성’의 비판을 시도해야 했던 이유는 근대 의식에 내재해 있는 긴장들, 즉 종국에 가서는 철학과 과학, 형이상학과 인식론, 신념과 지식, 로고스와 에로스, 순수이성과 실천이성, 체계적 철학과 삶의 철학, 윤리학과 역사 사이의 이원론으로 귀착되는 다양한 긴장들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칸트의 시각에서 볼 때 딜타이의 ‘역사이성 비판’은 역사적-문헌학적 과학과 더불어 나타난 새로운 지식의 영역에서 ‘순수이성 비판’의 정당한 확장을 의미하며, 또한 그러한 과학에 인식론적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칸트를 넘어서는 중요한 도약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딜타이의 ‘역시이성 비판’은 두 가지 목적, 즉 하나는 그가 논리와 삶의 분열로서 기술한 이원론을 체계적 철학과 정신과학을 집합시킴으로써 극복하려는 것과 또한 ‘형이상학적’(Metaphysik) 이라고 내쫓긴 그러한 영역을 엄밀한 고찰에 의해 되찾아 인위적으로 조각난 과학과 삶, 이론과 실천(Theorie und Praxis)을 다시 한 번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려는 목적을 성취하려는데 있었다. 딜타이는 해석자가 삶의 객관화를 재구성할 수 잇는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모든 인간성이 공유하고 있는 생산적인 힘, 즉 삶을 언급한다. 그는 “역사과학의 가능성을 이루는 제일 조건은 나 자신이 역사적 존재(historisches Sein)라는 사실과 역사를 탐구하는 사람도, 역사를 만드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일하다는 사실에 있다”고 말한다. 삶의 객관화나 정신의 객관화에 대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 어떻게 일반적인 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딜타이가 여전히 해석학적 혹은 상호교섭적 지식에 관한 메타과학적 사고(metawissenschaftliches Denken) 안에 머물러 있음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또 이러한 자세로 인해 그는 계몽주의의 후손으로, 혹은 데카르트적 전통을 따르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로써 그가 역사적 ‘대상’이 해석자의 생각들과 가치에 가하는 도전을 간과하게 되었다는 것과 주체가 그의 사유의 매개체와 토대로서 전통과 언어에 이미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 즉 가다머와 리꾀르(Paul Ricoeur)가 각각 귀속성(Zugehörigkeit)이라고 부르는 해석학적 체험을 인식하게 되는 자기 성찰의 필요성을 무시하게 되었다는데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딜타이는 그 자신의 의도 -인간에 관한 비과학주의적 연구로서 정신과학을 구축하려는 의도- 와 동떨어진 감이 없지 않으며, 또한 높은 수준의 반성으로부터도 멀어진 듯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딜타이의 메타과학은 데카르트적인 전제를 벗어나지 못했고, 따라서 해석학적 인지를 이끌어 내는 데 둔 메타과학의 관심도 정당하게 다룰 수 없게 된 것 같다.


2. ‘역사적 존재’와 ‘역사성’의 의미


딜타이는 인간을 ‘역사적 존재’(historisches Sein)로 규정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역사적’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딜타이가 생각한 역사성은 우선 두 가지를 의미한다.


(1) 인간은 삶의 다양한 대상화를 통해 스스로를 이해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was ist der Mensch?)의 문제는 오직 역사 만이 대답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자기이해는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것이다. 즉 과거에 이루어진 고정된 표현들을 통해 해석학적인 우회(hermeneutishce Umgehung)를 거쳐 비로소 획득된다. 이처럼 인간의 자기이해는 역사에 의존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역사적’ 성격을 띤다.


(2) 인간의 본성은 고정된 본질이 아니다. 딜타이는 생철학자 니체와 의견을 같이한다. 니체는 인간을 “아직 결정되지 않은 동물”(ein noch nicht entschiedes Tiert)이며, 따라서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은 동물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의 문제는 앞으로의 역사에 의해 결정될 문제이다. 인간은 계속해서 자긴의 유산의 형식화된 표현(formalisierter Ausdruck)들을 갖게 됨으로써 점차 창조적이고도 역사적인 존재(schöpferisches und historisches Sein)로 화해간다. 역사성은 시간성의 시간화 속에서 자신의 한 실존적 가능조건(eine existentiale Möglichkeitsbedingung)을 지닌다. 그러나 역사성은 결코 초월적으로 부가되는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시간화와 관련된 모든 것의 완전하고도 구체적인 의미를 드러내준다. 역사성이 지닌 또 하나의 의미는 이간이란 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질은 역사 속에서 역사를 통하여 형성되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의 총체는 곧 역사이다.” “역사의식의 상대성 배후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결코 잇을 수 없는 일이다 ... ‘인간’이라는 유형은 역사의 과정 속에서 와해되고 변화된다.” 결국 시간성이란 인간의 자기이해와 자기해석을 위해서는 역사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및 자신의 본질을 역사적으로 규명함에 있어서의 창조적인 유한성(schöpferische Begrenztheit)을 지적하는 용어일 뿐만아니라, 역사의 불가피성 및 모든 이해의 본질적인 시간성을 지적하는 용어이기도 한 것이다. 


‘역사성’이란 용어가 지닌 해석학적 의의는 딜타이에게 있어서 어디에서나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점에 관한 볼노브(Otto Friedrich Bollnow)의 언급, 즉 역사성이란 개념은 삶과 표현의 통일성(Einheitlichkeit des Lebens und Ausdrucks)에 관한 착상과 함게 딜타이를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개념이라는 언급은 아주 정당하다. 볼노브는 “인간의 역사성을 이해하려는 최근의 모든 노력은 딜타이에게서 그 결정적인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역사성, 특히 이해의 시간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딜타이의 해석학 뿐만 아니라, 하이데거나 가다머의 해석학도 이해하기 어렵다. 현대 해석학은 역사성이라는 개념 속에서 그 이론적인 토대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객관적으로 타당한 인식’(objektiv eine angemessene Einsicht)에 대한 요구 그 자체가 곧 인간의 자기이해의 역사성(Geschichtlichkeit des Selbstverständnises)과 완전히 배치되는 과학적 이상의 반영임을 아주 분명히 알고 있다. 심지어 우리는 딜타이가 아무리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absolute Ideenlehre)을 거부하면서 역사 해석학을 모든 형이상학으로부터 자유로운 경험적 사실에 근거지우려 했다해도 ‘삶’이란 개념 자체가 헤겔의 ‘객관정신’과 아주 밀접한 범주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은 해석학을 역사성의 지평에 정위시킴으로써 보편적 해석학의 기획을 갱신하고 중요한 전진을 이룩한 그의 공헌과 함께 비판적 검토를 요구하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된다.


III. 역사의식에 대한 변증법적 해석학: 가다머


현대 해석학 이론에 결정적인 전기를 이룩한 사건은 1960년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더머(Hans-Georg Gadamer)의 ‘진리와 방법: 철학적 해석학의 개요’(Wahrheit und Methode: Grundzü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의 출간이었다. 이 저작은 그것이 지닌 풍부한 철학적 철저함이란 점에서 금세기 해석학 이론의 두 기념비적 저작인 요아힘 바하(Joachim Wach)의 ‘이해’(das Verstehen)와 에밀리오 베티(Emilio Betti)의 ‘해석의 일반이론’(Teoria generale della interpretatione)에 비견된다. 이제 우리는 방법 개념에 대한 가다머의 보다 보편적인 해석학의 전망과 성과를 파악하기 위해 가다머 사상의 하이데거적 뿌리와 가다머 해석학의 변증법적 성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1. 일상적인 역사 이해에 대한 비판


가다머는 ‘역사의식’(historisches Bewußtsein)에 대한 자신의 분석을 위한 토대이자 출발점으로서 이해의 ‘선구조’(Prästruktur)와 현존재의 본질적인 역사성에 대한 하이데거의 분석을 명확하게 받아들인다. 이해의 ‘선구조’에 대한 하이데거의 사고에 따르면 우리는 주어진 텍스트나 문제 혹은 상황을 이미 고정되어 있는 지각방식과 일정하게 관념화되어 있는 ‘선이해’를 기초로 하여 이해한다. 따라서 가다머의 해석학과 역사의식에 대한 그의 비판이 함축하는 바는, 과거란 의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실들의 집적과 같은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 속에서 활동하고 참여하는 모든 이해작용의 흐름(die Strömung der verständinsfunktion)이라는 사실이다. 하이데거와 가다머에게 있어서의 언어, 역사, 그리고 존재는 모두 상호 관련되어 있을 뿐만아니라, 상호 침투되어 있기 때문에 그 결과 존재의 언어성(Sprachlichkeit der Existenz)은 존재론임과 동시에 존재의 역사성의 매개체이다. 존재는 역사의 생기이며 역사성의 역동성에 의해 지배된다. 하지만 딜타이에게 있어서의 삶의 표현들은 사실상 ‘삶의 대상화의 산물들’(die Produkte der Objektivierung des Lebens)이기 때문에 가다머는 이를 “삶과 인식의 관계는 딜타이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소여이다”라고 한다. 바로 이 점에서 가다머는 딜타이가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역사학파의 객관성의 이상(das objektive Ideal der historische Schule)에 사로잡혀 있다고 본다. 객관적 인식, 즉 ‘객관적으로 타당한 인식’은 역사를 초월하여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갖는 일이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유한하고 역사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은 항상 시간과 공간에 속박된 자신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고 이해한다. 가다머에 따르면 인간은 결코 역사의 상대성을 넘어서서 ‘객관적으로 타당한 인식’을 획득할 수 없다. 객관적 인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입장은 절대적인 철학적 인식(die absolute philosophische Erkenntnis)을 전제하고 있는데 이러한 전제는 명백히 잘못된 가정이다. 가다머는 이미 하이데거 이전에 의식의 지향성(Intentionalität)에 기초를 둔 훗설(Edmund Husserl)의 객관주의 비판이 낡은 형태의 객관주의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본다. 이해 자체는 항상 시간성의 세 가지 형태 -과거, 현재, 미래- 에서 기능하고 있다. 역사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이것은 곧 과거란 현재와 미래 속에 있는 우리와 절대적으로 분리된 과거의 대상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뜻이다. 과거 그 자체를 보아야 한다고 하는 이상은 이해 자체의 본성과 배반되는 환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해는 항상 우리의 현재 및 과거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를 과거, 현재, 미래라고 보는데 있어서 이해 자체의 본질적인 시간성은 소위 말하는 이해의 역사성(die Geschichtlichkeit des Verstehens)을 뜻하는 것이다.


2. 본래적인 역사의식으로서의 영향사적 의식


가다머는 자신이 비판했던 종류의 -방법론적 차원의- 역사의식을 기술하려고 시도한다. 이 새로운 의식을 그는 ‘영향사적 의식’(das wirkungsgeschichtliche Bewußtsein)이라고 규정한다. 이를 해석하면 ‘역사가 항상 그 위에서 작용하게 되는 의식’ 혹은 ‘역사적으로 작용하는 의식’이다. 그러나 가다머는 이 영향사적 의식이 헤겔적인 역사의식과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왜냐하면 헤겔적인 의미의 역사적 의식은 반성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며 역사와 현재의 매개를 뜻할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향사적 의식은 사변적-변증법적 인식(spekulativ-dialektische Erkenntnis)이다. 그러나 변증법은 이성의 자기매개가 아니라, 경험 자체의 구조이다. 가다머는 영향사적 의식이 본성을 정립하고 밝히는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세 가지의 나-너 관계(이는 Martin Buber의 나-너 관계와는 다르다)의 유형론을 사용한다: ① 한 영역 내에서의 대상으로서의 너, ② 반성적 투사로서의 너, ③ 전통으 발화자로서의 너. 그런데 이들 중 가다머가 영향사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해석학적 관계는 세 번 째 유형 분이다. 이 유형의 나-너 관계(Ich-Du Beziehung)는 너에 대한 본래적인 개방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는 나로부터 의미를 투사하는 관계가 아니라, ‘어떤 것이 저절로 말해지도록 하는’ 진정한 개방성을 갖는 관계이다. 이는 지배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들으려는 개방성이기 때문에 기꺼이 타자에 의한 자신의 변형을 감수한다. 이게 바로 ‘영향사적 의식’의 기반인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텍스트가 충분히 그리고 객관적으로 ‘타자’가 될 수 없는 그러한 역사와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왜냐하면 이해란 과거의 타자성에 대한 수동적인 ‘인식’이 아니라, 타자의 요구에 맞추어 자기 자신을 순응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텍스트가 말 그대로 ‘단지 역사적인 것’(nur das Geschichtliche)으로만 읽혀지게 되면 현재는 이미 독단화되어 문제의 영역에서 사라져 버린다. 다른 한편으로 영향사적 의식은 현재를 진리의 정점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영향사적 의식은 진리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개방시킨다. “영향사적 의식은 방법적 자기확신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독단적인 사람과는 달리 ‘경험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갖게 마련인 경험적 개방성(die empirische Offenheit)에서 완성된다. 이것이 바로 영향사적 의식의 본질적 특성이다.”


IV. 근대 역사해석학적 논의의 신학적 수용


역사적 방법에 대한 그 어떠한 심오한 분석도 결국은 가장 넓은 의미의 해석학적 문제 곧 성서와 전승, 케리그마와 도그마, 교회와 성령, 예배와 신앙 등의 문제로 유도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신학 쪽의 확신인 듯하다. 역사적 방법의 해석학적 역할은 철학적 또는 신학적 문맥에서 추상적으로 발췌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해석학적 철학은 부단히 그들의 전제들에 대한 자의식적인 주석을 가하고 있고, 신학은 한 시대와 문화로부터 새로운 형태로 문제와 이념이 조성되어 가는 시대를 위해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재해석하는 다차원적 임무에 분발하고 있다. 


1. 역사적 해석과 존재론적 의미추론: 불트만


불트만의 신학적 해석학은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철학에 의한 현존재의 방법론적 분석(methodische Analyse des Daseins)을 더욱 심화시키려 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현대 그리스도교 신학은 이를테면 두 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과도 같다. 신과 본래의 자아 내지는 실존과 영혼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은 내적 세계의 버팀목을 찾거나 내적 세계를 안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비대상적(ungegenständlich)인 신에 대한 순수하고도 개인적인 신뢰이며, 그러한 점에서 신앙이 이 세상의 자유를 매개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학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신과 실존”(Gott und Existenz)에 대한 이같은 기본사상으로부터 불트만의 해석학적 프로그램, 즉 그리스도교 전통의 비신화화(Entmztologisierung)와 실존론적 해석(existentiale Interpretation)이 기획된다. 주석은 역사로부터 주어지는 본문들을 다룬다. 주석자는 역사적으로 실존하며 구체적인 역사적 체험과 결단 속에서 일어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들에 따라 움직인다. 이것은 본문 속의 사실(Sache)에 대한 주석자의 전이해이거나 긍 선행하는 주석자의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불트만은 다음과 같은 명제로서 출발한다. 즉 역사해석(Geshcichtsauslegung)은 자기해석이며, 자기해석(Selbstauslegung)은 역사해석을 통해 수행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본문(geschichtlicher Text)의 해석학은 언제나 인간 실존의 해석학적 구조라는 틀 안에서 수행된다. 이 점에 주목한다면 역사적 본문들에 대한 해석은 하나하나가 모두 역사적인 해석, 다시 말하면 실존적인 해석이 되어야 한다. 역사적 본문들은 역사적 인간(geschichtlicher Mensch)에 의해 쓰여졌고, 역사적 인간들은 본문 속에서 그들 자신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표명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역사적 본문을 그저 객관적인 것으로만 간주하여 가치 중립적으로만 관찰한다면 결국 그 본문들의 본래적 의도는 놓치게 되고 만다. 따라서 전통으로 주어진 본문들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반드시 자신의 역사적 실존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이제는 “이 본문이 당대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가?”하는 역사적, 객관적(historisch-objektiv) 물음보다는, “이 본문이 오늘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고 실존적으로 묻게 된다. 바꿔 말하면 과거의 역사적 실존을 담고 있는 본문과 씨름함으로써 자신의 실존에 대한 자기 자신의 해석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이데거의 실존분석을 이용하여 역사성, 시간성, 결단성, 미래성과 같은 실존론적인 요소들과 존재의본래성, 비본래성(Eigentlichkeit/Uneigentlichkeit)이라는 범주를 인간 실존의 기본요건으로 발전시킨 불트만 해석학의 기본적인 틀이다. 신약성서를 통해 전승된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비신화화” 작업도 이 기본사상의 당연한 내적 귀결이었다. 불트만은 역사에 대한 모든 해석은 일정한 ‘관심’에 의해 인도되고 있으며 이러한 관심은 다시 그 주제에 대한 일정한 예비적인 이해(선이해, Vorverständnis)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역사 해석학적 문제는 바로 이 관심과 선이해로부터 발생된다. 따라서 모든 해석ㅇㄴ 해석자의 선이해에 의해 인도된다는 것인데 이러한 분석 역시도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해석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선취(Vorwegnahme), 선견(Vorsicht), 선파악(Vorgriff) 등과 분명하게 연결된다. 그렇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바로 역사가란 항상 일정한 관점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이리하여 그는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생겨난 문제들에 대해 폭로되는 역사과정의 측면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열려져 있다는 것이다. 역사가가 아무리 자신의 주제를 객관적으로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결코 자신의 선이해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 보편 역사해석학에로의 추이: 판넨베르크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는 교의학과 역사적 훈련을 통합시키고 또 교의학을 역사편집 방법에 의존시키며 나아가 역사 연구를 교의학의 도움에로 이행하려는 모든 도전에 대응하고 나선 신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을 실혐시키기 위한 기초적 단계로서 먼저 역사해석학적 방법을 그 방법이 매여 있는 실증주의(Positivismus)와 자연주의(Naturalismus)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판넨베르크 이전의 조직신학자들은 -이를테면 변증법적 신학자들이나 실존론적 신학자들- 역사 비판적 연구법(historische kritische Forschungsmethode)을 마치 역사 실증주의(historischer Positivismus)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여 그 방법을 연상하는 것 만으로도 대경실색 하였다. 어쨌든 역사적 방법이 실증주의적 역사주의(positivistischer Historismus)의 세계관에 의해 지배되는 한, 신학자들이 이에 대해 무관심하시거나 적대감을 갖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판넨베르크에 의하면 역사적 방법과 성서적 계시의 역사 사이를 분리시키는 일은 방법론적 이유 및 신학적 이유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계시가 만일 현재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역사라면, 그리고 결코 역사를 초월해서 생기는 어떤 일이거나 또는 역사와 병행하는 그 무엇일 수 없다면, 어째서 역사 방법론이 발생한 사실을 추구해 내는 일에 적절한 해석학적 도구가 될 수 없단 말인가? 하나님의 성육신(Inkarnation)의 완전한 의미도 일종의 “구속사에 소속된 고립된 집단”(heilsgeschichtliches Getto)에 나타났던 것이 아니라 인유릐 역사적 문맥에서 발생했던 보편사적 사건이 아닌가. 역사로서의 실존(Existenz als Historie)의 전체성은 하나님이 창조하고 또 그 창조물을 통하여 자신ㅇ르 나타내시는 이 세계 전체를 뜻한다. 성서의 살아계신 하나님은 만인과 만국의 왕이시지 이스라엘 한 지역과 한 종족만의 수호신인 것은 아니다. 이렇게 판넨베르크가 계시의 동기를 보편 역사적 과정(universalgeschichtlicher Prozeß)으로 보려는 것은 마치 헤겔의 역사철학을 연상케 한다. 아닌게 아니라 판넨베르크를 헤겔에게로 회귀한 자라고 비판하는 소리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넨베르크는 해석학적 문제를 철두철미 보편사적 신학(Theologie der Universalgeschichte)의 관점에서 답하려고 한다. 계시개념을 다루든지 또는 예수의 부활이나 구약성서의 의의 문제를 다루든지 간에 판넨베르크에 있어서의 신학적 문제 해결에 역사 범주가 얼마나 결정적인 카테고리인가 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역사는 그이 해석학 이론에도 유일한 열쇠가 되다시피 한다. 따라서 “어떻게 텍스트의 과거와 해석자의 현재 사이에 내재한 간극에 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하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판넨베르크는 가다머의 “지평융합”(Horizontverschmelzung)의 이미지를 채용한다. 현대해석자의 지평은 해석되어져야 할 텍스트의 지평을 충분히 포섭할 수 있을 만큼 확대되어야 한다. 특수한 과거 시대의 지평과 우리 당대의 전망의 지평 사이에 있는 역사적 괴리는 예사롭게 보아 넘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오히려 연결시키고 다리 놓아야만 할 과제이다. 그럼에도 자유주의(Liberalismus)는 특수한 과거를 현대의지배적인 윤리(ethos) 속으로 해소시키려는 과오를 범했고, 반대로 근본주의(Fundamentalismus)는 현대의 특수한 문제들을 원시시대의 세계관 속으로 환원시키려는 과오를 범했다. 역사 해석학의 참된 임무는 과거와 현재의 지평이 가진 특색을 말살시키지 않고 그것을 함께 연결시킬 수 있는 교량적 전망을 찾자는 것이다. 불트만의 비신화화 프로그램이나 본회퍼가 복음의 비종교적 해석(nicht religiöse Interpretation)을 호소하고 나선 것도 실은 이같은 해석학적 임무에 대응한 것이지만 판넨베르크로서는 이 두 반응 중 어떤 것도 근본 문제 해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또 다른 선택의 길은 없단 말인가? 이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신학적 응답이 바로 그의 보편역사 해석학(Hermeneutik der Universalgeschichte)인 셈이다. 그가 구약과 신약의 전승들을 융합시키는 교량으로 발전시킨 전승사(Überlieferungsgeschichte)라는 개념은 이제 교회사와 세계사로서 그 위치를 바꾸어 놓게 되었다. 구약과 신약의 역사 그리고 교회사와 세계사 등의 모든 역사의 전체성이 이제는 하나의 그리스도교 역사신학으로 융합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보편역사적 실재성(universalgeschichtliche Realität)에 대한 개념은 ‘한 하나님’(Ein Gott)이라는 성서적 개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물론 판넨베러크의 역사 해석학이라고 해서 우리 시대의 상황으로부터 원시 그리스도교 전승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역사 신학을 모조리 포괄한데서 발췌해 낸 것일 수는 없다. 해석학적 과거란 하나님의 이 세계를 위한 부단한 계획의 연속적 역사과정에 의해서만 다리 놓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해석학은 지금까지 두 가지 상호 연관된 측면, 즉 전통의 매개와 주관적으로 의도된 의미에 대한 이해에 치중해 왔다. 해석학적 철학과 해석학적 신학 사이의 견해차는 어떻게 그러한 이해가 가능하며 또한 어느 정도까지 그 이해가 객관적인 인식을 구성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어 온 것이다. 그럼에도 이 두 접근 방법은 모두가 해석자의 역할은 서로 다르게 강조하는 반면, 해석 대상의 내용은 문제 삼지 않고 있다. 또한 본문이나 전승된 의미의 진위 여부에 대한 일체의 반성 역시 이해 과정의 인식론과 방법론의 관심사 밖의 것으로 배제해 버렸거나, 혹은 전통의 우월성과 그 총괄적인 특성을 선험적으로 가정한 나머지 그러한 반성을 과장되게 평가하기도 하엿다.이와는 대조적으로 역사 비판적 해석학(historische Kritische Hermeneutik)은 본문이나 현실, 또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전통에 담겨있는 진실에 대한 주장을 근본적으로 회의함으로써 기존의 관념론적 해석학(idealistische Hermeneutik)을 비판할 근거를 마련하였다. 감추어진 이면의 진실, 거짓, 선전, 조작, 사고의 억압, 검열 등에 대한 경험을 통하여 인식이나 진실에 대한 주장을 아무런 주저없이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증거로서의 뚜렷한 사례들을 보게 된 것이다. 보다 더 반성적인 차원에서는 이데올로기적 구조의 실존과 ‘허위의식’(Falsches Bewußtsein)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강압하는 힘이, 사적 유물론(historischer Mateialismus)의 틀 속에서 극히 철저하고도 파멸적인 모습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는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를 뜻하는 구체적인 물적 조건들 속에서 그 허위적인 생각의 연원을 입증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오해를 비판함은 곧 이를 발생시킨 현실을 비판함을 뜻한다.베티(E. Betti)는 관용의 결여와 이기심을 이해에 있어서의 주요한 장애요인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왜곡된 의미가 수용되어 있을 가능성의 문제는 의미의 창조영역과 분포영역 밖에서 하나의 입각점을 가정함으로써 즉 이해과정(Verstehensprozeß)에 참여하고 잇는 모든 사람들을 함께 포괄하는 기반을 포기함으로써 파악될 수 있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비판적 이해’(kritisches verstehen)는 지적인 과정의 기저에 놓여 있는 경험적인 임의성에 의거한다는 이유에서 인과론적 설명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객관화의 계기란 비판적 이해와 해석학적 이해를 결합시켜 주는 이론적 진리를 그 목표로 한다. 특히 아펠(K. O. Apel)과 하버마스(J. Habermas)는 인간활동의 객관화 속에 담겨있는 의미가 객관적으로 이해됨에 따라서 그 객관화의 기저를 이루는 의도들에 대한 ‘저자’(Autor)의 자기이해와 그 의미가 서로 마주치게 되는 접근방법을 개략적으로 제시해 왔다. 즉 설명적(erklärend) 절차와 해석적(interpretierend) 절차를 종합함으로써 사회적 행위자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를 생각하며, 그리고 그 생각이 어째서 잘못될 수 있는가 또한 어떻게 그 잘못이 수정될 수 잇는가 하는 바를 사회적 행위자에게 밝혀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왔다. 결국 역사 해석학적 이해(historisch-hermeneutisches Verstehen)란 비록 본문의 도덕적 또는 지적 내용을 그 자체로 문제시하지 않더라도 ‘권위적인’ 본문의 무비판적이며 독단적인 수용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뜻하는 것이자 동시에 공평한 해독을 그 목표로 삼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비판적 해석학은 역사적 진실과 종말론적 미래(eschatologische Zukunft) 편에 선 실천적인 참여를 통해 해석학적 역사신학(hermeneutische Geschichtstheologie)과 만나게 된다. 이제 가다머(H. G. Gadamer)가 해석의 전제로 내세운 ‘완전성에의 豫期’(Antizipation zur Perfektibilität)는 더 이상 관조적인 행위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천적인 것과 합치될 수 있는 지식을 추구함에 있어서 ‘대상’(Gegenstand)과 해석자 자신의 동기들을 매개시키는 일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매개는 사회적인 행위자의 자기인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물적 조건이 형성되어 나타나리라는 기투적인 기대에 의해 인도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