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발전을 위한 하나님 나라 운동과 개혁교회



I. 개혁주의 정신의 전통


본디 프로테스탄티즘, 즉 개신교는 루터주의자들의 루터교(lutherische Kirche)와 칼빈주의자들의 장로교(reformierte Kirche)로 출발했다. 따라서 이 두 교단은 모두 종교개혁을 통해 출범한 교회들인 만큼 [개혁교회]라 불러 당연할 법한데 서고의 오랜 전통은 오직 장로교 만을 [Reformierte Kirche]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칼빈주의를 장로교라는 말로 많이 쓰지만 유럽에서는 오히려 장로교라는 명칭은 희소하고 주로 개혁교회라는 말이 일반화되어 있다. 자, 이렇게 종교개혁을 통해 출범한 양대 교단 중에 굳이 장로교 만을 개혁교회로 명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보면 루터주의는 소위 [두 왕국설(Zwei Reiche Lehre)]을 빙자해 그들의 개혁의 의지마 정치적 태도가 극히 타협적이거나 소극적이었던 데 반해 칼빈의 사상을 추종하는 장로교는 [그리스도 통치설(Königsherrschaft Christi-Lehre)]에 굳게 서서 그들의 개혁 혹은 정치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견지해 왔다. 그렇다면 루터주의의 [두 왕국설]이란 무엇인가?


이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도성과 세속 도성, 국가와 교회를 구분하고 피차간에 불간섭을 원칙으로 하는 이원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입하여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영미의 정교 분리원칙이란 것이 바로 루터주의의 두 왕국설에 기초한 법이다. 또한 한국교회의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구분하려는 발상, 신앙과 생활, 교회와 사회, 구속사와 세속사, 영과 육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도 따지고 보면 모두가 루터의 이 두 왕국설이 그 신학적인 배경을 이루고 있다. 저명한 현대신학자인 칼 바르트에 의하면 히틀러의 만행 앞에서 독일교회가 그토록 무능했던, 아니 방관 내지는 동조하고 나섰던 이유는 바로 루터의 두 오아국설 때문이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독일의 루터교회가 나치정권을 국가의 권위로 인정하고 불간섭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온갖 악의로 독일 천하를 한 손에 틀어잡은 히틀러는 결국 교회마저도 그의 시녈 굴복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어두운 시대에도 에언자의 청정한 육성은 살아 있었다. 그게 바로 개혁교회 신학자, 목사들의 저항이었다. 사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장로교회 개혁정신이 가장 극명하게 표출된 경우가 바로 나치 치하에서의 독일 개혁교회의 저항이었다. 또 그 때 만큼 장로교의 개혁정신과 루터교의 타협정신이 첨예하게 대립된 적도 없었다. 물론 당시의 독일 개혁교회가 모두 히틀러의 저항에 참여했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은 나치정권에 항거하여 칼빈의 [그리스도 통치설]을 고백하는 사람들만을 중심으로 소위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라는 지하교단을 급조하고 칼 바르트, 본회퍼, 니묄러 등의 유수한 신학자들을 지도자로 저항운동에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고백교회의 투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34년 5월에 있었던 바르멘 대회이다. 독일 중부의 바르멘 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고백교회 대표 126명이 모여 히틀러에 저항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토의하고 마지막으로 성명을 발표했는데 그게 저 유명한 바르멘 신학적 선언(Barmer theologische Erklärung)이다. 칼 바르트가 기초한 그 바르멘 신학적 성명은 고백교회의 신앙고백이요, 개혁교회 전통의 예언자적 신념이었다. 그 사건을 기화로 히틀러는 무수한 고백교회 인사들을 전격 체포하기 시작했다. 1935년에는 500명, 1939년에는 7000 명의 목사, 신학자들을 잡아갔는데 그들은 모두가 결연하게 죽음으로써 그들의 신념을 지켰다. 그들의 그러한 죽음의 항거가 없었던들 전후의 독일교회의 눈부신 재건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까지도 나치 치하의 고백교회는 독일교회의 양심으로 살아있고, 장로교 개혁정신의 불후의 사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칼빈의 그리스도 통치설이란 무엇인가. 이는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통치란 제한적이거나 부분적인 것이 아닌, 종교적이고도 신앙적인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우주적이고도 전면적이며, 총체적이고도 통전적이라는 것이다. 즉, 일체의 세계질서가 주님의 주권, 주님의 통치하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에는 예외적인 영역이 있을 수 없다는 신념이다.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도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다 그리스도의 정치이념으로 부단히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공의와 그리스도의 정의와 그리스도의 샬롬이 모든 삶의 장에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 통치설에 입각하여 종교개혁 당시 제네바에서 신정정치까지 시도하기도 했던 것이고, 또 그의 그러한 극단적인 정치적 개혁의지가 많은 시행상의 착오를 불러 일으킨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칼빈의 그리스도 통치설이 독재와 폭정에 대한 저항의 권리라든가 근대 민주정치의 초석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이렇듯 칼빈주의 전통, 장로교의 전통은 이원론이 아닌 일원론적 입장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원론적 입장의 교리적 거점이 바로 [그리스도 통치설]인 것이다. 이로써 왜 서구의 전통이 굳이 장로교 만을 개혁교회라 명명하는지가 밝혀진 셈이다.


II. 개혁교회와 근본주의 


그러나 개혁교회라 하여 언제나 이러한 예언자적 전통을 제대로 지켜 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칼빈주의는 이런 본연의 개혁정신에 불성실했다고 봐야 옳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895년 미국 나이아가라에서 일단의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결성된 근본주의(Fundamentalism)다. 사실 엄격하게 얘기하면 한국의 개신교는 서구의 개혁주의로서의 장로교를 받아들였다기 보다는 미국의 근본주의로서의 장로교를 받아 들였다. 초기의 선교사들이 모두 근본주의자들이었고, 또 그들의 배려로 미국에 가서 유학을 한 사람들이 거의가 미국의 근본주의를 교육받고 돌아와 초기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글ㄴ데 이러한 근본주의는 장로교 전통의 개혁정신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너무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지적한다면: 1) 신학적교리적 폐쇄주의를 들 수 있다. 신학이나 교리는 진리가 아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닌 신에 대한 인간의 상대적 학문이요, 종교적 신념 체계일 뿐이다. 따라서 신학적 이론이나 교리적 체계도 부단한 성찰과 재조명을 통해 개혁되어야 한다. 칼빈주의도 루터주의도 그 당대의 시대정신에 제약을 받았던 유한하고도 제한적인 사상들일 뿐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닌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교 신학이나 교리가 복음에 대한 시대적 표현이요, 증언이요, 고백으로서 하나의 엄연한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교리마저도 언제나 새롭게 조명되어야 하고 부단히 개혁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당위가 성립된다. 그럼에도 근본주의는 교리지상주의에 빠져서 옛 교리의 맹목적인 보수나 무조건적인 답습에만 집착할 뿐 비판적인 해석이나 개혁의 시도 등은 전혀 용납하지 못하는 한계에 갇혀있다. 근본주의가 교리적인 정체성에 빠져서 더 이상 신학적인 발전을 꾀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래서 진부하고 고루하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장로교 전통의 개혁정신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신학적 폐쇄주의 혹은 교리지상주의적 사고는 오히려 반개혁교회적 산물일 뿐이다.


2) 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근본주의의 문제점은 극단한 이원론이다. 이를테면 성속을 첨예하게 구분하려는 발상,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흑백논리인데 어쩌면 이러한 이원론이 바로 근본주의의 가장 치명적인 모순이 아닌가 생각된다. 거룩한 것, 교회 혹은 개인의 영혼 구원에만 관심하고 세속적인 것이나 사회나 공동체의 구조적인 구원에 대해서는 백안시하는 이런 이원론적 태도는 장로교 전통의 개혁정신의 원리인 [그리스도 통치설]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는 차라리 루터교의 전통에 더 근사하다.


어느 안식일 날 예수는 한 쪽 손이 불구가 된 자를 고쳐줌으로써 많은 디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식일을 파괴한 적이 있다. 예수는 사실상 그 사건으로써 평일과 안식일을 구분하려는 전통적인 이원론적 관념을 철폐해 버렸다. 더 이상 거룩한 날, 거룩한 때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날만 거룩해야 한다면 다른 날은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반면에 예수가 안식일의 특수성을 철폐해 버린 것은 오히려 그럼으로써 그날의 의미를 모든 날에, 삶 전체에 확대시킨 것이 된다. 흔히 우리는 다른 날에 비해 주일이 거룩하고, 사회에 비해 교회가 거룩하고 평신도에 비해 교역자가 거룩하고 다른 직업에 비해 목회하는 일이 거룩하다고 해서 성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이원론적 사고가 자칫하면 우리의 인격과 생활에 분열을 일으켜서 우리의 삶을 병들게 할 수도 있다는 데 그 위험성이 있고, 또 실제 우리가 그런 위기 속에 빠져 있기도 하다. 주일이 거룩하다는 사실에만 집착하고 그것만 강조하게 되면 쉽게 주일에만 성스러우면 되고 다른 날에는 어떻게 살아도 좋다는 사고방식으로 흐를 수 있다. 또 굳이 교회가 거룩한 곳이라고 핏대를 올리는 사람도 수상쩍다. 세상에 나가서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심리가 저변에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툭하면 우리는 교회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한다. 교회이기 때문에 이런 소리는 해서 안되고, 이런 노래는 불러서 안되고, 이런 옷은 입어서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교회에서 할 수 없는 짓이라면 세상에서도 해서는 안된다. 또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교회에서도 떳떳이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늘 우리 한국교회가 앓고 있는 가장 심각한 지병이 바로 교회에서는 이런 모습으로, 또 사회에서는 저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표리부동한 분열증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전 국민의 25%가 그리스도인이라는 통계가 나와있고, 천만 서울시민 가운데 무려 3백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실로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소위 빛이요 소금임을 자처하는 그리스도인이 그토록 많고, 또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만큼 다 잘 믿고 극성스럽게 믿는데도 우리네 서울은 여전히 최악의 수도요, 나라 전반은 갈수록 혼란과 무질서로만 치닫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곧 전 국민의 25%라는 사람들이 혹은 천만 가운데 3백만이라는 서울 시민들이 모두 교회에서만 혹은 주일날만 예수의 분신처럼 행세했지 사회에 나가서는 멀쩡한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 간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일찍이 예수가 안식일을 정면에서 파기한 것도 바로 이러한 유대인들의 이뤈론적 신앙구조를 비판한 것이다. 그래서 절대라고 우기는 안식일을 상대화시키고 보편화시켜서 오히려 모든 날을 다 거룩하게 해석했던 것이고, 또 예루살렘 대성전을 허물어 버리라고도 말함으로써 특정한 공간만을 거룩하게 보려는 사고를 비판한 동시에 모든 삶의 현장을 다 거룩하게 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한국교회의 이원론적 신앙의 극복, 이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3)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근본주의의 문제점은 독선주의와 권위주의다. 그래서 화합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기 보다는 서로 불화하고 정죄하고 작당하는 데 열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와 성령 보다는 교권과 율법주의적 권위와 위협이 교회를 지배하고 경직되고 경화된 획일주의가 교회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의 독선주의와 권위주의는 필연적으로 분파주의를 낳는다. 백여년 남짓한 한국 장로교회가 이제는 아주 만신창이가 되도록 분열에 분열을 거듭한 것을 봐도 근본주의의 독선적 사고방식이 얼마나 무서운 분파주의를 낳는가 하는 것이 확인된다. 기장, 예장, 고신, 통합, 합동 다시 고신은 반고신, 고신, 총신은 다시 총신측과 방배동 측, 방배동 측은 다시 두 개로 분열되고 … . 문화부 통계에 의하면 한국 개신교는 등록된 것만 60여 교단, 그 중 장로교만 해도 22개파에 이른다. 


사실 이것은 모두가 미국 근본주의의 재판이다. 미국의 장로교가 남북으로 분열되고, 신학교가 프린스톤과 웨스트민스터로 분열되어 갈라선 것도 모두가 근본주의자들의 독선주의와 분파주의가 빚어 낸 소치들이다. 이로써 우리는 장로교의 개혁정신의 역사적 맥락을 루터교와의 비교를 통해 살펴 보았고, 개혁교회의 왜곡된 형태로서의 근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해 보았다. 그러면 이번에는 칼빈의 그리스도 통치설에 정초하고 있는 장로교의 개혁정신의 성서적 전통을 살필 차례다.


III. 개혁정신의 성서적 전통


우선 구약성서는 적어도 이점에 관한 한 재론의 여지가 없다. 에를 들어 개혁으 기수들인 구약성서의 수많은 예언자들을 보자, 그들에게는 결코 종교개혁과 사회개혁이 별개가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을 보되 이원론적으로 보지 않고 통전적, 전인적, 역사적 존재로 보았기 때문이다. 즉 그 사람의 삶의 장에서, 상황 속에서 입체적으로 보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들은 개개인의 윤리적 죄를 책망하기 이전에 부패한 권력자, 그리고 지배층의 악정을 규탄했다. 이것은 바로 죄의 사회성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개개인이란 그가 속한 공동체의 향방이나 체질에 깊은 관계가 있다. 개인의 바른 삶을 위해서는 공동체의 방향이나 구조가 바로 잡혀야 한다. 구조적으로 부정한 사회에서 나홀로 깨끗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전체 공기가 탁한데 어찌 나홀로 맑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궁극적 구원은 이 세계, 이 역사, 이 세대의 구원과 여지없이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구약성서는 차안과 피안의 구분을 모르고 종교적 구원과 정치적 구원이 따로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구약에 비해 미약하다고 생각되는 신약성서의 예언자적 전통이다. 우선 예수의 행태를 보자.


잘 아는 바대로 예수는 분명 개혁가가 아니었다. 그는 기왕의 유대교 제도를 바꾸려고도 않았고, 교리를 수정하려고도 않았다. 오히려 보수적으로 유대교의 성전이나 각종 율법의식, 심지어는 종교생활의 관습까지도 그 권위를 자명적인 것으로 전제했으며, 유대교를 떠나 어떤 새로운 종교단체를 결성하려고도 않았고, 종교개혁 뿐 아니라 사회개혁의 프로그램에도 직접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회악을 모른 것은 아니다. 그의 비유들을 보면 당시의 간교한 사회악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고, 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고발한 대목을 보면 가히 사회악의 뿌리까지도 통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의식적으로 사회문제에 간섭하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상속 문제를 들고 온 사람에게 “나는 그런 것을 위해 오지 않았다”고 거절한 데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도대체 예수가 로마제국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 어디에서도 로마제국을 염두에 둔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 식민지민으로서의 고뇌나 또 그것으로부터의 자기 민족의 해방 등을 반영한 언어나 행위 따위가 전무한 실정이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왜 로마제국을 묵살했을까? 그렇다고 그가 불의한 현실에 대해 방임주의나 순응주의를 노정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토록 세밀한 이가 어찌 당대의 기상도를 몰랐겠는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기뻐하는 목자의 심정이며, 잃은 돈 한 푼을 되얻어 기뻐하는 처녀의 심정, 억울한 일을 당하고 오밤중에 재판장을 찾는 여인의 심정까지 헤아리던 이가 어찌 로마제국의 음흉한 수작을 몰랐겠는가. 그러나 그는 끝내 로마로 진격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향했다. 한 번 바꾸어 생각해 보자. 만약 그가 로마제국에 대해 민감했다면 어찌 됐을까. 모르긴 해도 아마 당시의 젤롯당과 결탁했을지도 알 수 없고, 로마 당국의 녹을 먹던 세리와는 아예 상종도 않았을 것이며, 또 그를 따르던 무리들과 폭동을 획책했을 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오늘의 그리스도교가 가능했을까. 따라서 우리는 예수에게서 종교개혁, 혹은 사회개혁의 교서를 찾으려면 곧 실망하고 만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엄연히 그를 통해 실제 종교개혁, 사회개혁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그의 영향은 확실히 유대민족의 배타주의를 타파하고 일부다처주의를 일부일처주의로 이끌었고, 당시의 소외자로서의 죄인과 의인 사이의 계급적인 담을 헐었고, 부녀자와 아이들을 물건으로부터 인간으로 환원시켰다. 그렇다면 이런 혁명적인 결과들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원시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혁에 대한 이렇다할 의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예컨대 여전히 그들은 성전, 회당을 드나들었고, 성전세금을 바치며 유월절, 안식일을 위시한 유대교 절기를 지켰다. 결국 막판에는 유대교로부터 독립하게 되지만 그것도 자발적인 것이었던게 아니라 쫓겨난 것이었다. 또 우리는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전 7:20, 24)는 바울의 권고나 골로새서, 에베소서, 베드로전서에 나타나는 윤리항목들, 즉 종은 주인에게 절대 복종하고, 아내와 자녀들은 가장에게 절대복종하라는 등의 낡은 질서의 강조를 보면서도 예수에게 느꼈던 것과 꼭 같은 실망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실제상의 원시교회의 궤적이다. 그들은 분명 유대민족의 배타주의의 사슬을 끊고 세계로 진출했으며, 유대의 의식종교를 과감히 타파함과 동시에 전통적 유산마저도 배설물처럼 버리고 로마제국, 희랍문화 권래로 진출하여 그들과 대결, 또는 조화흡수라는 발랄한 신축성을 보이며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창출해 냈다. 이게 다 어디서 온 결과들인가. 오직 그들의 종말론적 신앙과 사랑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다. 예수는 말이나 교리 혹은 계급투쟁의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행위로써 실제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삶으로써 사회계급의 관행을 타파했고, 왜곡된 종교적 가치관을 전복했다. 이는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그의 삶의 거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기존적인 것에 대해서도 자유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원시교회 역시도 바울의 말대로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종말론적 태도로써 기존질서로 그들은 낡은 종교, 낡은 사회질서를 극복해 나간 것이다. 참 종교는 언제나 역사 앞에 산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 그럴 때 자기도 살고 사회도 살린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동일성, 정체성은 바로 오고 있는 이 하나님의 새 질서를 증거하고 그것을 앞당겨 실현해야 할 소명자들이라는 데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우리가 하나 확실하게 해 둘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따른 폭력과 비폭력 문제이다.


IV. 하나님 나라 운동의 폭력성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구체적인 출발 시점에 대해 성서는 비교적 분명한 계기를 포착하고 있는 데 이를테면 세례 요한이 헤롯 안디바스에게 체포되는 정치적 사건이 발발한 직후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그저 단순하게 안디바스의 불륜을 고발했다 하여 요한이 체포된 것으로 보도하고 있으나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민중을 선동한 위험 인물로 지목되어 정치범으로 체포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예수는 그 소식을 접한 후 곧바로 갈릴리로 갔다. 세례요한을 체포한 장본인이 지배하는 봉토로 간 것이다. 말하자면 사건 현장으로 직행한 것이다. 이 사실은 무엇을 함축하는가. 예수가 폭력을 사용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는 별개 문제다. 분명한 것은 예수의 이러한 동태에는 이미 모종의 프로테스트가 전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충돌을 회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장에서의 충돌을 전제한 행동이었다. 이 점은 갈릴리에서의 예수의 제 일성을 들으면 더욱 명료해 진다. 즉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란 희랍어로는 [basileia tou Deu]이고, 독일어는 주로 [Gottesherrschaft(신의 주권)]라고 번역하는데, 그렇다면 [로마의 주권]이 지배하는 현장에서 [신의 주권]을 전면에 내세운 예수의 심사는 무얼 뜻하는가. 현실에 대한 정면 도전이 아니었을까. 정치권력의 횡포에 대한 선전포고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당시의 정치사회적 컨텍스트를 염두에 두고 볼 때 실로 이것은 대단한 정치적 언어이며, 혁명적 선언이 아닐 수 없었다는 것이다.


[원칙적]이라는 한정사를 붙여 말한다면 발제자 역시 [비폭력]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폭력비폭력 문제는 양자간에 아무리 그 경계를 설정해 봐야 현실 속에서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원칙적인 방향설정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와 비그리스도교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도 구체적인 상황에 직면해서는 그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하는 이분법적 논리가 무력하다는 것이다.


사실 폭력비폭력은 형이상학적으로 고정된 절대개념도 아니고, 내가 혼자서 주관적으로 선택하는 것도 아닌, 서로 상대방이 존재하는 관계에서 그 때 그 때의 상황과 상대의 행동방식에 대응하며 규정되는 상황적 개념이다. 목적과 수단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은 원칙으로서는 옳은 얘기다.


그럼에도 폭력이건 비폭력이건 간에 어느 한쪽으로만 고정되는 것은 타당한 듯 싶지 않다. 왜냐하면 소위 비폭력이라는 것도 반드시 성서적 원칙은 아니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는 야훼 하나님이 이스라엘 편에 서서 전쟁을 하는 신으로 묘사되고 있고, 교회사를 보더라도 소위 [거룩한 전쟁]이라 하여 신의 이름으로 무수한 전쟁과 살육이 자행된다.


위는 흔히 비폭력의 성서적 증빙으로써 산상수훈을 제시하지만 사실 거기에도 폭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다. 예수가 산상수훈에서 말한 [평화]란 히브리어는 [샬롬(shalom)]인데, 이것은 단순히 [싸움이 없는 상태]를 이르는 소극적 개념이 아니라 평화를 깨뜨리고 저해하는 세력들과의 대결을 마다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 나간다는 역동적인 개념이다. 또 하나, 원래 폭력이란 강자의 것이다. 약자에게는 폭력이라는 언어 자체가 가당치 않다. 언제나 강자가 폭력을 휘두르며 약자에게 비폭력을 설교하는 게 현실아닌가.

당하다 당하다 어쩔 수 없이 조건반사적으로 나오는 정당방위가 약자의 폭력이라면 폭력일 뿐이다. 그러나 그 경우를 폭력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런데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하는 입씨름은 무엇보다도 아직은 현실과 일정거리를 두고 관망하는 자들의 시비라는데 문제가 있다. 당장 목에 칼이 들어오는 판에 무슨 놈의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선이냐 악이냐를 운운할 여지가 있겠는가 말이다.


V. 종말론적 공동체로서의 예수 공동체


예수 공동체의 컨텍스트는 종말론적인 것이 그 생명이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예수와 그를 따르던 자들의 공동체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말의식은 언제나 기존체제를 폐기시킨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 앞에서는 일체의 기존적인 것, 즉 정치, 윤리는 물론 종교 마저도 그 기득권이 인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말의식은 그만큼 지속되기가 어렵다. 예수 공동체가 재빨리 제도적 교회의 형태를 띠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점차 종말론적 요소를 내면화하고 교회를 특수 영역화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것은 기존체제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완충지대 형성의 작업인 셈이다. 또한 제도적 교회 형태의 불가결의 요소로서 지도층이 예수와 신자 사이에 서게 되고, 교회의 특수성을 성격화하기 위해 사크라멘트가 생기고, 신자들을 통제하기 위한 여러 가지 규율도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형태화되어 그 자체를 세상에 노출하며 정착하는 과정에서 제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세상의 권력이나 제도 그리고 가치관 등과 타협하게 된다.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교라는 것을 크게 의식하고 그것과 타협하다 결국 율법적이게 됐고, 이방 그리스도 교회는 로마제국 그리고 헬레니즘 문화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탈정치화, 헬레니즘 문화권에의 토착화 등의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공동체가 로마제국에 흡수되면서부터는 그 변질된 상태를 교리나 제도로써 아예 고정화해 버린다. 탈정치화를 말하면서 실은 정권의 앞잡이가 되고, 사크라멘트는 계속 늘어가고, 교회의 권위는 강조되어 마침내 법왕제도를 만들고 베드로의 후임을 자처하다 소위 법왕무오설로 발전한다. 언제 베드로가 무오했던가. 오늘날까지도 건재한 그리스도교 도그마의 근간이 바로 이런 제도 하에서 형성됐고, 교회론 성립 역시도 바찬가지다.


어쨌든 이러한 천년의 암흑시대를 거쳐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그러나 루터가 여전히 봉건영주들의 권력을 등에 업고 싸운 것이나 그랬기 때문에 뮌쩌 같은 사람이 대변했던 농민들의 고통에 대해 그렇게도 가혹하게 대처했던 점, 또 칼빈이 교리에 상반된다고 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사형에 처할만큼 법왕 아닌 법왕으로 군림한 사실 등은 종교개혁가들 마저도 아직은 중세적인 교회관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해 준다.

기성교회란 언제나 형식을 고수하고 내용을 그것에 맞도록 상대화하며, 형식을 고수하기 위해 보수적 교리를 만들어 그것에 매달린다. 문제는 제도적 교회를 이끄는 지도층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자꾸만 교회를 고유한 분위기로 만들고, 그 자리의 주인은 자신만이 되도록 한다. 그들은 교회를 그리스도와 민중이 만나는 곳으로, 또 현장으로 보냄받은 본분을 다하는 곳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모인 이들을 다스리는 것(치리)에만 관심하고 신학자들도 거기에 가담하여 오랫동안 기여해 왔다.


바로 여기에 제 모습을 찾아야 할 교회의 과제가 있다. 그것은 종말론적인 본래성에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결코 건물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교회에만 국한하여 내림하는게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스스로 쌓은 담을 헐어야 한다. 왜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독점함으로써 사실상 그 나라를 차단하고 있는가. 사크라멘트도 그 본래 정신은 나누는 데 있다. 따라서 교회는 그 나누는 일을 종교행사로만 하지 말고 실생활에까지 연결시켜야 한다.


왜 예수의 피는 나누어 먹을 용의가 있는 자들의 집단이 밥을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 조차 하지 않을까. 그러고도 마음 편한 것은 나누는 일 마저도 하나의 종교의식으로 처리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기성교회가 어떻게 자체를 개혁해야 하느냐 하는 것은 교회사를 통해 거듭 논의되어 왔고, 근년에는 WCC를 통해 많이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또 교회 자체도 무엇이 문제이고 병폐인지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병폐를 끝까지 문제 삼으면 기성교회는 무너진다. 그래서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성교회가 정말 가난한 자, 소외자, 수난당하는 자와 자신을 일치 시킬 수 없고, 그들이 발붙일 수 없는 곳이라면 그것은 사회적 조건이 비슷한 계층의 취미집단 이상일 수 없다.


또 하나 기성교회는 하나님도, 예수도 독점하고 있다는 허구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왜 하나님이 제도교회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은 자유하다. 어떤 형태로 어디에서 그의 일을 성취하는지는 하나님 자신만이 알 뿐이다. 더구나 하나님의 선교론이 널리 인정되고 있고, 오늘날처럼 다원화된 사회 속에 살면서도 여전히 이러저러한 조건을 갖춘 것만이 교회라는 주장은 정말 고집 이상일 수 없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의 신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가령 유대교로부터 죄인으로 규정되고 소외당한 들을 찾아가 하나님 나라가 바로 당신들의 것이요, 나는 당신들을 위해 왔고 하고 선언한 예수처럼 전통적인습적 기준을 떠나 오로지 종말론적 시각에서 참 교회를 증거하는 일일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라]고 했다. [회개]란 무엇일까. 무엇이 [메타노이아]일까. 그것은 본래성 회복이라는 의미와 밀접한 개념이다.